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경제정책 공약 전문가 진단
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저성장 돌파와 민생경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인공지능(AI) 산업에 100조원을 투입하고, 전 국민이 무료로 AI 서비스를 쓰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규제혁신처를 신설해 세율 인하·각종 세제 폐지 등을 통해 성장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해외로 옮겼던 기업이 국내로 복귀하는 ‘리쇼어링’을 촉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상에는 차이를 보이지만 결국엔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얘기다. 공약을 지키려면 재정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데,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후보는 한 명도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현실을 보면 암울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은 지난해 46.1%까지 치솟았고 2072년엔 173%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나라 살림 척도인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73조원으로 예상된다. 추경이 추가 편성되면 적자폭은 더 커지게 된다.
돈 풀고 세금 깎아 주겠다는 공약은 재정 건전성 악화를 부른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국가 신용등급 강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후보는 경제 성장을 위한 신산업으로 AI를 언급했다. 그는 AI 핵심 자산인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개 이상 확보, AI 전용 신경망처리장치(NPU) 개발 지원, AI 인재 20만명 양성 등을 목표로 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또 AI 규제 유예를 공식화하며 기술 추격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00조원은 2024년 정부 예산 656조여 원의 15%에 달하는 규모다. 물론 이 후보는 18일 대선 후보자 TV토론에서 “100조원을 정부 재정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을 위한 민간 자본을 유치해서 매해 순차적으로 투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국가가 미래 산업 육성에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아울러 그는 12조2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이 경기 활성화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추경을 통해 서민 경제를 살리고,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과 재생에너지, 문화 산업 등 첨단 산업을 육성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혁신에 투자하는 건 맞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우리나라 재정적자가 심각한데, 100조원을 감내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문수 후보의 경우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종 규제를 상시 관리·감독하는 ‘규제혁신처’ 신설과 대대적인 ‘감세’를 앞세웠다. 김 후보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 혁신 기업의 국내 진출을 막는 규제를 지적하며, “정부가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정책들”이라고 주장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현행 24%에서 21%로,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서 30%까지 내린다고 약속했다. 종부세 폐지뿐만 아니라 양도소득세 중과까지 없애겠다고 했다.
김 후보는 “국민 세금을 퍼붓고 국가채무를 확 늘리는 포퓰리즘 정책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감세 폭보다 훨씬 큰 감세정책을 그대로 실현할 경우 국세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같은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전문가들은 재정만 투입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1175조2000억원에 달했다. 2016년 600조원대이던 국가채무는 2021년 970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이 기간 34.2%에서 46.1%로 8년여 만에 10%포인트 넘게 뛰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40년 80%, 2050년 100%를 넘어서고 2072년에는 17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이미 61조3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재원 마련에 뾰족한 수가 없는 게 문제다. 다른 건 몰라도 캠프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교수 역시 “지금 수입으로도 재정 적자가 난 상황이다. 단순히 지출을 줄여서 균형 예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은 증세를 고려해야 하는데, 어떤 정치인도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잠재성장률이 떨어졌을 때 돈을 써야 하는데 이미 직전에 다 써버린 것”이라며 “증세도 정부 지출 효과를 상쇄시키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재정적자를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훈·양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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