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 이하면 임금 6.1% ↑, 세금 1.2% ↓”
21대 대선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박민규 선임기자·성동훈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 근로소득자 세 부담이 늘어나 소득세 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온다. 지난해 법인세보다 근로소득세가 더 많이 걷히면서 이같은 주장이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소득세가 늘어난 이유는 연봉 1억원 이상 되는 고소득 근로자가 늘어난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특히 연봉 1억원 이하 근로소득자의 임금(2023년)이 6.1% 늘어나는 동안 이들이 낸 근로소득세는 오히려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임기 첫해인 2022년 세법 개정으로 이듬해 1인당 소득세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6일 ‘2022년, 2023년 구간별 근로소득자 총급여, 결정세액 비교’ 보고서에서 “근로소득자 세 부담이 증가해 감세가 필요하다는 대선후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잇딴 감세 정책을 비판했다. 그의 보고서를 토대로 근로소득세 감세 관련 쟁점을 정리해봤다.
①월급쟁이 세 부담이 늘어났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2월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안 올라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이 계속 늘어난다”며 “초부자들은 감세해주면서 월급쟁이는 사실상 증세해온 것인데 고칠 문제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도 지난달 30일 “종합소득세 산정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중산층의 세 부담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근로소득세 부담이 늘어났다는 대선 후보들의 문제의식과는 달리,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실질 근로소득세 부담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위원이 국세통계연보 등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3년 1억원 이하 근로소득자 총급여는 1년 전보다 6.1% 늘었지만 같은 기간 결정세액은 1.2% 감소했다.
2023년 근로소득세 결정세액 총액은 1년 전보다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같은 시기 경상 국내총생산(GDP) 성장률(3.3%), 소비자물가지수(3.6%), 근로소득 증가율(6.1%)을 밑돈다.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 세 부담은 줄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취업자 수 증가로 2023년엔 근로소득자가 1년 전보다 32만명(1.5%) 늘어났다. 1인당 근로소득세 부담은 소폭 줄었다.
그렇다면 정치권의 주장처럼 근로소득세 세수는 주로 어디에서 늘어났을까. 이 연구위원은 “2023년 근로소득 세수 증가는 임금 격차가 확대돼 연봉 1억원 초과 고소득자 수가 크게(5.8%, 7만6000명)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근로소득세는 누진세 구조라 2023년 기준 총급여액이 8000만원을 넘는 상위 12.1%가 전체 세수의 76.4%를 부담했다.
즉, 연봉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가 늘어나면서 전체 근로소득세도 늘어난 것이다.
②서민 감세하면 문제 없다?
민주당은 연봉 1억원 이하 구간의 근로소득세 부담만 낮춰주면 ‘서민 감세’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도 2022년 세법 개정 당시 연봉 5000만원 이하 과표구간만 올려 중·저소득 근로자의 세 부담을 낮췄다고 홍보한 바 있다.
그러나 ‘중·저소득자 감세’를 해도 더 큰 혜택이 돌아가는 계층은 고소득자이다.
2022년 세법 개정 결과 2023년 연봉 2000만원대 저소득층 근로자의 1인당 세금은 연간 1만2000원, 연봉 5000만원대 중소득자 근로자 세 부담은 11만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3억원~5억원 구간 고소득자 세 부담은 1인당 120만원 줄었다. 감세 혜택은 고소득자에게 더 많이 돌아간 것이다.
이는 소득세 구조상 하위 과표구간만 ‘핀셋’ 조정하더라도, 해당 구간에 적용되는 감세 효과를 윗구간의 고소득층까지 덩달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억원 이상 고액 연봉자도 소득의 1400만원까지는 최저세율인 6% 세율을, 1400만원~5000만원까지는 15% 세율만 적용받는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2년 세법 개정에 따른 소득세 과표구간 상향으로 5년간 약 15조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③법인세 감세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법인세보다 근로소득세 증가율이 더 높았다며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소득세를 줄이자는 논리도 거론한다. 그러나 이는 근로소득세가 늘어난 영향보다 기업들의 경영난으로 법인세수가 줄어든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안도걸 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2024년 세목별 세수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걷힌 근로소득세는 64조2000억원으로 처음으로 법인세 세수(62조5000억)를 추월했다. 법인세 세수는 2022년 104조원에서 지난해 62조5000억원으로 2년 만에 39.7% 급감했다.
법인세가 덜 걷힌 데는 감세 정책도 기여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법인세 세율을 1%포인트씩 일괄 인하하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각종 조세특례를 늘려왔다. 이미 깎아준 법인세와의 형평을 맞추기 위해 소득세도 덩달아 깎자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국가재정 지출 규모는 정해져 있기에 누군가의 세금을 줄이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 전체가 볼 수밖에 없다”며 “각종 공약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추가 감세 정책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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