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이 지난 21일 경남 사천시 우주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주청 제공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이 최근 우주청 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화성 진출에 기여할 한국 기술을 찾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화성 유인 탐사에 전례 없는 적극성을 보이는 데 따른 대응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이 강점을 지닌 기술을 화성 진출과 접목할 방법을 찾아 미국과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다. 달 진출에 역량을 집중한 뒤 차후 화성 진출을 모색한다는 기존 한국 우주계획의 큰 흐름에 변화가 나타날 조짐이 커졌다.
지난 21일 윤 청장은 경남 사천시 우주청에서 개최한 개청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기존 우주 계획 로드맵은 국제협력을 바탕으로 달을 먼저 탐사한 뒤 여기서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화성으로 진출하자는 단계적 방식이었다”며 “최근 이 틀을 다시 고민하기 위해 TF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올해 3월을 전후해 구성된 TF에는 우주청 소속 1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책임자는 이공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우주청 내 임무본부 소속 부문장(국장급)이 맡았다. 윤 청장은 “한국천문연구원 인력도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TF가 구성된 이유는 변화된 미국 우주정책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탐사 천체가 달에서 화성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미 항공우주국 예산을 올해보다 24% 삭감된 188억달러(약 26조원)로 책정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예산을 쓰던 달 탐사 연구 부문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 번 쏘는 데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가 드는 달 탐사용 대형 로켓 ‘우주발사시스템(SLS)’을 앞으로 2회만 더 쏜 뒤 폐기하기로 했다. 달 상공을 돌도록 설계된 우주정거장 ‘루나게이트웨이’는 건조 계획 자체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화성 유인탐사 프로그램에는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가 신규 투입됐다. 막연한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던 인간의 화성 진출 가능성이 갑자기 커진 것이다.
윤 청장은 “TF에서는 한국이 가진 로봇, 자동차, 반도체, 통신, 철강, 조선과 같은 기술을 화성 탐사와 연계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큰 비용과 다양한 첨단 기술이 필요한 화성 탐사는 미국 혼자 해내기 어려울 공산이 크고, 이 때문에 한국이 강점을 가진 기술을 먼저 제시해 ’우주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넓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윤 청장의 입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난 올해 2월과 비교할 때 사뭇 달라진 것이다. 윤 청장은 당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은 달을 기지로 만든 뒤 화성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단 달에 간 뒤 화성 진출을 모색한다는 한국의 기존 우주정책을 고수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화성 중심 우주계획을 당장 내년 예산으로 뒷받침하면서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화성을 염두에 둔 우주청의 새로운 움직임이 기존 한국 우주계획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도 주목된다. 한국 우주 일정의 핵심은 2022년 1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표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에 따라 2032년 달에, 2045년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는 것이다. 달과 화성 진출 시점, 그리고 유인비행과의 연계성이 새로 고려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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