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가 대만에 연구개발(R&D)·설계 거점을 새롭게 마련하기로 하면서 업계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대만이 단순 지사가 아닌 미국 외 시장을 공략할 글로벌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인공지능(AI) 제조 생태계가 포진한 대만과의 협력으로 기술 주도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와 대만과의 밀월 관계가 더욱 끈끈해지면서, 한국 반도체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소외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엔비디아 대만 신사옥 '콘스텔레이션'. 우주선 형상을 했다고 해 소개영상에서는 착륙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사진= 김영호 기자)
◇대만과 더 가까워지는 엔비디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9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에서 투자를 발표했다. 엔비디아가 대만에 미국 본사에 버금가는 규모를 갖출 것이란 전망이 지난해서부터 이어졌는데, 이를 최종 확정했다. 황 CEO는 작년 컴퓨텍스를 위해 대만 방문 당시 “향후 5년 내 대만에 대규모 R&D·설계 센터를 지을 예정”이라며 “최소 1000명 이상 엔지니어를 고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엔비디아가 대만에 '제2 본사'로 불릴 거점을 대만에 두는 건 AI 생태계 때문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칩 생산을 위해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및 첨단 패키징·테스트 기업(OSAT)과 긴밀히 협력해왔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와 1위 OSAT 기업인 ASE 등이 꼽힌다.
또 AI 반도체 칩을 공급하려면 서버 제조사가 필수다. 대만에는 폭스콘·콴타·위스트론 등이 서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엔비디아 AI 반도체 칩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에 공급되기 위한 주요 공급망이자 핵심 파트너다.
엔비디아는 대만 R&D·설계센터를 통해 대만의 AI 생태계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기존 하드웨어 제조 생태계에 더해 엔비디아의 설계 역량을 더하려는 것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대만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19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뮤직센터에서 '컴퓨텍스 2025' 기조연설을 통해 폭스콘, 대만 NSTC, TSMC와 함께 대만에 슈퍼 AI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 = 김영호 기자)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한국은 엔비디아 생태계 소외 가능성
대만을 통해 엔비디아가 직면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에 본사를 둔 엔비디아는 미·중 갈등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AI 반도체 칩 시장 1위인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의 대(對) 중국 첨단 기술 통제에 직·간접적 타격을 받고 있다.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에 첨단 AI 반도체 칩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을 놓치기 쉽지 않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중국 내 AI 인프라 투자도 지속 확대되고 있다.
대만 기지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최근 AI 등 첨단 정보기술(IT) 인프라 투자가 급증하는 중동 시장까지 진출할 교두보 역할도 예상된다. 엔비디아가 미국의 수출 규제에 반기를 들긴 어렵지만,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대만을 통해 기술 통제·관세 등 각종 리스크를 분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의 대만 투자는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엔비디아가 대만에 보다 가까워질수록 한국 반도체 제조 생태계 역할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만 공급하는 하청국가로 남을 우려도 제기된다. 구체적으로 한국 반도체 위탁생산 기회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 엔비디아가 대만 R&D·설계 거점을 통해 TSMC와의 동맹을 강화하면, 한국 파운드리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엔비디아가 대만에서 R&D 및 설계 역량을 키울 경우 TSMC와의 협력 시너지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이 때문에 엔비디아의 위탁생산 물량을 한국이 가져오는 것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AI 수요에 급부상한 첨단 반도체 패키징 시장 역시 대만에서 주도권을 뺏어오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반도체 패키징 업체 대표는 “TSMC 중심의 대만 첨단 패키징 생태계 탓에 한국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엔비디아의 대만 투자가 확대될 경우 이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관객들이 19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뮤직센터에서 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컴퓨텍스 2025' 기조연설을 듣고 나오고 있다. (사진= 김영호 기자)
타이베이(대만)=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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