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이슈|이재명 후보 에너지 공약 검증
2034년 이후 준공될 장기프로젝트
현안인 ‘전력망 대란’ 해결 어려워
분산에너지 활용 지역균형발전 강조
’용인반도체’ 지원 약속과 충돌 위험
‘산업용 전기요금’ 논란 해법 안보여
재생에너지-원전 믹스 로드맵 필요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지난 3년간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기후위기 대응에 필수인 재생에너지의 확충은 소홀히 하고, ‘원전 올인’에 매달린 결과다. 6.3 조기대선으로 들어설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에너지 정책의 정상화가 꼽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4월 말 페이스북을 통해 1차 에너지 공약을 내놓았다. 이어 지난 12일 10대 공약에서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큰 만큼 이 후보의 에너지 공약을 더욱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없이 바로 출범하는 이른바 ‘개문발차’ 정권이 될 전망이다. 대선공약이 곧바로 국정과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훗날 후회하는 일이 없으려면, 처음부터 제대로 틀을 잡아야 한다.
■ 에너지고속도로와 분산에너지
이재명 후보의 에너지 공약에서 첫번째 화두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이다. 이 후보는 1차 공약에서 “에너지고속도로로 대한민국 경제도약과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 중심으로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를, 2040년까지 영호남과 동해안까지 연결해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유(U)자형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전력망 부족이다. 이로 인해 지방의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발전을 인위적으로 축소·제어하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신규 투자허가가 2031년까지 금지됐다. 아르이(RE)100 이행에 필수인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막힌 것이다. 에너지고속도로는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부족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이다.
이 후보의 두 번째 화두는 분산형 에너지체계의 구축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이다. 분산형 에너지 체계는 전기를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이다. 전력 수요가 많은 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 후보는 “분산에너지를 활용해 수도권보다 지방의 전기요금을 싸게하는 ‘요금 차별화’로 기업을 지역에 유치해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강조한다. 전기요금 부담이 갈수록 커지면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값싼 전기 공급이 효과적인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이 후보는 지역의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대규모 산업지역을 에너지고속도로 연결해 전국에 RE100 산단을 조성하겠다는 비전도 곁들였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방향과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에너지고속도로 실효성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는 기존 정부의 전력망 투자 계획에 새롭게 옷을 입힌 것이다. 2023년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는 호남권에서 남아도는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해저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건설계획(길이 430km)이 들어 있다. 준공목표는 2032년 이후로 최소 9년이 필요하다. 지난 2년간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던 만큼, 새 정부가 바로 사업에 착수해도 정상적으로는 2034년 이후에나 준공이 가능하다. 임기가 2030년 5월인 새 정부에서는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더욱이 당장의 전력망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8일 반도체산업 지원 공약에서 다시 에너지고속도로를 꺼냈다. 이를 이용해서 삼성과 에스케이(SK)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기 구축과 RE100 이행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클러스터의 가장 큰 문제는 전력과 용수 부족이다.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은 15~16GW로, 원전 15기 이상이 생산하는 양이다. 동해안 발전소와 수도권을 잇는 HVDC 건설은 주민 반대에 막혀 있다. 클러스터의 1단계 준공시점은 2027년이다. 정부는 공장을 짓고도 돌리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클러스터 옆에 엘엔지(LNG) 발전소를 짓는 궁여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클러스터가 본격화하는 2030년 이후 대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LNG 발전소는 탄소중립에도 역행한다.
‘이재명표 에너지고속도로’가 겉은 화려해 보인지만, 당면한 전력망 문제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전력계통 분야의 한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이 후보의 공약에는 현안인 전력망 부족 문제, 재생에너지 신규허가 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담겨있지 않다”며 “중장기 계획도 필요하지만, 5년 임기 중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력망 문제를 단순히 투자 확대로만 풀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송전선 건설은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수도권 전력수요 집중과 과도한 송전선 의존도 한계에 가까워진 상황”이라며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전력망 운용 효율화로 송전선로 이용률 제고,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로 수도권 전력수요를 지역으로 분산, 전력시장 개편 같은 구조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역균형발전과의 조화
에너지고속도로는 해안가에 대형 발전소를 짓고,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의 공장에서 전기를 소비하는 기존의 중앙집중형 전력 시스템의 연장선에 있다. 수도권은 전력이 부족하고, 지방은 남아도는 전력수급 불균형은 전력망 부족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분산에너지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다. 에너지고속도로와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통한 지역균형발전 공약은 서로 충돌 할 위험성이 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는 13일 성명을 내고 에너지고속도로 공약의 백지화를 요구했다. 대책위의 정수희 집행위원은 “에너지고속도로 공약은 발전소는 지방에, 수요는 수도권에 몰아넣는 중앙집중식 장거리 송전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라며 “분산에너지 체계와 에너지고속도로를 동시에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가 지원을 약속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수도권 집중과 전력수급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 후보의 에너지 정책은 중앙선대위 산하 기후위기대응위원회(상임공동위원장 위성곤 의원)와 정책자문단이 맡고 있다. 당-캠프-전문가 사이에 충분한 사전검토와 조율이 미흡해 보인다.
정책 혼선을 막으려면 에너지고속도로의 목적과 중장기 에너지정책 방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전력계통을 전공하는 한 대학교수는 익명을 전제로 “에너지고속도로는 지방의 에너지 생산 거점과 RE100 산단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분산형에너지 활성화와 지역균형발전의 취지에 맞다”며 “수도권의 대규모 전력 수요지로 전력을 보낼 목적이라면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수도권은 10GW 정도의 전력을 지방에서 끌어와 쓰는데, 이보다 더 많은 15~16GW가 필요한 클러스터를 추가로 짓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에스케이(SK)는 지난 1월부터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공장 착공을 시작해,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내년 말 파운드리 공장용 부지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어서 사정이 다르다. 더욱이 삼성의 파운드리사업 부진으로 투자계획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평택의 파운드리 공장 건설도 늦추거나 중단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전력망 문제,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해결하는 근본 해법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재생에너지와 용수가 풍부한 지역에 조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도체 공장의 지방 건설에 대해서는 연구개발 등 핵심인력의 유치가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국내 대기업의 공장들이 다수 지방에 있다. 또 경쟁상대인 티에스엠씨(TSMC)의 대만 내 5개 공장도 수도인 타이베이 주변에 몰려있는 게 아니다. 대만섬 최북단부터 최남단까지 골고루 분포돼 있다.
■ 실종된 전기요금 정책
최근 경제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전기요금 문제이다. 주택·일반용 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만 잇달아 인상하는 데 대한 기업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이후 3년간 68.7% 오른 반면 주택 및 일반용 인상률은 38.8%로 절반 수준이다. 기업들은 205조원에 달하는 한전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산업용 요금이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올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대기업은 전기를 한전에서 공급받는 대신 전력도매시장에서 직접구매를 추진해, 한전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탈한전’ 현상이 늘어나면 한전 부채 해결 부담이 주택용 및 일반용 전기요금으로 몰릴 수 있다.
이재명 후보의 에너지 공약에는 전기요금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 후보도 이를 의식했는지, 지난 16일 전북 군산 유세에서 전반적인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국내 경제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당장 전기요금을 손대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전기요금 정상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소극적으로 대처해온 역대 정부의 ‘에너지 포퓰리즘’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유수 선임연구위원은 “시장의 가격 기능을 이용해 전력수급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어떤 에너지 정책도 정상 작동을 기대할 수 없다”며 “산업용 요금 인하는 현실성이 없고, 결국 주택·일반용 요금을 더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기요금을 정치가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투명하게 결정하고,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과 비용의 공정한 분담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원료비 연동제’ 정상 시행, 독립적 전력시장 규제기구 설립, 지역별 요금차등제 도입을 서두르고, 전력 판매시장의 단계적 경쟁도입(개방)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전력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도 불가능할 수 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정치권이 계속 전기요금과 한전부채 문제를 회피한다면 재생에너지 확대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발전비중 숫자를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시장구조와 제도의 개혁”이라고 지적했다.
■ 불분명한 원전 정책
이재명 후보의 공약에는 원전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와 원자력노동조합연대(원노련)이 체결한 ‘원자력산업인 정책협약서’에서 큰 방향을 읽을 수 있다. 협약서에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조화롭게 구성해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에너지 믹스 정립, 신규 원전건설과 가동 원전의 계속 운전 등이 담겼다. 안전성과 국민 수용성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지만,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은 물론 윤석열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담은 신규 대형원전 건설계획에도 길을 열어놨다.
이 후보가 3년 전 대선에서 기존 원전은 계속 가동하되, 신규 원전은 건설하지 않은 ‘감원전’을 제시한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이다. 문재인 정부 때의 ‘탈원전’과 윤석열 정부 때의 ‘원전 올인’이라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이 후보의 실용주의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이 진영과 이념을 앞세운 정치논리로 오락가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글로벌 사회에서는 에너지 비용과 안정적인 전력공급 문제를 고려해서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믹스를 추진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대만도 애초 5월17일 마지막 남은 원전 1기의 가동을 멈추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최근 입법원에서 원전 운전기간을 종전 40년에서 60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보수진영은 인공지능(AI)시대의 전력수요 급증 전망을 앞세워 대폭적인 원전 확대를 주장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반면 이 후보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에 두고 원전을 보조로 삼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대선에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에너지 공약에서 원전 정책을 제외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믹스에 관한 중장기 로드맵도 마련해 정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난해 기준 10.5%로, 2030년 목표인 21.6%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반면 총 26기에 달하는 원전의 발전 비중은 31.7%에 달한다. 스페인 정전사태에서 부각됐듯이 간헐성 전원인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경직성 전원인 원전과의 통합관리가 전력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긴요하다. 전력계통 분야의 한 전문가는 “원전은 현재 26기와 함께 건설 막바지인 새울 3·4호기, 건설이 막 시작된 신한울 3·4호기까지 합치면 총 30기로 늘어난다”면서 “신규 대형원전 건설 여부는 향후 전력수급 상황을 보며 신중히 결정해도 된다”고 말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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