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주년 맞았지만 … 초라한 성적표
사천 다녀오면 하루 다 써야
임시청사 주변은 허허벌판
"우수인재들이 여기 오겠나"
예산 1조원도 안돼 손발묶여
힘없는 차관급 조직도 문제
우주항공청은 지난 3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한국천문연구원이 공동 개발한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를 발사했다. 사진은 스피어엑스 발사를 위해 기립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 연합뉴스
"2035년께 우주 저궤도 수송비용을 ㎏당 1000달러 이하로 낮추겠습니다."(윤영빈 우주항공청장·2024년 9월 5일)
우주청이 내놓은 지구와 우주를 잇는 '우주 고속도로' 청사진이 8개월 만에 바뀌었다. 지난 21일 경남 사천 우주항공청에서 열린 우주청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윤영빈 청장은 "우주 저궤도 수송비용을 ㎏당 2500달러 이하로 낮추겠다"며 목표치를 낮췄다. 우주항공 산업에서 목표치 수정은 비일비재하지만, 업계와 전문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우주청이 설립된 지 1년이지만 면밀하고 명확한 검토 없이 선언적 정책을 남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우주청은 지난해 5월 27일 한국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표방하며 출범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을 산하에 두고 기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부처에서 우주·항공 관련 업무를 이관받았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고도화 사업,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한국 첫 달 궤도선 '다누리' 운영, 달 탐사선 개발 등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출범 1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NASA의 우주망원경 '스피어'나 태양 코로나 관측장비 '코덱스' 개발 등 국제 협력 분야에서 일부 성과를 냈지만, 핵심 사업에서 줄줄이 문제가 발생했다. 약 4조원이 투입되는 국내 최대 우주개발 사업인 KPS는 우주청 이후 반년이 넘도록 담당자가 없었고, 최근 위성 첫 발사를 21개월 연기했다. 달 탐사선 개발 사업은 우주청이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차세대발사체 사업 전환과 맞물려 사실상 중단됐다.
차세대발사체 사업 전환도 덜컹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차세대발사체를 재사용 발사체로 전환하기 위한 특정평가가 불발됐고, 기획재정부 적정성 재검토를 거쳐야 한다. 결론까지 최대 9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설립 전부터 공공연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라그랑주 L4' 탐사선 개발도 1년째 '추진'만 외치고 있다. 우주청은 개청 당시 2035년 화성궤도선, 2045년 화성착륙선을 쏜다고 밝힌 바 있다.
오랜 기간 봉합되지 않은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간 지식재산권 다툼, 1년째 정원 293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물론 우주청이 어려움을 겪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예산 부족 문제가 대표적이다. 우주청의 올해 예산은 약 9650억원이다. 1조원도 안되는 예산으로 우주개발 모든 분야를 추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윤 청장은 "선진국 수준의 우주 성과를 내려면 연간 2조~3조원 규모의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항공우주 분야 교수는 "우주청이 우주 신약처럼 다양한 분야를 육성하겠다고 하는데 말뿐"이라면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약점은 입지다. 우주청의 역할과 임무상 경남 사천에 두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은 설립 전부터 계속 나왔다. 민간 기업 관계자나 국외 인사, 관계부처 공무원 등이 우주청을 수시로 드나들기에는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는 위치다.
교통 여건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항공기 증편은 1년째 논의만 되고 있다. 대전에 위치한 항우연 연구자가 로켓 연구를 위해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를 가고, 논의를 위해 우주청까지 방문하면 '출장 지옥의 트라이앵글'이 그려진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 출장마저 기피하는 지역에 우수 인재들이 갈 리 만무하다.
우주청이 과기정통부 외청 형태의 차관급 기관이라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특정 부처의 외청으로는 범부처 정책을 아우를 수 없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주청은 국가우주위원회 수장을 대통령이 맡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국가우주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상설 지원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우주정책 전문가는 "현재 지원조직 역할을 우주청이 하고 있는데 청급 기관이 타 부처와 조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 사천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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