건보공단·담배회사 500억대 손해배상訴
“담배가 폐암 원인”vs“흡연은 자유 의지”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기구(WHO) 본사에 붙어있는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폐암 환자 85%는 흡연이 원인”이라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을 지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담배 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2014년 533억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건보공단이 흡연으로 폐암·후두암에 걸린 환자 3465명에게 쓴 진료비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1심은 담배 회사가 이겼다. 흡연 뿐만 아니라 가족력, 개인 습관, 주변 환경 때문에 암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으니 담배 회사들이 손해를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다. 건보공단이 항소해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건보공단은 흡연과 암의 인과 관계를 밝히기 위한 새로운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있다. 항소심 판결은 이르면 올해 7월쯤 나온다.
금연구역 모습. 2025.3.19/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담배 중독 심각, 4%만 금연 성공”
23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최근 서울고법 민사6-1부에 WHO가 작성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담배 회사들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WHO는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 결과가 아시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고 관심 갖고 있다고 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미국과 캐나다는 개인이나 정부가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해 담배 회사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아시아는 관련 사례가 없다”면서 “(소송 결과에 따라) 아시아에서 흡연 피해 책임을 담배 회사에 묻는 움직임이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WHO는 의견서에서 “국제암연구소는 담배를 피우면 모든 종류의 폐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결론 냈다”면서 “담배에 있는 니코틴이 중독을 유발하기 때문에 흡연자가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4%에 불과하다”고 했다.
담배는 한 개비만 피워도 니코틴이 혈관으로 들어가 뇌에서 도파민(신경 전달 물질) 수치를 높인다. 결국 흡연자들은 계속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건보공단은 담배 회사들이 니코틴을 조절해 담배 중독을 유도했고 국민들이 암에 걸렸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픽=정서희
◇2심 결론 올해 하반기 나올 듯
담배 회사들은 흡연이 개인의 자유 의지라는 입장이다. 흡연자가 기호(嗜好)에 따라 담배를 피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국내에서 담배의 위해성을 제대로 경고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십 년 전부터 담배를 피운 사람들은 유해성을 알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담뱃갑 경고 문구는 1970~1980년대 옆면에 작게 들어갔고 1995년 앞뒷면에 표시됐다. 담뱃갑 경고 그림은 2016년에야 도입됐다.
담배 회사들은 폐암의 원인을 흡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건보공단은 이에 30년 이상 담배를 피우거나 하루 한 갑씩 20년 이상 담배를 피운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소세포 폐암 발생 위험이 54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편평세포 폐암(21배)과 편평세포 후두암(8배)에 걸릴 위험도 높았다. 반대로 유전적 요인 때문에 암에 걸릴 위험은 1.2~1.8배 차이에 불과했다. 가족력보다 흡연이 발암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국민 6만명이 매년 흡연으로 숨진다”면서 “인구 감소 시대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 건강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건보공단과 담배 회사에서 참고 서면을 추가로 받은 뒤 선고 기일을 정할 예정이다. 2심 선고는 올해 하반기 내려질 전망이다. 1심 판단이 뒤집힐지는 장담할 수 없다. 대법원 판례는 담배를 피우다 질병에 걸리면 흡연자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