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한-스위스 생명과학 심포지엄
생체공학·AI 활용, 질병 치료와 연구에 새 길
제12회 한-스위스 생명과학 심포지엄이 20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서울 호텔에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신체·인지 장애 극복을 위한 생명공학 기술을 주제로 양국 전문가들이 모였다./주한스위스대사관
작년 10월 열린 국제사이보그올림픽 ‘사이배슬론(Cybathlon) 2024’에서 신동준 연세대 기계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종목은 근육전기자극(FES) 재활로봇자전거 종목이었다. 임훈섭 선수는 2021년 교통사고를 당해 하지완전마비 장애를 얻었지만 당시 1960m의 트랙을 6분 2초에 완주해 우승을 차지했다.
신동준 교수는 20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 호텔에서 열린 ‘제12회 한-스위스 라이프사이언스 심포지엄’에서 “FES는 전기로 다리 근육을 자극해 마비 환자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라며 “FES 기술을 이용해 피로를 줄이면서 근육의 힘은 최대화할 수 있는 자극 패턴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신동준 교수 연구팀이 만든 재활로봇자전거를 타고 있는 임훈섭 선수. 임 선수는 교통사고로 하지완전마비 장애를 얻었지만, 사이배슬론 2024에서 완주하며 우승을 차지했다./연세대
신 교수팀이 개발한 기술은 하반신 마비 환자의 근육을 키워주는 재활 용도로 개발됐다.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이 기술을 이용해 일반인이 사이클 운동을 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신 교수는 “대회에 참가한 임 선수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방이 줄고 근육량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며 “허벅지 둘레도 8㎝가 늘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신체나 인지 장애를 극복하도록 돕는 혁신 기술이 매일같이 등장한다. 한국과 스위스는 장애 극복을 위한 바이오엔지니어링 분야의 최전선에 있다. ‘한-스위스 혁신주간 2025’를 맞아 열린 이 심포지엄은 장애 극복을 위한 최첨단 과학기술의 동향을 살피고, 한국과 스위스 과학자들이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번에 스위스 최고 연구자들이 대거 한국을 찾았다. 기조연사로 나선 실베스트로 미체라(Silvestro Micera) 스위스 로잔 연방공대(EPFL) 교수는 손과 손가락 신경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착용형 장치를 소개했다. 미세라 교수는 “10대에 영화 스타워즈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며 “의수와 사람의 신경계를 직접 연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베스트로 미세라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EPFL) 교수는 손과 손가락 신경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착용형 장치를 소개했다./주한스위스대사관
미세라 교수팀은 사람의 신경계와 의수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수를 착용한 사람도 진짜 손처럼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물건을 의수로 잡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물건을 손으로 쥐었을 때 느끼는 다양한 감각을 실제로 느끼도록 하는 기술이다. 미세라 교수는 “가장 어려운 건 무언가를 손에 쥐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온도를 구현하는 것이었다”며 “지금은 섭씨 25~37도까지 의수로 쥔 물건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 시베트(Yoan Civet) EPFL 인공근육센터 박사는 사람의 몸에 이식해 대동맥의 혈류를 조절해주는 소프트 액추에이터(구동기) 기술을 소개했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이 겪고 있는 심부전 같은 질환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시베트 박사는 “전기신호를 이용해 공기압을 제어하고 이를 통해 대동맥의 흐름을 조절하는 방식”이라며 “이 기술로 방광의 근육을 조절하는 바이오 방광이나 얼굴 근육의 소생에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브 페리아르(Yves Perriard) EPFL 교수는 당뇨 환자를 위한 신발을 발표했다. 전 세계 인구 10명 중 1명이 당뇨를 앓고 있고, 이 중 19~34%는 족부 궤양을 겪는다. 혈액 순환이 잘 안돼 상처가 잘 낫지 않기 때문이다. 페리아르 교수는 “당뇨 환자는 신경이 손상돼 발에 궤양이 생기더라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심각하게 진행되고 절단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우리는 신발 밑창에 발의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브 페리아르(Yves Perriard) EPFL 교수는 당뇨 환자를 위한 신발을 소개했다. 신발 밑창에 압력을 측정하고 조절할 수 있는 자기 유변 유체를 넣어 당뇨 환자의 궤양을 예방하는 기술이다./EPFL
페리아르 교수팀이 개발한 스마트 신발은 밑창에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 50개를 담았다. 압력이 높을수록 궤양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페리아르 교수는 “걸을 때 신발에 가해지는 압력을 측정하고, 어느 부분에 압력을 가하거나 덜 줘야 할지 데이터를 얻었다”며 “자기장에 따라 점성이 변하는 자기 유변 유체를 넣어서 발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미셸 메이어(Michael Mayer) 프리부르대학 아돌프 메르클레 연구소 교수는 몸속 인공기관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에 대해 소개했다. 전기가오리나 전기뱀장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대사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지속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다. 메이어 교수는 “사람이 숨을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전력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국내 연구자들은 인공지능(AI)처럼 바이오엔지니어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소개했다. 디지털 의료기기 업체 엘비스(LVIS)를 세운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AI 기반 뇌 질환 진단·치료 플랫폼인 뉴로매치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뇌 회로가 어떻게 소통하는지 직접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서 뇌 기능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사물을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설계된 시스템 또는 물체를 가상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전자공학과 교수가 창업한 엘비스(LVIS) 뉴로매치(NeuroMatch) 기술./조선비즈
이 교수는 “신약 개발 비용이 30억~60억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라며 “뇌 네트워크를 직접 보면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이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태준 울산대 의대 교수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 AI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종양 환자를 위한 임상시험 추천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전자의무기록(EMR)에서 환자 정보를 추출하고 임상시험 관련 기준을 AI에 학습시키면 환자에게 적합한 임상시험을 추천해주는 시스템이다.
전 교수는 “의료 분야에 대형언어모델(LLM)을 통합하는 것은 큰 흐름이고 주요 병원들도 이에 적극적”이라며 “대부분의 서비스는 임상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데 집중하지만, 병원 기록과 임상 지침, 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스위스 혁신주간 2025'를 맞아 열린 제12회 한-스위스 생명과학 심포지엄은 장애 극복을 위한 최첨단 과학기술의 동향을 살피고, 한국과 스위스 과학자들이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주한스위스대사관
이날 심포지엄에 모인 전문가들은 바이오엔지니어링 혁신을 위해 산업계와 학계, 공공 기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스위스 같은 기술 선도국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했다.
김현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개발혁신본부장은 “신경 인터페이스부터 AI까지 미래 헬스케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 헬스케어의 해답을 찾기 위해 한국과 스위스가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크 뒤크레(Jacques Ducrest) 스위스 교육연구혁신청(SERI) 국장은 “스위스는 생명과학 분야의 리더 국가이고, 한국은 빅데이터 분야가 성장하고 있다”며 “이번 심포지엄이 두 나라의 장기적인 혁신을 위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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