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 김영식 NST(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AI·양자·바이오 수요 ↑…각국 기술인 유치 경쟁
韓 경쟁력 저하 위기감…예우 개선 등 총력전을
출연연 '평가 체계' 개선…연구성과→창업 활성화
김영식 NST(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과학기술인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으면 그대로 뺏깁니다. 최상위 인재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습니다."
김영식 NST(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S급 인재에게 나보다 월급을 더 많이 줘라'고 했는데 이같은 대책이 현 과학기술계에 절실히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우수 이공계생은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의대를 선호하고, 연구기관과 기업은 산업 수요에 맞는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과학기술정책가들은 이런 추세가 5년 안에 심각한 수준까지 이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세계 각국의 최고급 인재를 빨아들이는 것도 위기를 가속한다. 중국은 글로벌 빅테크(대형 IT기업) 부럽지 않은 수억원대 연봉과 정년 보장, 각종 인센티브 지급으로 세계 0.1%급 과학기술인을 유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을 수상한 물리학자가 지난해 중국으로 적을 옮겼다. 그런데 중국의 R&D(연구·개발) 인력은 이미 우리나라의 10배 이상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장은 "AI(인공지능)는 물론 양자, 바이오 등 핵심기술에서 누구보다 앞설 수 있는 세계 0.1%급 과학기술 인재 확보 여부가 국가의 미래를 가를 것"이라면서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인을 제대로 대우하는 한편 '각개전투'로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이들이 머리를 맞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해법을 내놨다.
공학자로서 국립금오공대 6대 총장과 제21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 지난해부터 NST를 이끄는 김 이사장을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NST는 우리나라 23개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을 지원·육성하는 기관이다.
김영식 NST(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NST의 이사장으로 임명된 지 약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소회는.
▶'출연연을 출연연답게'를 취임과 함께 구호로 내세웠습니다. 언젠가부터 출연연의 정체성이 모호합니다. 출연연은 대학과 다릅니다. 대학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지향하며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라면 출연연은 국가가 준 임무를 실행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R&D 정책의 요체입니다.
1990년대에도 '출연연의 정상화'를 위한 논의는 있었습니다. NST에 와 보니,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논의가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제자리를 돌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설익은 과학기술 정책을 도입해 출연연이 일관된 방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의 변화에 따라 정책도 바뀌어야 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 R&D에는 일관성도 필요합니다. 출연연은 국가적 R&D를 통해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지향점을 두고 출연연을 육성하려고 합니다.
-구체적인 육성 방안이 있으신가요.
▶우선 출연연 평가 체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출연연은 3년마다 기관 운영평가를, 6년마다 연구사업 평가를 받았습니다. 평가를 준비하는 데만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되다 보니 시간 낭비가 심합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년 주기의 단일평가체계를 올해부터 시범 적용합니다. 6개 출연연이 우선 시범 대상입니다. 평가 지표도 단순하게 개편해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무엇보다 출연연의 R&D가 완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 출연연의 연구 성과가 산업까지 직결될 수 있도록 연구자의 창업과 기술이전을 활성화하고자 합니다.
특히 기술과 시장을 잇는 '수요-공급 매치메이킹 플랫폼(NS MaP)' 조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출연연의 기술을 시장 관점에서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창업 아이템으로 고도화해 실제 창업까지 이어지는 출연연 전주기 창업 지원 플랫폼입니다.
출연연의 기술 자체는 공신력이 높지만, 기술이전 논의 단계에 들어서면 기업과의 눈높이가 너무 다른 탓에 사업화가 어려웠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연구자가 '기업가 마인드'의 수요자와 끊임없이 만나야 합니다. 매치메이킹 플랫폼은 온오프라인에서 출연연과 기업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겁니다.
-AI 분야에서도 출연연의 기술이 빛을 볼 수 있을까요.
▶출연연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중국과 미국의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인력과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합니다.
지난 14일 AI를 개발 중인 출연연 5곳과 만나 각 기관의 AI 개발 현황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출연연 중심의 대규모 AI R&D 체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출연연의 장점은 대형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학이 하기 어려운 큰 규모의 연구를 공익성을 갖고 추진할 수 있는 것인데, 각 출연연이 제 분야에만 머무르면 AI 활용도를 높일 수 없습니다. 출연연 간 AI R&D 협업 구조를 전략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중지를 모았습니다.
-출연연과 기업 간 협동은 어떻습니까.
▶대기업도 혼자 힘으로는 못 싸웁니다. 집단 지성과 종합적 가치사슬을 고려한 국가 지원이 절실합니다.
산업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9일 국내 주요 대기업 관계자와 회동했습니다. 산업계 수요도 비슷합니다. 대기업의 대중국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데다 엄청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최상위 인재를 흡수하는 상황에 우려가 큽니다.
우리나라 R&D 정책에 절박함이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분야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보다, 키워야 할 분야에 단기간 집중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 기술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단 한 번의 뒤처짐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NST도 현장과 정책 간 간극을 줄일 방법을 고민하고자 합니다.
-최상위 과학 인재 유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전 세계적으로 과열 중인 인재 확보 경쟁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AI 등장과 함께 세계는 최상위 0.1% 기술인이 지배하는 구조로 재편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최상위권 과학기술 인재를 제대로 대우해야 합니다.
말부터 바꿔야 합니다. 과학기술인의 '처우 개선'이 아니라 '예우 개선'입니다. 처우와 예우는 다릅니다. 예우는 예의를 지켜 정중하게 대우한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인재를 대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달라야 합니다. 이들을 확보하는 데 국가적 총역량을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장 생태계는 인간의 욕망에 근거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더 인정받고,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갈 자유와 욕망이 있습니다. 과학기술계도 시장의 논리에 기반해 높은 수준의 소득과 안정성을 보장해야 인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 정치계도 과학기술인을 예우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인이 중요한 의사결정 기구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과학기술 선진국 반열에 들 수 있습니다.
-NST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국가특임연구원제도가 대표적입니다. 정년 적용도 받지 않고 출연연의 기존 보수 체계를 뛰어넘어 파격적 연봉을 받는 세계적 석학급 연구원입니다.
지난해 김명환 전(前)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제1호 출연연 국가특임연구원으로 임명됐습니다. 김 단장은 산학연 융합형 대형 R&D 프로젝트인 글로벌TOP(톱)전략연구단에서 '차세대 이차전지 전략연구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산업계와 연구계에서 뚜렷한 성과를 쌓아온데다 풍부한 네트워크를 보유한 김 단장 같은 인물이 출연연에 계속해 유입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의 인재가 졸업 후 출연연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각종 장학금부터 병역특례와 같은 특혜 방안을 임기 내 구체화하고자 합니다. 각종 방안이 구호에서 끝나지 않고 실현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습니다.
-6월 대선을 앞뒀습니다. 과학기술계가 갈 방향을 제언한다면.
▶과학기술인에 대한 예우에 주목해야 합니다. 0.1%급 고급 인재에 걸맞은 대우가 있어야 미래도 있습니다. 한번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전문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고능력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인이 자긍심을 갖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반드시 조성해야 합니다.
대담=김유경 정보미디어과학부장 yunew@mt.co.kr 정리=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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