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계열 골프장을 이끄는 이정윤 대표는 코스 구석구석을 살피는 현장 경영으로 최상의 코스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골프장 점검을 위해 스쿠터를 이용하는 이 대표가 모습을 취하고 있다. 실제 운전에는 헬멧을 착용한다. 코오롱 제공
- 22일 개막 제67회 대회 새 무대로 옮겨 열전 나흘
- 20년 넘게 치른 우정힐스 리뉴얼로 변경
- 30년 골프장 한 우물, 현장 전문경영으로 명성
국내 최고의 골프대회 코오롱 제67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가 22일부터 25일까지 열립니다.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이 대회는 한국의 남자골퍼라면 누구나 제1순위로 우승하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입니다.
1958년 막을 올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숱한 필드의 스타를 배출했습니다. 한국 골프의 전설로 불리는 한장상은 대회 4연패를 달성한 뒤 다시 대회 3연패를 이루며 역대 최다인 7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역대 우승자 면면을 보면 최상호, 김종덕, 최광수, 최경주, 양용은, 배상문, 강성훈, 김대섭 등 화려하기만 합니다. 한국오픈 우승을 발판으로 삼아 해외에서도 K-골프를 빛냈습니다.
<사진> 한국오픈에 3차례 출전한 단골손님 로리 매킬로이. 리키 파울러, 양용은, 배상문 등의 모습도 보인다. 채널에이 자료
세르히오 가르시아, 존 댈리, 비제이 싱, 리키 파울러 등 거물들도 초청 선수로 우승 트로피를 안았습니다. 올해 마스터스 우승을 통해 그토록 고대하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로리 매킬로이도 과거 20대 초반 시절 한국오픈에 3차례 출전해 준우승 1회, 3위 2회의 성적을 남겼는데 필자도 앳된 얼굴의 매킬로이를 현장 취재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처럼 그린의 별들이 총출동해 최상의 기량을 펼치려면 무엇보다 최상의 코스 컨디션이 필수입니다. 가령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는데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다면 변별력을 잃어 우수한 수험생을 선발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2003년부터 해마다 한국오픈을 유치하고 있는 이정윤 대표. 코오롱 제공
해마다 출전 선수와 우승자는 달라지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한국오픈을 지키는 숨은 주인공이 있습니다. 대회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는 코오롱 계열 골프장을 이끄는 이정윤 그린나래 대표(66)입니다.
이정윤 대표는 1995년 1월 7일 충남 천안 우정힐스CC로 발령이 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만 30년 넘게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골프장 전문경영인입니다. 특히 2003년부터는 우정힐스에서 한국오픈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는 주역으로 꼽힙니다.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골프협회(회장 강형모)와 끈끈한 협업을 통한 명품 코스 세팅으로 출전 선수들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코스 관리나 체육 지도 관련 자격증까지 취득했을 정도입니다.
올해 이정윤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특히 한국오픈에 대한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우정힐스가 개장 후 32년 만에 코스 개보수에 들어가면서 대회 장소를 같은 코오롱 계열의 강원 춘천 라비베엘CC 듄스코스(파71·전장 7423야드)로 옮겨 치르기 때문입니다.
이정윤 대표는 “어느덧 개장 후 30년이 넘은 우정힐스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5개월 동안 휴장하고 그린 리뉴얼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라며 “18개 홀 그린과 연습그린 3개 등 총 21개 그린을 새롭게 조성했다. 그린 주변의 조시아잔디가 한국오픈 대회까지 활착이 안 되는 관계로 장소를 변경하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회장 최동호)의 산하기관인 한국잔디연구소에 따르면 흔히 조선(한국) 잔디로 불리는 ‘조시아잔디Zoysiagrass)’는 들잔디라고도 하는데 따뜻한 기후에 강한 난지형 잔디로 여름이 뜨거운 한국 기후에 안성맞춤이라고 합니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면서 불볕더위에도 잘 견딜 수 있는 품종인 거죠.
<사진> 처음으로 한국오픈을 치르는 춘천 라비에벨 듄스코스. 라비에벨 제공
이정윤 대표는 “2016년 개장한 라비에벨 듄스코스가 한국오픈 본선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한국오픈 먼데이(예선전)를 개최해 왔고 영건스 대회로 개최할 정도여서 남자 선수들에게 변별력 있는 코스다. 이번 기회에 듄스코스도 널리 알릴 기회로도 삼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라비에벨 듄스 코스는 국내 최초로 산악 지역에 조성된 코스로 자연 상태를 그대로 활용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대한골프협회의 코스레이팅에 따르면 듄스 코스 블랙티 기준으로는 76.6타입니다. 담당 전문가인 대한골프협회 안형국 차장은 “가상의 골퍼(스크래치-핸디캡이 0인 골퍼)가 플레이할 때 4.6타를 더 치게 된다는 의미”라고 전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오픈 개최에 앞서 라비에벨 듄스코스도 난도를 더 높였습니다. 이정윤 대표는 “페어웨이 폭을 줄이고 파5인 2번 홀을 파4로 바꿨다. 그린과 티에 번져 있던 이종 잔디를 전부 교체했다”라고 전했습니다. 페어웨이는 러프를 조성해 15∼20m 줄여 그 폭이 20m 내외를 유지하도록 했다는 게 이 대표의 얘기입니다. 페어웨이를 잘 지켜야 스코어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라비에벨 올드 코스에서는 한국 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시즌 개막전인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인 SK쉴더스 SK텔레콤오픈 등을 성공적으로 치르기도 했습니다.
골프대회를 유치하면 보통 보름 가까이 정상영업을 할 수 없어 매출 손실이라는 직격탄을 맞습니다. 대부분 골프장이 대회 개최를 꺼리는 이유입니다. 이정윤 대표가 이끄는 코오롱 계열 골프장은 이례적이어서 골프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찬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골프장에 내장객이 몰려들면서 그린피, 카트비 등을 마구 올리는 국내 일부 인기 골프장과 달리 코오롱 계열 골프장은 오히려 골프 비용 동결 내지는 합리적인 인상 등의 가격 정책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우정힐스와 라비에벨은 골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우정힐스는 아마추어 주니어 대회인 충남도지사배 대회를 코스사용료 없이 무료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정윤 대표는 골프대회를 개최할 때 프로 선수와 캐디에게 식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이정윤 대표가 이끄는 라비에벨 올드코스에서는 남녀 프로대회를 수시로 유치해 골프 저변 확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크라우닝 제공
한국골프발전을 위한 이런 활동은 코오롱그룹(회장 이웅렬)의 경영 방침에서 비롯됐습니다.
이정윤 대표는 “고 이동찬 명예 회장님으로부터 골프의 철학을 배웠고 이웅열 회장님에게는 본인께서 직접 체험한 선진 골프 문화를 전수하였다”라면서 “이런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마음껏 골프장을 경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정힐스, 라비에벨이 두루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코오롱그룹은 대한골프협회, 골프장, 선수, 용품까지 한국 골프 산업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고 이동찬 명예회장은 40년 전인 1985년부터 11년 동안 대한골프협회장을 역임하며 골프 발전에 헌신했습니다. 온통 외국 제품이 판을 치던 국내 골프용품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넣기 위해 1989년에 엘로드(ELORD)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엘로드는 그때부터 줄곧 골프 국가대표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우정힐스는 회원제이고 라비에벨은 퍼블릭입니다. 그래서 이 대표는 누구보다도 골프장 정책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인사이트를 갖고 있다는 평판을 듣습니다. 이정윤 대표는 “회원제 골프장에 대한 세금 문제는 불합리한 게 사실이다. 진정한 골프 대중화를 위해서는 개별소비세, 지방세, 재산세 등에서 세제 개선이 절실하다”라고 고언을 밝혔습니다.
그는 주니어 골프 육성에 높은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이정윤 대표는 “주니어 선수들이 골프장에 내는 대회 출전 비용의 0.1%만 줄여줘도 연간 수십억 원을 조성할 수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마련된 기금을 학생 선수들을 위해 쓴다면 유망주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정윤 대표는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의 별명 가운데 하나는 ‘스쿠터 아저씨’입니다. 수시로 소형 스쿠터를 타고 코스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다녀서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벼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어야 잘 자란다’라고요. 편도 200km 가까운 천안(우정힐스)과 춘천(라비에벨)을 매일 오가는 게 이정윤 대표의 일상입니다. 그래서 장소가 바뀌어도 코스 하나만큼은 기대 만점인 한국오픈입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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