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안정 공급을 위한 에너지 믹스에 공감
전문가들 李 “비용” 金 “현실성” 지적
전력 생산해도...송배전망 부족이 큰 걸림돌
여야 대선 후보들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에너지 안정 공급을 위해 다양한 에너지가 공존하는 ‘에너지 믹스’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주력 에너지원인 원전 비중을 놓고는 뚜렷한 인식 차를 보이고 있다. 신한울원전 1호기(왼쪽)와 2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인공지능(AI) 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며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에너지 안정 공급을 위해 다양한 에너지가 공존하는 ‘에너지 믹스’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이다. 다만 주력 에너지원인 원전 비중을 놓고는 뚜렷한 인식 차를 보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원전을 보조 역할로써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적극적인 원전 활용론’을 내세운 에너지믹스를 설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에너지원별 지나친 쏠림 현상으로 국가전력망 안정성에 부담이 돼선 안 된다고 경고하는 한편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한 현실적인 에너지믹스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력망 확대를 위해 해소해야 할 지역 반대를 넘어설 방안이 없다는 점도 지적 사항이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공식 선거운동 시작 후 두 후보는 첫 현장 행보로 판교 테크노밸리를 택했다. 이재명 후보는 1호 공약으로 ‘AI 투자 100조원’을 약속했고, 김문수 후보 역시 AI 생태계 전반에 대한 공약에 힘을 실었다.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AI 투자와 인재 양성 필요성에는 후보 간 이견이 없는 가운데 AI 인프라 구동을 위한 전력 공급 대책 등은 물음표다.
이 후보는 오는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건설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20GW 규모의 남서해안 해상풍력을 해상 전력망으로 주요 산업지대에 공급하고, 전국에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산단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2040년 완공 목표로 ‘U’자형 한반도 에너지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해 전국에 해상망을 구축함으로써 호남과 영남의 전력망을 잇고, 동해안 해상풍력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김 후보는 ‘글로벌 초고속 AI데이터센터 구축’과 함께 ‘촘촘한 에너지 도로망 구축’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원전 비중 확대를 통해 AI 시대 전력 수요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AI 산업 육성 의지와 비교하면, 후보들이 내세운 ‘에너지 고속도로’나 ‘에너지 도로망’ 같은 전력 인프라 확충 공약은 여전히 개념적 수준에 머물러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전력 사용 확대가 불가피한 만큼, 송배전망 부족 문제를 해소할 실질적 대책에 대선 후보들이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최장기 송전망 지연 사업인 충남 북당진∼신탕정(아산) 345㎸ 송전선로 준공식이 지난달 2일 당진시 송악읍 인근 해상철탑에서 열렸다. 사진은 준공된 송전선로. 이 송전선로는 애초 2012년 6월 준공을 목표로 했으나, 주민 반대와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지연 등으로 2014년 6월에야 아산 구간부터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연합]
당장 지역별로 생산된 전력을 원활히 실어 나를 전력망 확충이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이미 ‘동해안∼수도권 초고압 직류 송전(HVDC) 송전선로’ 등 굵직굵직한 송배전망 건설 사업들이 교착 상태에 놓인 상황이다.
최근 하남시가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사업의 종점인 하남시 동서울변전소 증설에 반대하면서 해당 사업의 준공 일정은 계획보다 6년 7개월 늦어지고 있다.
실제로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다. 영호남과 강원 등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기 주요 소비지인 수도권으로 실어 나를 송배전망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송배전망 부족으로 영동 지역 일부 석탄화력발전소의 발전량도 지난해 기준 20∼30%에 그쳤다. 이외에도 신한울 원전과 연계된 500㎸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방식(HVDC)과 당진화력발전소 전력을 실어 나르는 345㎸ 당진화력∼신송산 송전선로가 각각 5년 6개월, 7년 6개월씩 지연 중이다. 서남해 해상풍력 단지와 연계된 345㎸ 신장성변전소 건설은 6년 2개월 늦어지고 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전력망확충은 이제 전력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발전과 산업 경쟁력문제”라면서 “전력망 건설지연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을 줄이고 강건한 전력망 구축으로 산업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AI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후보 간 입장차가 뚜렷한 모습이다. 이 후보는 원전에 대해서 ‘활용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무게 중심은 ‘재생에너지’에 두고 있다. 그는 “에너지 정책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원전은 위험성과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있는 만큼, 과도한 의존은 지양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다. 이른바 ‘에너지 믹스’ 전략을 통해 과도기를 거쳐 재생에너지 사회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원전 비중을 60%로 끌어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김 후보는 “재생에너지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지만, 원자력 발전 단가는 풍력의 8분의 1, 태양광의 6분의 1 수준”이라며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을 두고 외면한 건 잘못된 환경론자들의 주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김 후보의 에너지정책은 원전 최강대국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던 윤석열 정부의 연장선상에 있다. 김 후보는 10대 공약에서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대형 원전 6기를 차질 없이 추진하며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을 상용화하겠다고 명시했다.
정부는 지난 2월 2038년까지 적용되는 장기 전력 공급 청사진인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면서 2037∼2038년 총 2.8GW(기가와트) 설비용량의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포함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반영된 2015년 7차 전기본 후 10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마련됐다. 또 2035∼2036년에는 ‘차세대 미니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을 처음으로 포함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1.4GW), 데이터센터(4.4GW), 수소환원제철 도입과 전기차 보급 확대 등 새로운 추가 전력 수요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구글의 일반 검색은 한 번에 약 0.3Wh의 전력을 소모하는 반면,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약 2.9Wh를 소비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윤 정부에서 원전생태계 복원을 내세웠지만 신규원전 건설 부지를 한 곳도 못했다”면서 “차기정부에서 부지확보를 한다 해도 원전 완공까지는 30년 후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원전건설 완공 이전에는 현 원전의 수명연장이 중요한 이슈인데 대선 후보자들이 알면서도 표를 인식해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올해 8월과 12월에는 고리 4호기와 한빛 1호기가 멈춰 서며, 내년 9월과 11월에는 한빛 2호기와 월성 2호기도 가동 연한이 만료된다.
그러면서 “재생에너지도 간헐성이라는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AI 인프라 구동을 위한 전력 공급에는 부적합하다”면서 “태양광과 풍력만 강조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바람직하지 않으며 원전을 포함한 다양한 에너지원을 섞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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