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윤 도쿄농공대 박사후연구원 인터뷰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 지구와 환경
반달곰·사슴 등 대형 포유류 6종 서식지 변화 추적
재일 한국 과학자 주도...日언론도 주목
일본 반달가슴곰은 최근 20년간 서일본에서 서식지 분포가 확대됐다./모리오카시 동물공원
요즘 일본에서는 사슴과 곰, 멧돼지가 마을에 나타나 농작물을 먹어 치우고 사람까지 공격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일본 중앙 알프스 같은 외딴 지역이 아니라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홋카이도와 규슈 같은 곳에서 야생동물과 전쟁이 심심치 않게 펼쳐지고 있다. 2023년엔 곰이 사람을 공격한 사례가 역대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피해가 늘자 급기야 일본 정부는 총기 사용 조건을 완화하는 조수 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국회 결의를 앞두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물학자인 백승윤 도쿄농공대 박사후연구원(조교수)은 “지구 온난화와 인구 감소로 대형 포유류 분포가 확대되면서 인간과 동물이 공간을 두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 연구원과 그의 석박사 학위 지도교수인 고이케 신스케 도쿄농공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일본 내 대형 포유류 서식지가 기후변화와 인구 소멸과 확대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달 16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 지구와 환경에 공개했다. 백 연구원은 이번 연구에 제1 저자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백승윤 도쿄농공대 박사후연구원과 고이케 신스케 도쿄농공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일본 내 대형 포유류 서식지가 기후변화와 인구 소멸과 확대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달 16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 지구와 환경에 공개했다. 백 연구원은 이번 연구에 제1 저자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백승윤 제공
전 세계적으로 인간 생활권이 확대되면서 대형 포유류의 서식지와 분포도 줄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반대로 대형 포유류 개체수와 서식지가 늘고 있다. 일본도 최근 40년간 대형 포유류의 서식지가 늘고 있다.
백 연구원에 따르면 한때 일본도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대형 포유류들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최근 40년간 멧돼지와 반달가슴곰, 산양, 원숭이, 꽃사슴, 불곰 같은 대형 포유류 활동 범위가 급속히 늘었다. 농사가 풍년인 해는 이듬해 봄 반달가슴곰과 같은 대형 포유류들이 출몰할 가능성도 올라간다.
백 연구원은 40년간 수집한 자료를 이용해 대형 포유류 분포 변화에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했다. 연구진은 1978년과 2003년, 2014년의 반달가슴곰과 멧돼지의 서식 분포, 2017년 반달가슴곰과 원숭이, 불곰 서식 자료를 분석에 사용했다.
백 연구원은 “이들 동물은 40년 전만 해도 산에 산다고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40년간 일본에서 대형 포유류의 분포는 빠르게 확대됐다. 이 기간에 사슴은 2.6배, 멧돼지는 1.9배, 반달곰은 2.0배, 산양은 2.1배, 일본원숭이는 2.1배, 불곰은 1.9배 서식지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멧돼지는 매년 서식지가 174.9㎢ 늘어나며 이제는 멧돼지가 살지 않은 지역은 없을 정도로 분포 지역이 늘어났다. 반달가슴곰은 서일본에서 서식지 분포가 확대됐고 불곰은 연평균 35.2㎢로 비교적으로 느리게 서식지가 확대됐지만 현재 홋카이도의 80%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포유류 서식지가 이렇게 늘어난 이유를 정밀하게 알아내기 위해 일본 전국을 가로 5㎞, 세로 5㎞의 작은 구역으로 나눴다. 그런 다음 야생동물의 서식 환경에 변화를 주는 토지 이용, 지형, 강설량, 인간 활동(야간 조명), 경작 포기지, 주아압력(Propagule pressure·외래종이 새 정착지에 들어와 정착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같은 요소가 그 사이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살펴봤다.
a 국지 규모에서 대형 육상 포유류는 이용 가능한 모든 지역 중 상대적으로 더 높은 질을 가진 서식지를 점유할 가능성이 더 높다. b 장기적인 서식지 확장은 남아 있는 고품질 서식지의 이용 가능성을 제한하고, 점차적으로 지역적 규모에서 절대적인 측면에서 더 낮은 질을 가진 서식지를 점유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대형 포유류 종의 서식지는 인간이 지배하는 경관에 더 가깝게 확장될 가능성이 높고 인간과 동물 간 갈등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요소는 실제로 대형 포유류의 최근 서식지 확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사슴과 멧돼지, 반달곰, 산양은 1978년부터 2003년까지 혼슈와 규슈, 시코쿠, 시코쿠에서는 인간 활동(야간 조명)이 적은 지역, 버려진 농경지가 많은 지역으로 서식지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불곰은 1978년부터 2003년까지 경작지가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반대의 패턴을 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형 포유류들은 대부분 농경지가 더 넓은 지역으로 분포를 확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대형 포유류들은 또 눈이 적게 내리고 이전에 사람이 살던 지역과 가까운 곳으로 서식지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백 연구원은 야생동물이 급속히 서식 범위를 확대하는 원인을 인구 감소와 지구 온난화에서 찾고 있다. 일본도 한국처럼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고 농촌 인구가 줄면서 버려진 경작지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대형 포유류들이 이렇게 버려진 농촌 지역으로 생활 영역을 확대면서 인간과 접촉과 갈등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강설량이 줄어든 고위도 지역과 고도가 높은 지역으로 서식지가 확대된 경향도 확인됐다.
백 연구원은 인간과 동물과의 공존을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 두기와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백 연구원은 “대형 야생동물의 서식 밀도가 증가하면 인간과 접촉 면적이 늘어나면서 갈등도 늘고 인수공통감염병 위험이 늘어날 수 있다”며 “동물 보존 측면에서 서식 지역이 확대되는 건 버람직하지만 인간과 공존을 위해서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4대 주요 섬인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에 걸쳐 사슴(a), 멧돼지(b), 반달가슴곰(c), 일본산양(d), 일본원숭이(e), 불곰(f)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각 격자는 약 5×5㎞의 영역을 나타낸다. 진한 파란색 영역은 1978년에 조사된 분포 범위를 나타낸다. 2003년으로 표시된 녹색 영역과 2014년, 2017년으로 표시된 노란색 영역은 새롭게 확장된 분포 범위를 나타낸다.
이 연구는 장기 기록 자료를 활용해 일본의 사회 문제로 떠오른 야생동물의 출몰 문제의 원인을 다룬 매우 드문 연구여서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가 일본의 야생 동물 연구를 주도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백 연구원은 제주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농공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곰 연구에 관심이 많아 곰 서식지와 대형 포유류 자료를 비교적 잘 축적해 온 일본으로 건너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 언론도 이번 연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요즘 일본 사회에선 곰이나 사슴이 사회적으로 자주 이슈가 되고 있다. 곰이 산에서 내려와 노인이 다쳤다는 뉴스가 나오고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와 지구 온난화 같은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도 관심을 끄는 주제라 그런 것 같다.”
-일본에서 야생동물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원래 반달곰에 GPS(글로벌위치확인시스템) 추적기를 달아 활동과 행동을 추적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포함된 일본의 반달가슴곰은 한국 반달가슴곰과 같은 종이다. 서아시아부터 시베리아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하지만 대부분 멸종 상태다. 반면 일본은 매년 수천 마리의 반달가슴곰을 포획할 정도로 개체수가 풍부한 편이다. 연구 자료도 많아서 여기서 배우고 가면 나중에 한국의 반달가슴곰 보존에 이바지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아 오게 됐다.”
-한국과 일본의 서식 환경은 아주 다른가.
“한국이나 일본이나 도시화, 고령화는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도로 밀도가 높아서 서식지 파편화가 많이 진행됐고 결과적으로 대형 포유류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일본도 18~19세기부터 사냥과 화전을 하면서 한때 대형 포유류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최근 지방 인구가 소멸하면서 민가가 사라지고 농경 활동, 포획 활동이 줄면서 동물들이 선호하는 영역이 확대됐다. 일본은 한국보다는 서식 환경이 좀 더 나은 편이다.”
-40년 새 대형 포유류의 서식지가 변한 거 같다.
“시기마다, 종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20년 전까지 야생동물들은 인간 활동이 많은 지역은 피했다. 경작지가 더 적은 쪽으로 다녔다. 하지만 최근 20년 새 야생동물들은 경작지가 많은 쪽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물론 농경지이긴 하지만 경작 포기지가 많은 지역이다. 눈이 적게 오는 지역으로 서식지를 확대하는 현상도 확인됐다.”
일본 전역에서 인간과 대형 육상 포유류 사이의 갈등이 증가하고 있는 사례를 보여주는 지도.
-최근 일본에선 ‘곰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원숭이가 사람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어떤 동물들이 말썽을 부리나.
“주로 사슴과 멧돼지, 곰이다. 2023년에는 곰 피해가 좀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주로 문제가 되는 건 사슴이다. 심각한 농작물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원래 있었던 이 종은 꽃사슴이라고 불린다. 고라니는 먹이를 좀 골라 먹지만 이 녀석들은 주변에 있는 열매나 작물을 다 먹어 치운다. 먹는 양도 많아서 산림의 식생을 황폐화하고 있다. 산 아래 나무와 풀을 먹어 치우면서 심지어 산사태까지 유발하고 조류와 곤충의 번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반달가슴곰은 한국에선 보호종인데 일본에선 천덕꾸러기인 거 같다.
“일본에 반달가슴곰이 사는 걸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외국 학회에 가도 일본에 반달가슴곰이 사는지 모르는 학자들도 많다. 사실 홋카이도에만 불곰이 살고 그 아래 지역에는 반달가슴곰이 주로 산다. 일본은 한국이나 다른 서식지와 달리 반달가슴곰이 흔하다. 이들의 공격을 받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피해가 늘어나면서 곰을 잡는 것을 완화하는 추세이다. 지금도 1년에 3000마리에서 5000마리 정도 잡고 있다.”
-포식자가 없어서 통제가 안 되는 건가.
“아무래도 그렇게 보는 시각이 많다. 일본에도 최종 포식자인 늑대가 한때 살던 적이 있다. 포식자로서 사슴을 압박할 유일한 종이 사라진 뒤 일본 내 상위 포식자는 반달가슴곰과 불곰 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반달가슴곰은 주로 채식을 하기 때문에 어떤 압박 수단도 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와 인구 소멸 중 야생동물 서식지 확대에 더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둘 중 어느 것이 먼저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동물도 인간처럼 더 살기 좋은 곳을 선호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이 동물 활동을 제한하는 데 큰 영향을 줬던 것은 분명하다. 인구 소멸이 계속되면 동물이 활동할 공간이 더 열리고 공간도 확대될 것이다. 온난화가 지속되면 더 높은 산악 지역이나 추운 지역에 눈이 덜 온다. 먹이가 되는 풀과 나무가 그만큼 잘 자라고 이동이 편해지게 된다.”
-대형 포유류 서식지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충돌은 불가피할까.
“일본에선 일단 야생동물을 보존하면서 문제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먼저 개체 수를 조절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상금을 지원하고, 마지막으로 서식지를 관리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최근 조닝(zoning·구획화)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먼저 야생동물이 사는 지역, 사람이 사는 지역, 그 중간에 완충 지역을 설정하면 그 다음으로 완충 지대에선 야생동물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만 잡고 인간이 사는 지역에서는 무조건 잡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백승윤 도쿄농공대 박사후연구원이 컴퓨터 모니터로 대형 포유류 분포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백승윤
-왜 야생동물과 거리두기가 필요할까.
“야생동물과 접촉이 늘어나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확산할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인수공통질환인 만성소모성질환(CWD·사슴광우병으로 불리는 프리온 질환)이 확산하면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야생동물하고 인간이 가까운 환경에서 함께 살게 되면 인수공통감염병이 확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공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동물과 갈등이 계속되면 없애야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에선 걱정할 필요가 없을까.
“상황은 다르지만 이런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 한국은 아직 야생동물 보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야생동물이 점점 분포 범위를 확대하고 서식지를 회복하면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 본다. 한국도 지방의 인구 소멸이 진행되고 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줄면서 인간 활동이 줄면 동물들이 그만큼 찾아오기 쉬워진다.”
-다음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
“인구 소멸과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공존을 이어갈지 가장 큰 관심사이다. 지금 일부 지역에서는 조닝(구획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유효한지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연구는 이런 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대형 포유류와 공존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형 포유류와 인간 간에 갈등이 생기면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면서 어렵게 우리 곁으로 돌아온 동물들을 다시 없애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대형 포유류들의 서식지가 어떻게 확대되는지 메커니즘과 생태를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관리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공존을 위한 우리 연구의 핵심이다.”
참고 자료
Communications Earth&Environment(2025), DOI : https://doi.org/10.1038/s43247-025-02261-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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