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체제 구축에 내부 반발
이해진 이사회 의장
이해진 창업자가 지난 3월 이사회 의장으로 7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 후, 네이버가 조직 개편과 새로운 인사 제도 도입 등 변화에 본격 나서고 있다. 성과 중심으로 인사 시스템을 바꾸고, 기술·투자 관련 조직을 잇따라 설립 중이다. 최근 몇 년간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지만, 인공지능(AI)과 콘텐츠 등 신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주가는 하락하고 있다.
오히려 이 의장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며 하는 시도들이 일부 조직 내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과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이 자살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최측근 인사를 재기용한 것에 대한 직원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이 의장의 복귀를 ‘군기 잡기’ 또는 ‘과거로의 회귀’로 받아들이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이해진의 혁신이 통할까
이 의장 복귀에 맞춰 네이버가 가장 먼저 꺼낸 카드는 조직 개편이다. 지난 2월 네이버는 새로운 인사 제도인 ‘레벨제’ 도입을 예고했다. ‘레벨제’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무 성과와 전문성을 평가해 근속 연수와 관계없이 7단계로 등급(레벨)을 나누고, 이를 성과 보상과 연동하는 제도다. 임원급인 ‘리더’를 제외하면 모두 ‘팀원’인 지금의 수평적인 직급 체제를 바꿔, 내부 경쟁을 유도하고 성과 중심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계산이다. 올해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 3월 본격 도입 예정이다.
1997년 삼성SDS의 사내 벤처로 출발한 네이버는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스타트업으로서의 치열함 대신 ‘네무원(네이버+공무원)’이란 표현이 만들어질 정도로 안정적인 조직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 의장은 2012년 한 사내 강연에서 “사내 게시판에서 ‘삼성에서 일하다가 편하게 지내려고 네이버로 왔다’는 글을 보고 너무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공개 질타하기도 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국내 주요 IT 기업 중 유일하게 재택근무 체제를 유지하다 보니 부서에 따라 반년에 한 번 얼굴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네이버 조직 혁신을 위해 새로운 조직도 설립하고 있다. 인도·스페인 등에서 기술 관련 글로벌 신사업을 발굴하는 ‘테크비즈니스’ 부문을 만들고, 자신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최인혁 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내정했다. 개발자 출신인 최 전 COO는 삼성SDS 시절부터 이 의장과 함께 일하며 네이버 창업 초기 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사다. 네이버와 기술 개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을 다시 끌어들여 현재 네이버의 사업 중심 경영 구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관계자는 “최 내정자는 네이버 초기 때부터 함께하며 실적을 내온 검증된 인물”이라며 “새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적격인 인물이라 내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내정자가 개발자 출신인 만큼, 사실상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 네이버는 자체 개발한 거대 언어 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보유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에선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의장은 이 밖에 최신 기술 수급을 위해 다음 달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투자 법인 ‘네이버 벤처스’도 설립 예정이다.
◇친정 체제에 내부 반발 커져
이 의장의 네이버 변화를 위한 작업들은 내부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내년 도입을 예고한 레벨제는 2020년 도입을 시도했다가 내부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인사 평가를 하는 조직 내 리더(임원) 권한이 너무 강해진다는 점과 내부 경쟁 심화가 단기 성과 경쟁으로만 이어져 오히려 혁신과 협업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최 전 COO를 ‘테크비즈니스’ 부문 대표로 내정한 것에 대한 반발은 더 크다. 최 내정자는 사내 입지가 탄탄했으나, 2021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영입하고 승진시킨 사람이 최 내정자였기 때문이다.
네이버 직원의 절반 이상이 속한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지난 19일 최 전 COO 복귀에 대한 반대 성명을 내고 27일 대규모 반대 집회 예고와 함께 오는 26일까지 조합원 총투표에 돌입했다. 네이버 노조가 총투표에 나선 건 임금 단체 협상을 제외하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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