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석 해병대사령관이 지난 4월 15일 경기 화성시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제76주년 해병대 창설 기념행사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대선 때만 되면 해병대가 술렁인다.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해병대 독립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100만명에 달하는 국내외 60여개 해병대 예비역 단체의 표심을 겨냥한 것이다. 이번 21대 대선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5월 10일 해병대 관련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해병대를 독립적인 ‘준4군 체제’로 개편하고 해병대사령관의 위상을 격상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병대 임무를 상륙작전·신속대응 전담으로 특화하고, 해병대 독립 회관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이른바 “무적 해병을 K국방강국의 선봉에 세우겠다”는 ‘해병대 정책 발표문’이다.
■‘준4군 체제’
해병대 독립 제안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경우 한나라당 최고위원 시절이자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인 2010년 12월 해병대와 특전사를 통합한 ‘해병특전사령부’ 창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여야 공통 공약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육·해·공군, 해병대 4군 체제 전환에 앞서 해병대사령관을 대장으로 진급시켜 합참차장으로 보임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2·3 불법 계엄의 여파로 좌초된 상태다. 하지만 시기의 문제일 뿐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해병대사령관의 4성 장군 임명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의 준4군 편성은 현재 육·해·공군 3군 체제를 당장 4군 체제로 개편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해군 밑으로 해병대사령부를 두는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미군도 해병대가 독립돼 있긴 하지만 해군과 해병대의 군정을 상위조직인 해군청에서 함께 담당하고 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해병대 장교도 배출한다. 한국군 해병대사령관을 3성 장군에서 4성 장군으로 올리겠다는 것은 해병대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차원이다.
해병대 조직의 1인자인 사령관을 대장으로 임명하려면 군인사법 개정이 필요하다. 다만 법 개정 이전이라도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 해병대 장군을 합동참모본부 차장이나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임명한다면 52년 만에 해병대 대장이 부활하게 된다. 과거 해병대사령관이 대장으로 보임된 건 7~9대 해병대사령관 때로 1966년 7월부터 1973년 10월까지 7년 정도다. 유신정권 시절인 1973년 10월 10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해병대사령부를 전격 해체하고 해병대를 해군에 통합시키면서 ‘해병대 대장’은 사라졌다. 해병대가 1949년 4월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소규모 병력으로 창설된 지 24년 만이었다. 이후 1987년 11월 해병대 부대를 통합 지휘할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됐지만 여전히 해군 소속이다.
해병대 독립은 군기(軍旗)가 먼저 했다. 국방부는 2022년 ‘군기령’ 개정령안을 만들어 11월 군기의 종류에 합참기와 육·해·공군기 외에 해병대기를 추가했다. 국방부가 해병대기(旗)에 군기로서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는 것은 해병대가 육·해·공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4군 체제로 향한다는 상징이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해병대사령관 계급이 대장으로 높아지면 육·해·공군참모총장과 위상이 같아져 사실상 4군 체제나 마찬가지라고 평가한다. 국군조직법은 조직을 육군, 해군 및 공군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작전 체계는 4군 체제(육·해·공·해병대)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과 육군은 내심 불만이다. 해군에서는 해병대가 해군 조직에서 아예 빠져나갔으면 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준4군 체제가 되면 해군 전체 병력 7만명의 40%가 넘는 해병대가 해군에 속하지만, 사실상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해군 전력 숫자만 잡아먹기 때문이다. ‘2022 국방백서’를 보면 해병대 병력은 2만9000여명이다. 만약 해병대가 준4군 체제가 아니라 완전히 독립해 병력이 빠져나가게 되면 해군은 4만1000여명만 남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병력이 공군 6만5000여명보다 2만4000여명이나 적어진 해군 입장에서는 병력 숫자를 늘려달라는 명분이 생길 수 있다. 육군은 중장이 지휘하는 군단 병력 규모인 해병대에서 대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마뜩잖아 하는 분위기다.
지난 2월 19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을 방문한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호종 1사단장을 비롯한 간부들, 장병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국가전략기동군
명실공히 해병대가 완전히 독립하려면 단독작전 수행 능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국군조직법부터 걸림돌이다. 육·해·공군의 주요 임무를 규정하고 있는 국군조직법 ‘제3조’를 보자. 각론을 보면 육군은 지상작전을 주 임무로 한다. 해군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해상작전을,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한다. 공군은 항공작전을 주 임무로 한다로 돼 있다.
이 조항을 따르자면 해병대 주 임무는 상륙작전으로 한정돼 있다. 그러나 정찰위성의 발달 등으로 기습적인 상륙작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대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이후 현대전에서는 상륙작전의 효용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한국군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예하에는 상륙작전과가 있다. 대령을 과장으로 하는 부서다. 군내에서는 상륙작전 무용론이 나와 김태영 국방부 장관 재직 시에는 합참 상륙작전과가 없어진 적이 있다. 이로 인해 당시 해병대에서는 난리가 났다. 해병대의 존립 근거인 상륙작전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해병대의 격렬한 반발로 합참의 상륙작전과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부임한 이후 부활했다.
현대전에서 더 필요한 대한민국 해병대의 주 임무는 상륙작전보다는 북의 전방위 위협에 신속히 대응하는 ‘국가전략기동군’ 역할이다. 과거 해상 침투 방식에 주력했던 해병대가 해상·공중을 통한 입체적 상륙작전 수행력을 키우는 데 매진하고 있는 이유다. 전 세계 군사 강국들도 대규모 상륙작전보다는 초소형 보트와 드론, 무인함정, 수송기와 헬기를 사용하는 ‘후방 기습 전문 작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해병대는 또 상륙작전을 하지만 임무 분담면에서 지상작전과 도서 방어 등에 더 많은 임무가 부여된 다목적 신속대응군이다. 여기에는 해외파병도 포함된다. 특히 해병대사령관은 서북도서방위사령관도 겸하고 있다.
해병대가 준4군 체제와 함께 독립적 작전 수행을 하려면 국군조직법에서 상륙작전에 한정돼 있는 해병대의 주 임무를 변경해야 한다. 해병대 역할이 서북도서 방위를 포함하는 국가전략기동군 임무라는 것을 국군조직법에서 명확히 해주는 것은 해병대원들의 사기와도 관련이 있다.
해병대는 4군 체제로 전환했을 때를 대비해 해병대의 ‘전·평시 군 지휘체계’, ‘임무·역할 분석’, ‘조직개편·인력확보 방안’, ‘장비·물자 확보’ 등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 당장 해병대 역시 육군과 해군처럼 병역 자원 감소의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육군이 주로 수행하는 해외파병 주 임무를 미군처럼 해병대가 맡기도 쉽지 않다. 전방 붙박이군으로 배치하고 있는 해병 2사단의 임무와 역할 변경 역시 마찬가지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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