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지은 기자] 요즘 예능계를 장악한 한 축은 단연 ‘부부 예능’이다. 처음에는 결혼 생활의 리얼한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을 ‘신선하다’고 표현했으나,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묘한 피로감과 냉소가 번지고 있다. ‘비혼을 부추기는 부부 예능’이라는 반응이 심심찮게 보이는 이유다.
한때 부부 예능은 ‘결혼이 미치는 긍정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춘 포맷이 주를 이뤘다. 부부의 일상에 웃음과 눈물을 녹여낸 예능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며 대중의 공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최근 부부 예능은 점차 그 방향을 틀고 있다. 갈등, 냉전, 위기의 서사로 무장한 콘텐츠는 오히려 ‘결혼의 회의감’을 조장하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시청률을 견인하는 장치로 ‘이혼 위기’ 혹은 ‘냉랭한 관계’가 적극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예능은 더 이상 관찰이 아니라 서스펜스 드라마의 형식을 띠고 있다. 언뜻 리얼리티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자극적인 편집과 과장된 자막이 반복되며 ‘저럴 거면 굳이 결혼해야 하나?’는 질문을 품게 만든다.
대표적인 부부클리닉 예능 MBC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과 JTBC ‘이혼숙려캠프’를 비롯해 지난해 방송된 LG헬로비전 ‘제2의 결혼전쟁 살까말까’와 2023년 방송된 MBN ‘쉬는부부’ 등은 ‘나빠진 부부 관계 회복’이라는 의도와 다르게 갈등 위주의 편집과 자극적인 사연에만 집중하면서 시청자에게 피로감을 주고 비혼에 대한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냐”, “결혼하기가 무섭다”, “시청자 화나게 하는 프로그램”, “보기 싫어도 영상이 너무 돌아다닌다” 등 차가운 반응을 내놨다.
‘연예계 대표 잉꼬 커플’ 최수종, 하희라 부부 역시 부부 클리닉 ‘우리는 잉꼬부부가 아닙니다’ 출연을 예고했다.
내달 23일 오후 8시 첫 방송되는 tvN STORY ‘우리는 잉꼬부부가 아닙니다’는 위기를 맞은 부부들의 실제 사연을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 최수종과 하희라가 각각 남편과 아내의 입장을 생생하게 연기하며 문제를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으로 개그맨 황제성, 양소영 변호사, 김지용 정신과 전문의가 카운슬러로 참여해, 다양한 시선으로 전문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잉꼬부부’가 기존 다른 부부 예능과 차별화를 꾀한 대목은 실제 커플이 방송에 출연하는 대신 사연을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해 실감 나는 재연과 깊이 있는 진단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최근 2030 세대 사이에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데는 사회·경제적 요인도 크지만, 문화 콘텐츠가 그 불씨를 키운 측면도 무시하지 못한다. 실제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비혼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19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의뢰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20·30대의 비혼 출산에 대한 찬성 비율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결과, 20대 남성은 2008년 32.4%에서 지난해 43.1%로 10.7%포인트 상승했고, 여성은 28.4%에서 42.4%로 14.0%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30대 남성의 찬성 비율은 28.7%에서 43.3%로, 여성은 23.9%에서 40.7%로 뛰었다. 특히 경력 단절, 시댁과의 갈등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비혼 출산 동의율 상승 폭이 남성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 예능이 단순한 갈등 콘텐츠가 아닌, 관계에 대한 건강한 질문을 던지는 장르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다.
물론 모든 부부 예능이 부정적인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유대감을 보여주는 포맷도 존재한다. 문제는 현재의 흐름이 분명히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부부 예능이 단지 ‘시청률을 위한 자극’에 그치지 않고,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이지은 기자 lje@tvreport.co.kr / 사진= MBC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 tvN STORY ‘우리는 잉꼬부부가 아닙니다’, JTBC ‘이혼숙려캠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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