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40세 프로게이머 ‘무릎’ 배재민
천신만고 끝에 철권8 국제대회 제패
“불만은 불만이고, 이게 업이니까”… EWC·TWT 우승 야망
프로게이머 배재민(닉네임 무릎)이 19일 서울 마포구 DRX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피지컬이 생명이라 여겨지는 격투 게임의 세계에서 마흔을 목전에 둔 선수가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릎’으로 잘 알려진 프로게이머 배재민의 이야기다. 그는 얼마 전 9300여 명이 참가한 세계 대회 ‘EVO 재팬’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고 왕좌에 앉았다.
85년 6월생, 이제 마흔을 코앞에 둔 그의 개인 통산 우승 횟수는 122회에 이른다. “피지컬이 중요한 이 게임에서 어떻게 그는 아직도 왕일 수 있는가” 대회 영상에 달린 이 한 줄의 댓글은 그가 지금껏 걸어온 철권 인생과 여전히 날카롭게 빛나는 경기력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배재민은 자신도 더 이상 예전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젊을 때보다 확실히 게임할 시간이 줄었어요. 손목 통증도 있고, 오래 하면 확실히 힘들죠.”
그는 철권8에서 주 캐릭터인 브라이언에 집중했다. 예전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다루기보단 가장 손에 익은 브라이언을 밀도 있게 연습한 전략이 주효했다.
작년 부진을 떠올린 그는 “올해는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면서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스럽다. 40대 프로게이머도 여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면서 옅은 미소를 띠었다.
프로게이머 배재민(닉네임 무릎)이 19일 서울 마포구 DRX 사무실에서 인터뷰 전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20년이 넘는 선수 생활 동안 그에게도 변화는 있었다. 과거에는 피지컬 기반의 반응과 조작이 주 무기였다면, 이제는 ‘심리전’이 더 큰 무기가 됐다.
“상대의 심리를 더 빠르게 읽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이른바 ‘다운로드 능력’(상대의 패턴을 파악하는 기술)이죠. 지금이 그 부분에선 20대보다 더 나은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은퇴를 이야기하는 시선도 많지만 배재민은 아직 목표가 남아 있다.
“e스포츠 월드컵(EWC)이나 철권 월드 투어(TWT) 파이널 같은 대회는 아직 정복하지 못했어요.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들이죠. 그래서 계속 도전할 생각입니다.”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승부욕’
“한 번 우승의 맛을 보면 놓기 힘들어요. 특히 지면 너무 열 받죠. 스트레스도 크지만, 이겼을 때의 쾌감이 모든 걸 덮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계속 나를 끌고 온 것 같아요.”
숱한 우승 경력에도 이번 우승은 그에게 더 각별했다. 철권8의 시스템 변화는 기존 팬들과 선수들에게도 낯설고 당황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그 역시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배재민은 “납득하기 어려운 변화가 많았다”면서 “프로 선수 대부분이 불만이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스가 컸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게 업인 만큼 결국엔 적응할 수밖에 없죠. 해답은 연습뿐이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개발진도 피드백을 수용하려는 모습을 보여 점차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로게이머 배재민(닉네임 무릎)이 19일 서울 마포구 DRX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배재민이 시그니처 캐릭터인 브라이언 퓨리로 세계 대회를 제패하자 세계 팬들은 로망을 이야기했다. 브라이언은 게임 내 랭크 매치에서 강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대회에선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실제 월드 투어 기준 이 캐릭터의 우승 이력이 없었다. 하지만 배재민은 이를 극복하며 서사를 만들었다.
이전 시리즈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다뤘던 배재민이지만, 철권8의 변화는 그가 한 캐릭터에 집중하게 했다. 그는 “결국 손에 익은 캐릭터의 숙련도가 중요했다는 걸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배재민은 국내 못지않게 해외 팬들이 많다. 특히 철권 시리즈 원산지인 일본의 팬들 사이에서 그는 전설로 불린다.
“방송은 국내 중심이라 직접 소통은 어렵지만, 최근 유튜브에 자막을 추가하면서 해외 구독자들의 반응이 많이 달라졌어요. 댓글로 번역해줘서 고맙다는 인사가 자주 달립니다. 대회 현장에서는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며 팬들과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어요.”
그는 올해 다시 EWC 출전권을 확보했다. 작년보다 수월하게 티켓을 얻은 만큼, 더 여유로운 준비가 가능하다. 배재민은 “이번에는 오프라인 연습에 집중해서 꼭 우승하고 싶다”면서 “가장 욕심나는 대회”라고 의욕을 불태웠다.
격투게임이 e스포츠로 자리 잡은 시대의 변화도 그에게는 특별하다. 어릴 때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그는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올림픽 종목으로 지정되는 것을 보며 시대가 바뀐 걸 느꼈다고 했다.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스트리트파이터’ 금메달리스트를 보며 정말 신기하다고 느꼈어요. 동시에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겠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가대표로 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3년째 몸담은 프로게임단 DRX에 대한 애정도 크다. 배재민은 “락스 게이밍이 첫 프로팀이었는데 그 시절이 감사하게 느껴진다”면서 “DRX는 큰 게임단답게 체계적이다. 격투 게임 시장이 작을 수 있지만, 이 안에서 키우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그런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프로게이머 배재민(닉네임 무릎)이 19일 서울 마포구 DRX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철권이 가진 매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철권은 때릴수록 스트레스가 풀리는, 열 받지만 재밌는 게임입니다. 1% 남은 체력으로도 역전이 가능한 구조라 긴장감이 있죠. KO 슬로우 모션 연출과 마지막 일격에서 오는 도파민은 강렬합니다. 무엇보다도 100% 실력으로 승부 나는 개인전이라 더욱 매력적입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실력으로 싸워야 하고 누구 탓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팬들을 향한 감사 인사로 인터뷰를 맺었다.
“40대에도 게임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믿어준 팬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철권은 복잡한 룰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관전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성적으로 보답할게요.”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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