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테니스 스타들 도핑 강화 속앓이
신네르·페굴라 등 스트레스 호소
지난해 말 세계 테니스계를 뒤숭숭하게 만든 사건이 두 번 일어났다. 최정상급 기량을 보여주던 여자부 이가 시비옹테크(24·폴란드)와 남자부 얀니크 신네르(24·이탈리아)가 미량의 금지 약물이 검출돼 도핑 규정 위반 처분을 받은 것. 고의성은 없었다. 시비옹테크는 시차 적응을 위해 구매한 비(非)처방 약이 오염됐고, 신네르는 물리치료사가 금지 약물이 포함된 연고를 본인 상처에 바른 뒤 마사지하다가 침투된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그래도 규정은 규정”이라면서 시비옹테크에게는 1개월, 신네르는 3개월 정지 징계를 내렸다. 둘은 징계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이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코트를 주름잡던 두 스타가 의도치 않은 도핑 규정 위반으로 기세가 꺾이자 다른 선수들에게도 불안이 전염됐다.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은 최근 “선수들은 이제 감기약, 음식, 물 등 모든 걸 조심하게 됐다”며 “일정을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테니스 등 개인 종목에서 이 공포는 더 크다”고 전했다. 제시카 페굴라(31·미국)는 “호텔방에서 누가 내 (영양) 보충제를 건드릴까 봐 숨겨 놓는다”고 했다. 아리나 사발렌카(27·벨라루스)는 “모르는 물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안드레이 루블레프(28·러시아)는 “몸이 아파도 웬만하면 약을 먹지 않으려 한다”며 “매일 이런 염려 때문에 거의 미치기 직전”이라고 했다.
‘위치 정보 규정’이란 의무 조항도 간단하지 않다. WADA는 선수들에게 하루 중 불시 도핑 검사를 받을 수 있는 1시간과 장소를 정해두도록 요구한다. 이를테면 ‘오전 6~7시 뉴욕 숙소 호텔’ 같은 식이다. 이때는 검사관이 예고 없이 방문할 수 있다. 만약 이 약속한 시간대에 지정 장소를 떠난다면 어디 있는지 계속 정보를 수정해야 한다. 검사관이 도착했는데 자리에 없으면 경고 1회를 때린다. 1년에 경고 3회 누적이면 도핑 위반으로 간주해 1~2년 출전 정지 처분을 내린다.
선수들은 진절머리를 낸다. 알렉산더 즈베레프(28·독일)는 지난해 12월 딸을 공항에 데리러 갔다가 테스트를 위해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즈베레프는 “자유를 빼앗기는 느낌”이라고 했다. 전담 매니저를 둔 상위권 선수는 비교적 관리가 수월하지만,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하는 하위권 선수에게는 더 큰 고통이다. 남자 세계 69위 다미르 주무르(33·보스니아)는 “(검사관이 불시에 올까 봐) 정해둔 시간에 알람을 4개씩 맞췄다. 화장실 갈 때조차 (초인종이 울릴까 봐) 스트레스였다”라고 말했다.
다른 개인 종목도 사정이 비슷하다.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헐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여자 투포환 선수 레이븐 손더스(29·미국)는 2023년 고관절 수술과 어머니 사망이 겹치면서 혼란에 빠진 끝에 위치 정보 규정을 세 번 어겼다. 이에 12개월 정지 징계를 받았다. 남자 탁구 카낙 자(25·미국)는 위치 정보를 수정했는데도 앱 오류로 검사관과 만나지 못한 일이 반복되면서 지난해 1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WADA는 오는 12월 미량의 불법 약물 투여가 고의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되면 징계 수위를 훈계 또는 단기 출전 정지로 낮출 예정이다. 다만 ‘위치 정보 규정’은 손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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