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HMM 부산 이전하겠다…정부 출자라 불가능하지 않아”
엇갈리는 노조 반응…산은 본점 이전 지렛대 삼아 추진?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4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서 권기흥 에이치라인해운해상직원노조 위원장과 해양수도 부산 협약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의 본사 이전 문제가 대선판에 등장했다. 회사측 입장이 아니라 대선 공약을 통해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HMM의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HMM 측이 "전달받은 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선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산업은행의 주장을 들어주는 것을 지렛대로 이용해 HMM 최대주주인 산은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HMM 주가는 이날 오후 2시 현재 전거래일보다 7.93% 오른 2만2450원에 거래되고 있다. 개장 직후 7.21% 오른 주가는 한때 10.58% 오른 2만3000원으로 52주 신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선 이날 주가 상승을 놓고 1분기 호실적, 연내 자사주 2조원 매입 발표 등의 영향도 있지만 정책 수혜 기대감이 더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전날 부산 유세 현장에서 HMM의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겠다는 구상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 후보는 "2030년이면 북극항로가 활성화 될 것이고 세계는 북극항로에 집중하게 돼 있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늦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극항로 개척 관련 공약으로 "해양수산부만큼은 부산에다가 옮기겠다. 정부가 직접 지원해서 전·후방 산업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해운회사가 HMM이라고 한다. 그 회사도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HMM이 민간기업이란 논란을 의식한듯 이 후보는 "(HMM은) 민간 회사이지만 정부가 출자했으므로 마음 먹으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직원들은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HMM 노조로부터 부산 이전에 동의하는 내용의 '정책 약속'을 전달 받았다"고도 전했다.
느닷없는 HMM 본사 이전 논란에 HMM 내부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이 후보가 언급한 HMM 노조는 HMM 직원 1800여 명 중 600여 명으로 구성된 HMM해원연합노조(한국노총)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배 위에서 근무하는 선원들로 구성된 노조로, 현재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본사가 이전해도 근무 여건에 큰 영향은 없다.
하지만 사무직 직원들은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이다. 서울 사무직 중심의 900여 명의 규모의 HMM육상노조(민주노총)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해외 고객사를 만나는 건 서울이 더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이 후보의 공약이 HMM 구성원 일부의 의견만 반영해 발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후보가 민간기업의 본사 이전 공약을 꺼낼 수 있는 이유는 HMM이 1·2대 주주가 정부 소유이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해운업 불황으로 직격탄을 맞은 옛 현대상선(현 HMM)을 살려내기 위해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특히 HMM이 2018~2020년 사이 산은·해진공에 발행한 영구채만 총 2조68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이 공동 관리 체제를 이어오다 2022년부턴 해진공 단독 관리 체제로 변경됐다. 영구 전환사채(CB)가 보통주로 속속 전환되면서 이들이 보유한 HMM 지분은 현재 71.69%까지 오른 상태다.
이준석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팔기 시작" 비판
이 후보의 HMM 본사 이전 공약에 대해 정치권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전날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골자가 상장회사에 대해 대주주·경영진이 일반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인데, HMM 본사 이전이 실현되면 HMM 일반주주의 이익이 늘어나나, 아니면 침해되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역시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이날 박기녕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HMM과 HMM노조는 '부산 이전에 대해 전달받은 바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며 "이렇게 마구잡이로 거짓말하려고 공직선거법 허위사실유포 조항을 바꾸려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산은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산은 조직의 숙원을 해결해주면서 HMM 본사 이전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날 이 후보는 "불가능한 약속을 속여서 할 수 없다"며 산은의 부산 본점 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산은의 부산 본점 이전은 사실상 무산됐다. 노조를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산은 부산 이전을 다시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노조는 "내란정권 계승을 약속한 김 후보는 경제 안목부터 갖추라"며 강하게 비판한 상태다. 이런 배경 속에 이 후보가 산은의 부산 이전을 없던 일로 하면서 이를 지렛대로 삼아 산은에 입김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산은 입장에서 HMM이 민영화 대상이라는 점에서 본사 이전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미 국내 은행 최하위 수준인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3.9%를 기록해 금융당국 권고치 13%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다. 재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덩치가 큰 HMM 지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4월 "산은의 HMM 보유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 회장은 "HMM 주가가 1000원 오르면 BIS 비율이 9bp(0.01%포인트)가량 떨어진다"면서 "주가가 지금보다 5000~6000원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산은의 BIS 비율은 13% 초반까지 낮아진다"고 우려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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