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 미국 신용등급 'Aaa → Aa1' 강등
부채 부담이 결정타…한국도 재정지표 악화
대선 후보 확장재정, 감세…건전재정 공약 실종
“세입 없는 지출 확대 땐 신용등급 강등 우려”
미국 신용등급이 하락하기 전날인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함께 아부다비의 카사르 알와탄 대통령궁에 도착해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아부다비=AP/뉴시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세계 경제대국'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면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의 주된 이유인 국가부채 증가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탓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나 감세 정책만 내세우고, 건전 재정에 대한 공약은 없다는 점에서 국가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무디스는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로 한 단계 낮췄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지난 10여 년간 재정 적자로 급격히 증가했고, 그에 따른 이자 부담도 커졌다는 게 결정적 이유다. 미국 국가부채는 36조2,200억 달러(약 5경744조 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도 지난해 기준 123%에 이른다. 무디스는 지난해 12월 재정 악화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프랑스에 대해서도 신용등급(Aa2→Aa3)을 한 단계 낮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무디스가 주요 강대국들의 신용등급을 낮춘 건 결국 부채에 대한 이자를 잘 납부할 수 있느냐를 본 것"이라며 "초강대국들의 신용등급도 칼같이 낮추는데, 한국이라고 안전하겠느냐"라고 말했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5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자 정부측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실제 한국의 재정 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이달 초 13조87,7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가채무는 7조4,000억 원이 증가해 올해 1,280조8,000억 원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GDP 대비 48.4%로 전보다 0.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실질적인 나라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GDP 대비 3.3%로 커졌다. 국가채무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723조2,000억 원에서 6년 만에 77.1% 상승했는데, 국회예산정책처는 국가채무비율이 저출생·고령화 탓에 2040년 80.3%, 2050년 107.7%, 2060년 136.0%로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20일 각각 경기 의정부시 로데오거리와 서울 강서구 남부골목시장 인근에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1
더 큰 문제는 유력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 지속 가능한 재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장 재정을 통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차 추경까지 예고했다. 그러면 올해 국가채무는 1,300조 원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법인세 최고세율은 24%에서 21%로 낮추는 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누가 되든 재정 건전성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부채 비율 자체보다 재정운용에 대한 의지와 방향을 보는데,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이 하원을 통과한 게 트리거(방아쇠)였다"며 "세입 확충 없이 지출 확대가 이어지면 차기 정부 중반쯤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무디스는 2015년 12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격상한 이후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이는 영국(Aa3), 일본·중국(A1)보다 1~2단계 높은 수준이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전문가들은 소규모 개방경제 형태인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아 신용등급 하락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저신용자의 이자 비용이 높은 것처럼, 국채 이자 비용은 상승할 수밖에 없고, 자본 유출과 환율 급등, 그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내수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국제통화 보유국이 아니기에 신용등급 하락은 자본 유출과 외환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성장률 제고를 위해 정부가 지출을 확대할 필요는 있지만, 세입 확충은 꼭 필요하다"며 "지출은 당장하더라도 세금은 2~3년 후부터 거두는 '시차 증세'를 통해 국제 사회의 재정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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