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지각 바닥 암석층 조각이 맨틀로 흘러내려
대륙 밑으로 파고든 해양 지각판 영향인듯
북미대륙 중서부의 지각판이 얇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북미대륙의 지각판이 얇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각판 바닥쪽에 있는 암석 덩어리들이 그 아래 맨틀로 조금씩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연구진은 미시간주에서 네브래스카주, 앨라배마주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각판 기저부에서 깊이 640km의 맨틀 안쪽으로 암석권 물질이 이동하는 ‘크라톤 드리핑’(cratonic dripping)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크라톤(대륙괴)은 지각판 중심부에 있는 아주 오래된 암석층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돼 있는 대륙괴는 35개 정도다. 대륙을 지탱해주는 두껍고 안정적인 기반암층이지만 인접한 맨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따라 바닥에 해당하는 기저부가 그 아래의 뜨거운 맨틀보다 무거워 꿀이 한 방울씩 떨어지듯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이를 ‘크라톤 드리핑’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북중국 대륙괴는 이 현상으로 수백만년 전 가장 깊은 뿌리층을 잃었다.
지하 200km 암석권-연약권 경계층에서 발생
이번 발견은 북미 전역에 있는 6000여 관측소에서 수집한 202건의 지진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새로운 지진단층 모델에 기반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깊은 맨틀과 얕은 지각 사이의 영역을 더 잘 살펴볼 수 있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드리핑 현상을 목격하게 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미국 중부와 동부 지하 200km 깊이에 암석권과 연약권 경계, 즉 대륙괴의 바닥층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어 이곳에서 맨틀 전이대(깊이 410~660km)까지 이어지는 고속 물질 이동 현상을 발견했다. 분석 결과 이 흐름엔 주변 맨틀보다 20~50% 더 많은 대륙괴 성분이 함유돼 있었으며 온도는 60도 더 낮았다. 연구진은 이는 대륙의 암석권이 아래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지난 2억년 동안 북미 대륙 아래로 섭입해 온 해양 지각판인 패럴론판이 대륙괴와 약 600km 떨어져 있음에도 이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1990년대에 발견된 패럴론판은 맨틀 물질의 흐름을 바꿔 대륙괴의 바닥을 깎아내고, 기저부를 무르게 하는 휘발성 화합물을 방출함으로써 대륙을 아래로부터 닳아 없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이 컴퓨터 모델에서 패럴론판을 제거하자 지각판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현상도 멈췄다.
지진파는 지질 구조가 다르면 전파 속도도 달라진다. 미국 본토와 중앙아메리카, 캐나다 일부 지역에 걸쳐 200km 깊이의 지각에서 발생하는 지진파의 속도를 보여주는 그림. 북미 대륙괴(검은색 점선)는 주변 지역에 비해 지진파 속도가 빠르다. Nature Geoscience
대륙 공동화나 지형 변화 우려는 없어
연구진에 따르면 드리핑은 마치 깔때기처럼 한 지역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대부분을 덮고 있는 전체 대륙괴의 물질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지각이 얇아지는 현상은 매우 넓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북미 전역의 암석들이 수평으로 이동해 와서 아래쪽으로 빨려들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논문 제1저자인 준린 후아 박사(현 중국 과학기술대 교수)는 “이에 따라 매우 광범위한 지역에서 지각판이 얇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어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진 계산에 따르면 대륙의 지반은 현재 20~60km 얇아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로 인해 대륙이 공동화하거나 지형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드리핑을 유발하는 맨틀 작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각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지각판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맨틀 깊숙이 가라앉으면서 드리핑도 약해져 결국엔 멈출 것으로 것으로 예상했다.
논문 공동저자인 토르스텐 베커 교수(지구물리학연구소)는 “이번 발견은 대륙의 수명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며 “대륙의 생성과 분열, 재활용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Seismic full-waveform tomography of active cratonic thinning beneath North America consistent with slab-induced dripping. Nat. Geosci.(2025).
https://doi.org/10.1038/s41561-025-01671-x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