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어디에 돈을 쓰고 어떻게 자원을 배분하는지가 혁신의 지표"
"실패의 비용에 미련 갖지 않는 언론사가 혁신의 열매 먼저 맛볼 것"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의 위기와 혁신 방안' 세미나...진단과 경고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2025년 5월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언론의 위기와 혁신 방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언론사 플랫폼에서 뉴스를 보지 않는 시대를 넘어, 뉴스 자체를 찾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챗GPT나 퍼플렉시티 같은 AI 거대언어모델(LLM)로 검색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LLM과 손 잡을 수 있는 언론사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언론계에서 혁신이 사라졌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지난 14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언론의 위기와 혁신 방안' 세미나에서 '언론사 혁신의 위기'를 주제로 발제한 조영신 미디어산업컨설턴트는 언론사 스스로 정체성을 찾지 못하면 혁신을 이룰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앞선 언론계 혁신의 시기를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발표 직후로 꼽았다. 2015년 시작된 미디어오늘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다양한 규모·유형의 언론사들이 어떤 혁신을 이루고 있는지 공유되던 때가 있었으나 팬데믹 이후 그 소재가 급격히 줄었고, 이제는 '저널리즘' 보다 더 넓은 범주의 '미디어 산업'으로 확장하게 된 흐름도 단적인 예로 꼽았다.
조 컨설턴트는 “어느 틈엔가 편집권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 여전히 종이 신문에서는 1면을 어떻게 잡고 레이아웃을 어떻게 잡고, 폰트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구조화시키고 하는 것들이 중요하지만 인터넷에서 보는 뉴스에는 그것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어떤 것들이 먼저 피드(feed)가 될지가 중요하다”면서 “편집권에 대한 데스크가 취하고 있던 수많은 노력이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되고 없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조 컨설턴트는 “언제나 되풀이하고 우리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던 '저널리즘이 뭔가, 뉴스 사업이 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있다”며 “월급쟁이로서 여전히 많은 기사를 모으고 제공하고 등등은 하겠지만, 사람들은 퍼플렉시티에서 물어보고 대답을 찾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 5월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언론의 위기와 혁신 방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발제 중인 조영신 미디어산업컨설턴트. 사진=노지민 기자
토론자로 참여한 언론인들은 변화를 위한 시도는 꾸준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성 한국일보 혁신총괄 미디어전략부문장은 “온라인 저널리즘, 소셜 저널리즘, 데이터 저널리즘, 알고리즘 저널리즘, 드론 저널리즘, VR 저널리즘, 스트럭처 저널리즘, 오픈소스 저널리즘 등 특정 기술이 나올 때마다 저희는 여기 모여서 언론의 위기를 얘기 했고 혁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얘기 했다”면서 “단언컨대 지난 15년 동안 무수히 쉼없이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성 부문장은 AI 시대에 언론이 해나갈 역할을 △원천 데이터 제공자 및 원본 검증자 △비정형 데이터 수집가 및 AI 플랫폼 감시자 △AI 결과물의 '오리지널리티'를 검증하는 인간 기자와 AI 기술 협업 등으로 분류했다. AI 플랫폼을 향해서는 기존 포털 등 플랫폼과 맺어온 '전재료'나 '광고 수익 공유' 관계 같은 모델이 아닌 상생형 파트너십을 공동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동시에 AI 플랫폼과 소위 '똘똘한 몇채'로서의 중앙 언론과의 협업만이 이뤄지는 '양극화'를 우려하며, 지역·중소 언론이 사라지는 결과가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2025년 5월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언론의 위기와 혁신 방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명림 한국경제 디지털라이브부장은 “혁신이라는 말을 대신할 단어는 투자”라면서 “회사가 어디에 돈을 쓰고 어떻게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배분하는지가 혁신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림 부장은 한국경제신문이 투자하는 다양한 분야 가운데 영상 분야를 언급하며 유튜브 '한경글로벌마켓' '한경코리아마켓' '집코노미' 채널 등을 들었다. '유튜브 붐'이 불던 시기 여러 언론사가 '젊은 감각'의 콘텐츠를 시도할 때 경제지 본연에 기대하는 콘텐츠로 정면 승부했고, 유튜브를 통한 독자와 기자들의 접점이 실제 신문 구독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장은 특히 “라이브를 통해 독자와 함께 만들어 가는 콘텐츠를 하고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능력에서 기자에 대한 신뢰가 돋보이게 했다”면서 “결국 신문, 언론을 구성하는 대체할 수 없는 요소는 기자라고 생각한다. '기레기'가 아닌 대단한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는 통로로 유튜브를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희욱 한겨레 미디어전략실 미디어전략부 팀장은 △기술에 대한 끊임 없는 학습 △비용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 △조직의 유연한 수용 △의사결정에서 실행에 이르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실행력 등을 제안했다. “AI시대 언론사는 저널리즘에 대한 정의와 실행, 신뢰와 속도를 모두 잡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동시에 더욱 폭넓어진 뉴스 생산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내부 조직과의 끊임 없는 다툼과 합의도 거쳐야 한다”며 “이 아홉구비를 넘어 나온 결과물이 독자들이 보기엔 고루하고 관성에 물든 뉴스와 독자 서비스일 수도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희욱 팀장은 “기자가 멸칭으로 소비되는 시대에도 언론사는 여전히 현장을 뛰고 확인된 정보를 정리해 발행한다. 생성 AI 시대에도 그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며 “생성AI는 그 노력을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실패의 비용에 미련을 갖지 않는 언론사가 혁신의 열매를 먼저 맛볼 것”이라고 했다.
▲2025년 5월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언론의 위기와 혁신 방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어진 자유 토론 시간에 류현정 조선비즈 콘텐츠전략팀장은 내부의 혁신 시도가 비용 절감 측면에 집중되면서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면서도, 언론이 AI 플랫폼 기업에 종속되어갈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공대생들한테 뉴스 생태계와 미디어 환경을 맡기는 지난 20년의 디지털 질서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 AI라는 변곡점이 생긴 만큼 디지털 질서를 다시 설계할 때 미디어 종사자들이라든지 인문학자라든지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선 발표와 토론을 지켜본 전문신문 업계에선 위기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윤봉한 한국전문신문협회 사무총장은 “대형 언론사조차 황색 저널리즘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라며 “언론이 이런 상황에 빠진 것을 누가 진단하고 치료할 것인가, 소비자의 판단에만 맡겨 놓을 것인가라는 답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양영근 가스신문 발행인은 “인터넷 신문 유료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데 안 된다. 레거시 언론이 앞서서 인터넷 신문을 유료화하면 다른 전문 신문은 쉽게 할 수 있다”면서 “광고 수익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독자를 유료화해서 생기는 투자 재원으로 새로운 투자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같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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