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파이낸셜뉴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NATO 평화·안보 과학(NATO-SPS) 회의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참석했다. ‘안보와 번영을 위한 우주의 진화: 위협, 방어, 협력’을 주제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전 세계 전문가들이 모여 우주의 미래와 안보, 그리고 국제 협력을 통한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오늘날 우주는 과거 냉전시대의 강대국 경쟁 무대를 넘어 민간기업, 신흥국,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복합적으로 얽힌 공간으로 변모했다. 통신·재난대응·국방 등 우리의 일상과 국가 시스템은 우주 기반 기술에 깊숙이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규율할 보편적 규범은 여전히 미흡하며, 우주 쓰레기 문제와 군사적 경쟁 심화는 우주 환경을 점점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회의에서는 우주 안보를 둘러싼 위험 관리와 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현재 글로벌 차원의 통일된 규범 체계가 부재한 가운데,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우주 선점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간 갈등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다자 이해관계자 접근법’을 통해 초기 신뢰 구축과 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우주는 정치, 경제, 법률, 윤리 등 다양한 분야가 얽힌 복잡한 문제이므로, 한국도 분야 간 협력을 강화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반면, 우주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하나는 국제 규범이 약화되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우주가 무정부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 공유와 국제 협력을 통해 인류 공동의 우주 거버넌스를 실현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다. 이런 엇갈린 전망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협력을 이어가는 균형 있는 접근이 중요하다.
이러한 논의는 한국이 우주를 단순한 기술 개발이나 경제적 수단의 차원을 넘어, 글로벌 우주 거버넌스의 주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글로벌 우주 규범 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국은 중견국으로서 우주 신흥국과 강대국 간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국제적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규범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과학기술 외교를 중심으로 학제 간 융합 연구를 장려해야 한다. 우주 안보, 지속가능성, 국제법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을 통해 국제 사회 내 한국의 전략적 영향력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국민적 인식을 제고하고 우주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 우주 정책은 소수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넷째, 지속가능한 우주 환경 조성을 위한 실질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과 국제 공동 이니셔티브를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우주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며, 과학기술을 통한 평화와 번영은 우리가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책무다. 한국이 우주 거버넌스 구축의 중심에 설 때, 우리는 단순한 기술 추격국을 넘어 글로벌 질서를 설계하는 리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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