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대상 시험서 감염 예방 효과 확인
2월 닭 대상 백신도 조건부 승인
가축 감염 막아야 인간 감염과 대유행 차단
미국 과학자들이 젖소의 젖소가 H5N1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지 않도록 막아줄 mRNA 백신을 처음으로 개발했다./getty
H5N1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1년 넘게 미국의 가축 농장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젖소를 위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이 처음으로 개발됐다. 대규모 접종이 이뤄지려면 추가 시험이 더 필요하지만, 가축을 통해 인간으로 조류 인플루엔자가 퍼지는 것을 막을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았다.
◇송아지 대상 시험서 예방 효과 확인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0일(현지 시각) “조류 인플루엔자가 인간에서 팬데믹(대유행)을 촉발하기 전에 억제할 방법을 찾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한 연구진이 소를 위한 최초의 mRNA 백신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의 스콧 헨슬리(Scott Hensley) 교수와 농무부 농업연구소(ARS)의 에이미 베이커(Amy Baker) 박사 공동 연구진은 “실험용 mRNA 백신이 젖소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강력한 면역반응을 유도하고 송아지의 감염을 예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난 6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키이브(bioRxiv)에 밝혔다.
헨슬리 교수는 네이처에 “이번 결과는 가축용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들고 팬데믹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가 동물과 인간 사이로 전염되는 위험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단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는 아직 정식 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논문으로는 발표되지 않았다.
H5N1 조류 인플루엔자는 닭과 칠면조 같은 가금류에 치명적인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의 변이종이다.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 단백질이 각각 5형, 1형이어서 H5N1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HA는 바이러스가 사람 호흡기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해준다.
지난해 3월 미국 농장의 한 젖소에서 H5N1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처음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 17개 주에 걸쳐 젖소 1000여 무리에 감염됐다. 농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를 중심으로 인체 감염 사례도 66건이나 나왔다. 지난 1월에는 인체 감염자 가운데 처음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가축에서 인간으로 넘어온 H5N1 바이러스가 인간 사이에 전염된다면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이어 또다시 글로벌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아직 인간 사이의 감염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헨슬리 교수는 팬데믹을 사전 차단하려면 젖소 간 감염부터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코로나19 대유행에서 위력을 발휘한 mRNA 백신을 개발했다.
mRNA는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든다. 코로나19 mRNA 백신은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돌기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였다. 헨슬리 교수 연구진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 유전자를 최근 젖소 농장에서 발견된 신종 H5N1 바이러스의 유전자로 교체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독감 백신을 시험하는 데 사용되는 실험동물인 페럿에서 mRNA 백신이 조류 인플루엔자를 예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송아지 10마리에 백신을 접종하고 49일 후 H5N1에 감염된 우유를 먹였다. 과학자들은 젖소들에 퍼진 H5N1 바이러스가 우유를 통해 퍼졌다고 추정한다. 인간 감염 역시 우유를 짜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시험 결과 백신을 접종한 송아지는 다른 송아지보다 바이러스 유전물질이 현저히 낮아 백신이 감염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완전한 성공으로 보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리처드 웹비(Richard Webby) 세계보건기구(WHO) 동물인플루엔자생태연구소장은 네이처에 “젖소 농장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전염은 대부분 수유 중인 성체에서 발생했다”며 “이번 연구는 송아지의 백신 반응만을 시험했다”고 지적했다. 헨슬리 교수 연구진은 이미 수유 중인 젖소를 대상으로 추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동물의약품 전문회사인 조에티스(Zoetis)는 2월 14일(현지 시각)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지난 1월 H5N1 감염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처음 나온 뒤 미국 내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공포가 커지자 정부가 가금류를 대상으로 직접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내놓은 방안이다./픽사베이/Pixabay
◇닭, 오리용 백신도 개발, 조건부 승인
다른 가축 백신도 개발되고 있다. 미 농무부는 올해 최소 7건의 동물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미국 동물의약품 전문회사인 조에티스(Zoetis)는 지난 2월 농무부로부터 닭에 접종할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조건부 승인은 긴급 상황에 사용 가능한 의약품이 없을 때, 안전성과 비슷한 효능이 입증된 의약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1년 안에 예방 효과를 증명하면 정식 승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조에티스는 미국 화이자의 동물보건사업부서에서 인적 분할해 독립한 동물의약품 분야 전 세계 1위 기업이다. 가축 백신, 항염증제, 진통제, 사료, 영양제 등 반려동물 의약품·의료기기 300개 이상의 제품군을 세계 100여 국가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 2020년에는 동물용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에게 접종했다.
WHO에 따르면 H5N1 조류 인플루엔자가 2003년부터 전 세계에 유행해 지난해까지 950명이 감염되고 464명이 사망했다. 치사율이 49%나 된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계속 확산하자 정부는 감염된 가축을 살처분했다.
최근 감염 농장 근처에 있다고 멀쩡한 가축을 모두 살처분하는 방식의 방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인도적이고 방역 효율도 낮다는 것이다. 백신은 그 대안으로 제시됐다. 살처분 방역은 장비, 인력과 보상비까지 마리당 1만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지만, 백신은 200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다. 트럼프 정부가 백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가축들에 퍼진 주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가축용 mRNA 백신이 인체 건강에 위험을 초래한다고 주장하며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과학자들은 트럼프 정부가 mRNA 백신 개발비를 삭감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참고 자료
bioRxiv(2025), DOI: https://doi.org/10.1101/2025.05.01.651548
Nature Communications(2024), https://doi.org/10.1038/s41467-024-48555-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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