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청 1년 맞는 우주항공청
민·관 시너지 없어, 정책 집행 걸림돌만
무리한 R&D 업무 이관에 현장 불만도 커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대표 브랜드인 우주항공청이 오는 27일 개청 1년을 맞는다. 우주항공청은 ‘한국형 NASA(미 항공우주국)’를 표방하며 기존 정부 조직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화했다. 조직 구성과 인재 영입의 유연성을 강화했고, 임기제 공무원 비율 제한을 없애며 민간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영입할 수 있게 했다.
우주청의 얼개를 짠 노경원 차장은 “스타트업처럼 일하는 공무원 조직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스타트업과 공무원은 어쩌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이 어울리지 않는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한 민간 우주 전문가는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면서도 “지금까지는 공무원 조직과 민간 전문가들이 융합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작년 5월 30일 경남 사천시 우주항공청 임시청사에서 열린 우주항공청 개청식 및 제1차 국가우주위원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누리호 추가 발사 두고 내부 ‘이견’
우주청은 크게 두 개의 조직으로 구성된다. 우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넘어온 노경원 차장 산하의 일반직 공무원 조직이 있다. 우주청 안살림을 담당하는 기획조정관과 우주항공정책국, 우주항공산업국이다. 구성원은 대부분 과기정통부나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외교부 등 우주항공 관련 부처들에서 우주청으로 자리를 옮긴 공무원들이다.
NASA 출신인 존 리 본부장이 이끄는 우주항공임무본부는 민간 전문가 중심 조직으로, 우주항공 관련 연구개발(R&D)을 진두지휘하는 곳이다. 임무본부의 석·박사 비율은 80%에 달한다. 전체 정부 부처의 석·박사 비율은 15.7%에 그친다.
임무본부의 민간 전문가는 임기제 공무원으로 선발했다. 임기가 ‘5+5년’으로 최대 10년에 그치지만, 민간 전문가 영입을 위해 임금을 높였다. 5급 선임연구원의 연봉이 8000만~1억1000만원에 달한다. 민간 기업에 비하면 적지만 공무원 조직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다. 존 리 본부장만 해도 연봉이 2억5000만원으로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우주청은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들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출범 초기만 해도 아직 조직이 자리 잡지 않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변명이 통했다. 하지만 1년 지나 직원이 정원의 95% 이상 채워져 완전체가 됐어도 공무원 조직과 민간 전문가들의 시너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우주청 안팎의 이야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추가 발사를 둘러싼 이견이다. 누리호는 현재 6차 발사까지 예정돼 있다. 누리호 기술을 이전받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누리호에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중소·중견 기업들은 우주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해 누리호 추가 발사 계획을 확정해 달라고 우주청에 요청하고 있다.
단별 조립이 진행 중인 누리호 4호기의 모습./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청은 위성 수요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발사 계획을 확정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가 국방 위성을 누리호 추가 발사 때 탑재하겠다는 제안을 우주청에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방 위성 2기를 주 탑재 위성으로 실으면 누리호 7차 발사의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우주항공산업국은 최근 열린 우주청 내부 회의에서 이 안건을 올리며 자체 예산을 써서라도 추가 발사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임무본부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기술을 이전하기로 한 상황에 우주청 예산으로 추가 발사를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박재성 우주청 우주수송부문장은 “위성 발사 수요가 있다면 정식으로 발사체 계약을 맺고 진행을 해야지, 국방 발사라고 해서 ‘우주청이 돈을 대면서 발사를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누리호 추가 발사에 우주청의 예산을 사용하게 되면 청 내에 투입해야 할 다른 사업에 들어갈 돈을 조정해야 하는 부분도 생긴다”며 “누리호 추가 발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 발사를 정하기 전에 발사의 성격이나 기술이전 같이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주항공 업계에서는 누리호 추가 발사를 놓고 벌어진 산업국과 임무본부의 이견이 공무원 조직과 민간 전문가 조직의 태생적인 차이에서 나왔다고 본다. 이런 이견이 여러 사업에서 반복되다 보니 우주청의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업무 효율도 떨어뜨렸다. 누리호 추가 발사 계획을 확정하는 것만 해도 몇 달 씩 끌 일이 아니라는 게 우주청 바깥의 시각이다.
한 민간 우주항공 전문가는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서도 임무본부가 주저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며 “일반직 공무원들도 임무본부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시너지보다는 마찰음이 더 큰 편”이라고 말했다.
경남 사천의 우주항공청 임시청사 전경. 주위에 다른 시설이나 인프라 없이 우주청만 동떨어져 있다./연합뉴스
◇간단한 업무도 미숙…“기대가 실망으로”
우주청 출범을 기다렸던 우주항공 업계는 지난 1년 동안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한 우주 스타트업의 대관 담당 임원은 “한국연구재단이 맡고 있던 우주항공 분야 R&D 사업과 과제를 우주청이 이관받는 과정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며 “정부 과제 관리를 해본 적이 없는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기본적인 행정 처리부터 불편함이 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는 우주청이 제시하는 여러 청사진이 정말 실현될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기 시작했다”며 “지금 예산 시즌인데 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나 다른 정부 부처와 협의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고 했다.
우주청도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 많다. 기존 정부 조직에서는 사문화돼 있는 면직 조항을 되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무원 조직의 스타트업을 표방한 만큼 신상필벌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노경원 우주청 차장은 “우주청이 출범한 첫 해였던 작년에는 면직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직이 자리 잡은 만큼 연말 평가에서 면직 규정을 적용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 우주 기업 임원은 우주청이 업계와의 소통을 강조하는데, 우주청 내부의 소통이 더 시급해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임원은 “우주청 공무원 중에는 민간 전문가들을 ‘임기제’라고 통칭하면서 몇 년 뒤에 나갈 사람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며 “차장과 임무본부장 산하 직원들 사이에 있는 반목부터 풀어야 외부와의 소통이 제대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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