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전경. 위키미디어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反)유대주의 근절 수용 등 정부의 교육정책 변경 요구를 거부한 미국 하버드대를 상대로 외국인 학생 등록을 받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22일 하버드대에 보낸 서한에서 "외국인 학생을 등록시키는 것은 특권이며 캠퍼스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 또한 특권"이라며 하버드대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ogram·SEVP) 인증 취소 사실을 알렸다.
앞서 국토안보부는 지난달 16일 하버드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들의 불법·폭력 활동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4월 30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미제출 시 SEVP 인증을 박탈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SEVP는 유학생 비자 등을 관리하는 국토안보부의 프로그램이다.
놈 장관은 기한이 지난 후 하버드에 자료 제출 기회를 추가로 줬지만 하버드대가 불충분한 응답을 제공했다고 이같은 조치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하버드대는 미국 대학 중에서는 처음으로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교내 정책 변경 요구를 거부한 후 미 정부와 갈등을 겪어왔다. 이번 조치도 이 같은 갈등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지난해 미국 대학가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중단 등을 촉구하는 반전시위가 확산하면서 미 전역의 캠퍼스가 몸살을 앓은 바 있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주요 명문대들은 반전 시위의 진원지로 꼽혀왔고 트럼프 행정부는 캠퍼스 시위에 대응을 느슨하게 했던 주요 대학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제도 개편을 요구해왔다.
제도 개편의 중심은 반유대주의 근절에 있었지만, 그 외에 대학의 입학·채용 관련 'DEI(다양성·포용성·형평성) 정책'이나 진보주의적 편향에 대한 교칙 수정을 주된 요구 사항에 포함하는 등 일명 '엘리트 대학'들을 트럼프 행정부 성향에 맞게 손보려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본인이 유대인이기도 한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정부 요구안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수용을 거부했고 이후 갈등은 격화 양상을 보여왔다. 트럼프 정부는 수년간 나눠 지급하는 3조원대 규모의 연방 지원금을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에 나섰고 하버드대에 대한 면세 지위 박탈을 검토 중이다.
하버드대는 이에 반발해 지원금 중단을 멈춰달라는 소송을 낸 상태다. 놈 장관은 이날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컬럼비아대 등 다른 대학에도 하버드대와 유사한 조치를 고려 중인지에 대한 질문에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답해 이번 하버드대 조치가 다른 대학들을 향해 보내는 '본보기 사례'임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올해 하버드대에 합격했거나 유학이 결정돼 입학을 앞둔 외국인 학생들의 거취가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기존에 하버드대에 유학중인 외국인 학생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외국인 재학생은 다른 학교로 편입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적 지위(체류 자격)를 상실하게 된다고 국토안보부는 밝혔다.
대학들은 SEVP의 인증이 있어야 외국인 학생 등에 유학생 자격증명서(I-20) 등을 발급할 수 있으며 이 자격이 없으면 학생(F·J 등) 비자를 받을 수 없다.
정부의 조치에 대해 "불법"이라는 입장을 밝힌 하버드대 측은 SEVP 인증 취소를 중단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등 곧바로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하버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금 중단이 위법하다며 이를 멈춰달라는 소송을 낸 상태다.
한편 놈 장관은 22일 하버드대에 보낸 서한에서 "하버드대가 다음 학년도 이전에 SEVP 인증을 회복할 기회를 원한다면 72시간 이내에 요청한 외국인 학생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 간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는 그동안 정부의 조치에 대해 학문의 자유 침해라고 반발해왔다는 점에서 강경대응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타협을 모색하며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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