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본사 부산 이전” 공약
국내 1위, 세계 8위 컨테이너 해운사인 HMM이 때아닌 ‘본사 이전’ 혼란에 빠졌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지난 1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어렵다. 해양수산부와 대한민국의 가장 큰 해운 회사인 HMM을 부산으로 옮겨 오도록 하겠다” “HMM은 민간 회사라 쉽지 않지만 정부 출자 지원이 있기 때문에 마음먹으면 불가능은 아니다. 일단 HMM 직원들이 동의했다고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HMM 본사 스크린에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시가총액 약 22조원으로 국내 기업 중 16위, 민간 기업인 HMM의 본사 이전이 왜 화두에 올랐을까. 1976년 아세아상선으로 시작한 HMM은 2010년대 해운업 불황으로 파산 위기에 놓여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로 넘어갔다. 이후 정부 지원, 해운업 호황 등으로 조(兆) 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과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HMM이 우량 기업으로 거듭나자 대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부산 지역사회의 요구, 표심을 고려한 약속이 맞물린 것이다. 일각에선 “선거 때마다 지역에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공약이 나올 때마다 기업이나 기관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픽=양인성
◇부산항 모항(母港)이지만, 주요 고객은 서울·해외에
HMM은 본사는 서울 여의도 중심인 파크원타워1 건물에 있다. 컨테이너선이 주로 출발하는 모항(母港)은 부산항이다. 작년 말 기준, 계약·영업 등을 맡은 육상직은 1063명, 선박 운항을 맡는 해상직이 827명이다. 여의도 본사 근무 인력이 800~900명 수준으로 가장 많다. 고객사인 ‘화주(貨主)’ 기업이 대부분 서울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해운협회도 여의도에 있다.
부산 지역사회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선 대기업 본사 이전이 필수적이고, 그 기업이 우선 HMM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이 후보도 이런 민심을 고려해 산업은행 대신 HMM 본사 이전을 앞세운 셈이다.
HMM은 민간기업이지만 정부가 대주주다. 채권단 관리를 거치며 36.02%를 보유한 산업은행이 최대 주주고, 한국해양진흥공사(35.67%)가 2대 주주다. 둘 지분을 합하면 약 72%에 달한다. 정부 측이 이사회 의결, 주주총회 등을 거쳐 본사 이전을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후보의 ‘부산 이전’ 발표 이후에도 HMM 안팎에선 “민간기업의 본사 이전이 선거 공약이 될 수 있느냐” “정부 지원으로 회생한 기업이니 가능하다” 등 갑론을박이 계속 이어졌다.
◇본사 옮기면 장점은
지자체는 대기업 본사를 유치하면 법인세 등 조세 수입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일자리 창출도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 대기업 유치 상징성도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해운업은 ‘세일즈’가 중요한 산업”이라며 “대규모 공장이 있는 제조업 유치 같은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세계 1위 컨테이너 해운사인 MSC도 본사는 내륙 국가인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이곳에서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고, 세계 각지에 있는 항만에서 물류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또, 해운사는 자기 자본만으로는 고가의 선박을 건조할 수 없기 때문에 선박을 담보로 장기 융자를 받는 ‘선박 금융’도 핵심 업무다. 이 점에서는 부산보다 금융사가 밀집한 서울 여의도가 유리하다.
그래픽=양인성
이재명 후보가 ‘전해 들었다’는 취지로 불분명하게 밝힌 ‘직원 동의’를 두고도 말이 나왔다. HMM 노조 측은 ‘본사 이전 관련해 의견을 수렴하거나 동의를 구한 적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이 전북 전주로 본사를 옮긴 뒤 유능한 기금 운용 인력이 줄줄이 빠져나간 것처럼, 글로벌 계약 관리, 영업 등 업무를 하는 젊은 직원들의 이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본사 이전 갈등은 HMM의 최대 과제였던 ‘민영화’에도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산업은행이 작년 HMM 매각에 나섰지만 무산됐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14일 “개별 기업 운명에 대해 정부가 불확실성을 가중하는 공약은 지양해야 한다”며 “HMM이 사실상 국가 소유 상태라 하더라도 입지는 회사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 단순히 ‘부산 매표’를 위해 (이전을) 제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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