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 점유율 1→10% 목표 제시
100대 기업 7곳 더 키워야 하지만
스타트업 지원 부족, 예산도 턱없이 적어
규제·제도 정비, 행정 속도도 높여야

우주항공청이 개청한 작년 5월 27일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이 경남 사천시 사남면 우주항공청 임시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스1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작년 5월 30일 개청식에서 2045년까지 우주항공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재 한국의 점유율은 1% 수준이다. 우주청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글로벌 100대 우주항공 기업에 들어가는 한국 기업을 3개에서 10개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글로벌 우주항공 100대 기업에 들어간 한국 기업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3곳이다. 이런 기업을 20년 안에 7개 더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주청은 정부와 공공 중심의 우주 개발인 ‘올드스페이스’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 역할을 자임했다.

아쉽게도 기업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KAI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같은 대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사업계획 변경이나 우주청의 이해하기 힘든 결정에 불만을 터뜨렸고, 우주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스타트업들은 “우주청의 존재감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 4월 29일 제주시 한경면 해상에 떠있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우주발사체 해상 발사장 세테시아1./뉴스1

◇“우주청, 존재감 부족…적극성도 없어”

우주청이 뉴스페이스를 내세웠지만 당장 기업이 쓸 수 있는 발사장 하나 없다. 국내에서 우주발사체를 쏘려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관리하는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을 가야 한다. 하지만 두 곳 다 발사 일정이 차 있어서 민간 기업이 쓰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제주도 해상 발사를 추진했지만 풍랑으로 발사장이 난파했다. 올해 발사도 불투명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의 준비 부족과 고흥, 안흥 발사장의 발사 스케쥴 문제 등이 겹쳐 발사장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노스페이스는 아예 해외로 눈을 돌렸다. 작년 3월 브라질에서 시험발사체 ‘한빛-TLV’를 쏜데 이어 앞으로도 브라질과 노르웨이에서 발사를 할 계획이다.

민간 발사장 건설이 급한데 우주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시절 세운 2031년 완공 계획만 고수한다. 한 우주 스타트업 관계자는 “발사장을 짓고 나면 발사체 스타트업이 모두 문을 닫은 뒤일 수도 있다”며 “완공 시기를 앞당길 묘수를 찾는 게 우주청을 만든 이유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규제나 제도 정비 속도도 느리다. 한 우주 기업은 레이저를 사용한 광통신 지상국 구축 승인을 받는데 1년이 걸렸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규정을 보면 빠르면 열흘, 늦어도 한 달이면 될 것 같았다”며 “우주청이 출범하고 우주항공 관련 행정에 속도가 붙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느려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달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에 LIG넥스원이 선정되자 KAI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KAI는 “위성 개발 실적이 없고 조립이나 시험 설비도 없는 LIG넥스원이 사업을 수주하는 건 말이 안된다”며 반발했다.

천리안위성 5호는 국내 첫 민관이 개발을 주관하는 기상 위성이다. 사업 예산이 3238억원에 달한다. 한 민간 우주 전문가는 “항우연이 위성 개발 사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LIG넥스원을 택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있다”고 말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이 지난 2월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회 국가우주위원회 관련 사전 기자브리핑을 하고 있다. 우주청은 이날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의 계획을 변경하겠다고 했다./뉴스1

◇차세대발사체 사업 변경, 신뢰 낮춰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 계획 변경도 우주청에 대한 신뢰를 낮추는 계기가 됐다. 이 사업은 2조원이 넘는 국비를 투입해 누리호 다음에 사용할 발사체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우주청은 출범 직후 재사용이 가능한 발사체로 개발하겠다며 사업 계획 변경을 결정했다.

우주청은 과기정통부의 특정평가를 받아 변경 계획을 빨리 추진하려 했지만, 과기정통부는 예산 증액 규모가 크다며 기획재정부의 적정성 재검토를 받도록 했다. 이 경우 최소 6개월이 걸려 연말에나 사업 계획 변경 여부를 알 수 있다.

차세대발사체 1차 발사는 2030년으로 예정돼 있다. 이 상태라면 개발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 우주 기업 임원은 “정권 교체기에 이렇게 큰 사업의 계획을 변경하는 게 어떤 이유든 불가능하다는 건 상식”이라며 “우주청이 가진 열의나 청사진은 별개로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주청과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는 다른 부처의 고위 공무원도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의 계획을 바꾸겠다고 특정평가를 신청한 것부터 넌센스였다”며 “지금 우주청은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을 일부러 지연시키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라고 말했다.

전남 고흥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항공센터 내 도심항공교통(UAM) 실증단지에서 국내 개발 기체인 오파브(OPPAV)가 시험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연합뉴스sh@yna.co.kr/2024-03-03 11:31:04/<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예산 태부족, 항공은 대표 사업도 없어

우주청이 그리는 뉴스페이스 청사진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올해 우주청 예산은 9649억원이다. 대부분 예산이 과기정통부 시절 계획한 사업들에 투입되고 있다. 누리호와 차세대발사체 개발에 투입되는 예산만 3106억원이다. 우주청이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는 이야기다.

김민석 한국항공우주산업협회 부회장은 “우주청이 매년 20%씩 예산을 올린다고 하는데 그런 속도로는 너무 늦다”며 “세계 시장 점유율 10%나 글로벌 100대 기업 7개 추가를 달성하려면 지금보다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기영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여러 사업을 무난하게 흡수하면서 연속성을 확보한 건 우주청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설립 당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항공 분야는 우주 사업에 비해 주목을 받는 사업이 없다 보니 우주청이 생긴 이후로 무엇이 좋아졌는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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