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거를 불과 보름 남짓 앞둔 지난 18일 ‘개헌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권력 독식 포비아’를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비상계엄·탄핵 사태로 흩어진 보수 표심은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캐스팅보트로 부상했다. 그러나 의회 170석을 점한 민주당의 ’입법·행정권 독식’에 대한 이들의 우려가 큰 상황이라 이재명 후보 입장에서는 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9일 서울 용산역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방탄유리가 설치된 유세차 위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실제로 국민의힘은 곧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고 나섰다. 19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재명 후보의 ‘대통령 4년 연임’ 개헌 구상에는 민주당의 장기집권 의도가 깔려있다”고 했다. 또 “표면적 명분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자는 것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권력의 축을 다시 짜고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 게 드러난다”고 했다. 회의에선 ‘(러시아 대통령)푸틴식 장기집권 개헌’이란 말도 나왔다.
최근 지도부 비공개 회의에선 ‘영구집권용(用) 개헌’이란 점을 집중 공격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헌법상 연임 규정은 보통 개헌 당시 대통령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부칙에 관련 조항이 명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 후보도 이 부분을 거듭 언급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사실상 영구집권을 생각하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개헌을 하면서 그 규정도 고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이 후보가 전날 발표한 개헌 공약의 핵심은 ‘대통령 권력 분산’이다. 2600자가 넘는 개헌 공약문은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거부권 행사 제한처럼 “대통령의 책임은 강화하고 권한은 분산하자”는 이 후보 선언에 맞춰 작성됐다.
구체적으로 ▲대통령 4년 연임제 ▲대통령 결선투표제 ▲대통령 거부권 제한 ▲비상명령·계엄 선포 시 국회 승인제 ▲감사원 국회 이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검찰총장·경찰청장, 방송통신위원장·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국회 임명 동의제 등이 담겼다.
현행 대통령 직속 기관인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고, 국무총리는 물론 수사기관 수장을 임명할 때도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총리 추천제는 국회가 국무총리 후보자를 복수로 추천한 뒤, 대통령이 이 가운데 선택해 임명하는 제도다. 이 후보는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해 군사 쿠데타를 하거나 국가 권력을 남용해서 국민 인권을 짓밟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간 이 후보는 개헌에 대해 소극적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민주당 경선 당시인 지난달 23일 TV토론에선 “개헌 문제를 그렇게 시급하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것도 아니고 개정된 헌법이 즉시 시행되는 것도 아닐텐데 여유를 두고 경제와 민생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었다. 이달 12일까지만 해도 개헌이 빠진 ‘10대 정책공약’을 발표했다. 지난 대선 때 10대 공약에 넣었던 개헌을 제외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선·개헌 동시투표’를 제안한 당시에도 이 후보는 “내란종식이 먼저”라며 반대했었다. 물론 민주당은 이 후보가 비상계엄 이전부터 개헌안을 준비해왔다며 “개헌을 반대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국민의힘이 ‘내란 책임’을 희석할 목적으로 개헌을 꺼냈다고 보고, 지지층의 ‘내란종식 우선’ 요구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이번 개헌 공약은 민주당이 이 후보 관련 형사재판을 무력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왔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판결한 선거법 위반 혐의 자체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하거나, 대통령에 당선되면 형사재판을 멈추도록 법을 바꾸는 식이다.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집권 시 모든 권력을 무소불위로 행사할 거란 두려움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면서 “이 후보로서는 ‘개헌’이란 담론으로 그런 우려를 최대한 해소하고, 자신에 대한 각종 논란도 잠재우는 효과를 노릴 것”이라고 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일종의 포비아가 중도·보수층에 있다는 걸 후보도 인지하고 있다. 그걸 해결하는 게 마지막 과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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