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가보니
‘다빈치 로봇’ 亞 통틀어 단독 배치
3차원으로 확대해 정밀하게 보고
상처 최소화해 합병증도 줄여줘
폐식도암 전용 중환자실도 신설
상대 생존율 또한 美보다 월등
삼성서울병원 의료진들이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작년 초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전용 수술실에 ‘귀한 식구’가 들어왔다. 대여료는 물론 유지·보수비에도 수십억 원이 드는 ‘다빈치 로봇수술 기기’다. 로봇수술을 하는 의사라면 누구나 탐내는 다빈치 로봇을 흉부외과에 단독 배치한 병원은 아시아를 통틀어 이곳뿐이다. 폐식도암센터 의료진의 의욕이 워낙 강하다 보니 경영진도 통 큰 결단을 한 것이다.
김홍관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암센터장은 “모든 과가 로봇을 함께 쓸 때에는 수술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이 제한적이었고 그마저도 후배 교수들은 직접 해볼 기회를 얻지 못해 답답한 측면이 있었다”며 “폐식도암 환자의 치료 수요와 팀원의 역량 제고 등을 고려해 강하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5일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지난해 폐식도암 로봇수술 건수는 전년보다 약 300% 늘었다. 새로운 술기를 적용하는 데 의료진이 적극 나선 것이 한몫했다. 올해는 2023년 대비 50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성용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교수가 새로 도입된 첨단 수술로봇인 ‘다빈치5’를 이용해 폐암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사진 = 삼성서울병원]
김 센터장은 “로봇수술의 가장 큰 장점은 상처를 크게 열지 않고도 환부에 접근할 수 있고 그 부위를 3차원으로 확대해 정밀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폐식도암은 흉부에 생긴 상처가 크면 통증이 심해 기침이나 심호흡을 잘 못하게 되는데 이는 폐렴 등 합병증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 상처 크기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폐식도암은 여러 암 중에서도 다루기 까다롭다. 폐와 식도 두 기관이 각각 기도와 구강을 통해 외부와 연결돼 있어 면역 작용을 위한 림프샘이 많이 발달해 있고 이로 인해 암 전이도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 암 전이가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다는 점, 심장과 주요 혈관이 밀집된 공간에 폐식도가 위치해 있는 점 등도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특히 식도암은 종양 크기와 상관없이 무조건 식도를 다 잘라내고 위장을 목 부분까지 끌어올려 연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난도가 매우 높다.
삼성서울병원 [사진 = 삼성서울병원]
김 센터장은 “식도는 팽팽하게 늘어져 있는 장기라 종양이 생긴 부분을 자르는 순간 쫙 오그라든다. 그래서 남은 부분을 꿰매거나 잇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면서 “식도와 달리 위는 음식을 내려보내는 능력이 없고 식도와 위 사이에 있는 괄약근마저 수술 과정에서 제거되기 때문에 역류 현상이 빈번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위장이 식도 고유의 기능을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수술 후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병원은 폐식도암 환자를 위한 최적의 서비스 구조를 만들었다. 다빈치 로봇을 도입하면서 환자가 몰릴 것에 대비해 폐식도암 전용 중환자실에 전담교수와 전문간호사를 배치했다. 언제 어떻게 나빠질지 모르는 환자 곁을 24시간 밀착 관리하겠다는 의지다. 폐식도외과를 비롯한 여러 과 교수들은 매주 1회 다학제 회의를 연다. 박성용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교수는 “흉부와 복부, 필요에 따라 경부까지 절개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 시간이 길고 회복도 만만찮은 과제라 다학제적 접근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이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일반인과 비교한 수치)은 폐암 54.1%, 식도암 60.1%다. 미국(25.4%·21.7%)이나 우리나라 평균(36.8%·42.2%)보다 훨씬 높다.
삼성서울병원은 더 많은 환자가 로봇수술의 이점을 누릴 수 있도록 폐식도외과의 성공 사례를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업그레이드된 다빈치 로봇도 추가 도입해 임상 적용을 준비하고 있다. 이 병원의 사례에 고무된 글로벌 수술로봇 기업 인튜이티브서지컬은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암 분야를 ‘에피센터’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에피센터란 일종의 글로벌 멘토로, 뛰어난 시설과 숙련된 의료진을 갖춘 병원에 전 세계 의사를 교육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정희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교수는 “첨단 장비 활용이 늘면서 환자에게 더 정교하고 정확한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의료 술기 개발 등에 보탬이 되겠다”고 말했다.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주력할 계획이다. 폐식도는 숨 쉬고 먹는 행위와 직결돼 있어 치료 전후로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식도암 환자는 사소한 사레로도 폐렴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수술 후 4주간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에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웰스토리와 함께 영양소, 칼로리, 식감 등을 고려한 정기구독 형태의 케어푸드 20종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식도암 환자 3명 중 1명이 이곳을 찾고 있는 만큼 해당 암종에 관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도 적극 진행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이번 연구는 세계 최대 규모로, 환자에게 최적의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종양이 점막층에만 있다고 판단될 경우 내시경적 절제술로도 치료가 가능한지 등을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심희진 기자(팀장) / 김지희 기자 / 최원석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