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현의 커넥션
(35) 선거의 통섭
생태계의 관점에서 진보가 없는 보수는 멸종하고, 보수가 없는 진보는 혼란으로 빠진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정신병원에서 쓸쓸한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의 망치질 덕에 인류 지성은 관념론의 껍데기를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선구자는 살아서 무시당하고 죽어서 대접 받는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의 금언은 “인류를 멸종시키지 못한 것은 인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라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 이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진화에 대한 적확한 표현이다. 인류가 생태계 사상 유례없는 단일 지배종의 왕좌에 오른 것은, 40억년간 펼쳐진 유전자 전쟁에서 무수한 멸종의 위기를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공존을 의미한다. 문명에서 벌어지는 집단의 진화도 유사하다. 위험에 순응하면 소멸되고, 위험을 극복하면 진화한다. 하지만 현대 문명에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생태계에서 유전자가 진화하는 원동력은 다양성과 환경변화다. 다양성이 없으면 환경 변화의 위기가 닥치면 멸종이 벌어진다. 반대로 환경의 변화가 없으면 지배종이 지속된다. 만약 지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일정한 환경이었다면, 지구에는 단세포 세균만 득실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환경이 지속되면 최적으로 적응한 지배종이 등장한다. 진화 경쟁에서 패배한 피지배종은 격리 진화를 통해 다양성이 증가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환경의 격변이 일어나면 지배-피지배의 질서가 무너진다. 지배종은 멸종하고 살아남은 피지배종은 새로운 환경에서 발산 진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가 성립된다.
지구에 속박된 생태계는 지구의 환경 변화에 저항할 힘이 없다. 대신 유전적 다양성을 통해 생명을 지속시켰다. 다양성은 물리적 환경 변화에 생태계가 대처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유일한 전략이다. 풍족한 환경에서 다양성은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성가신 존재다. 하지만 환경 격변의 위기가 닥치면 다양성은 종을 구원하는 선구자가 된다.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한 유전자는 멸종한다. 환경 변화는 어제의 승자를 내일의 패자로, 어제의 패자를 내일의 승자로 만든다. 문명에서 일어나는 진화도 동일한 기전으로 작동한다. 다양성이 풍부하면 환경 변화는 진화를 촉진하는 기회가 되고, 다양성이 부족하면 집단 소멸의 위험이 된다.
역사의 모든 세대는 감당해야 자기들 몫의 변화가 있었다. 인류의 문명 발전은 집단의 생존 환경을 계속 변화시켜 왔으며, 모든 세대는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역사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기술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사의 흐름이 만드는 환경 변화는 이전 도그마를 지키려는 보수와 새로운 도그마를 찾으려는 진보를 경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후 세대는 이전 세대 경쟁의 대가로 더 나은 출발점에서 또 다른 변화를 감당하며 문명을 진화시켜왔다. 집단의 질서를 원하는 보수는 기존 도그마를 의미하고,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는 진보는 다양성을 의미한다. 두 개념은 이분법적 대립의 개념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균형의 개념이다. 생태계의 관점에서 진보가 없는 보수는 멸종하고, 보수가 없는 진보는 혼란으로 빠진다.
우리는 문명이 세계화에 진입하면서 환경변화가 극에 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환경 변화를 위험이 아닌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zeitgeist)이 필요하다. 이는 시대가 마주한 환경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적합한 보수와 진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관성이 현재 질서를 유지하는 평화로운 시대에는 시대정신의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 환경에 거대한 틈이 벌어지는 격변의 시기에는 시대정신이 중요하다, 시대정신이 부족한 집단은 미래의 운명에 도달하지 못하고 추락하게 된다. 역사는 이전 시대의 희생으로 올라선 계단에서, 변화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 계단으로 올라서는 과정의 반복이다. 우리 역시 이전 시대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위기에서 퇴행할 것인지 발전할 것인지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대 정신에 달려있다. 시대정신을 통해 현재에 영향을 미친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에 영향을 미칠 현재를 파악할 수 있다.
두 명만 모이면 정치가 시작된다는 말처럼 정치는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제21대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현수막.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민주주의는 어떻게 기본이념이 됐나
시대정신의 파악에서 중요한 것이 철학이다. 과학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면, 철학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인간의 사정에 관심없는 과학적 진실은 문명과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인간의 사정이 관심의 전부인 철학적 진실은 문명과 함께 진화해 변화해 왔다. 실존주의는 우리 시대의 실용 철학이다. 핸드폰을 사용하려 전자공학을 배울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실존주의를 위해 철학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자유의지에 충실하면 된다.
자유의지의 효용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숙명과 운명을 잘 구분해야 한다. 과거는 알지만 변화시킬 수는 없다. 미래는 모르지만 변화시킬 수 있다. 과거는 숙명, 미래는 운명이다. 내가 실존하는 현재는 과거 자유의지의 결과이고, 불확실한 미래는 현재의 자유의지가 결정한다. 자유의지의 발현에 있어서도, 내 뜻대로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중력을 거슬러 하늘을 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백년 뒤에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면 건강해진다. 열심히 공부하면 시험에 합격할 것이다. 물리법칙이나 생명의 도그마는 숙명의 원리, 자유의지 개입이 가능한 인간 상호작용의 결과는 운명의 원리다. 숙명에다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고, 운명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나태함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한 주체적 태도가 실존주의의 본질이다.
문명의 진화는 숙명과 운명의 구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권력은 자유의지를 집단의지로 동기화시키는 힘이다. 전쟁은 왕이나 군주의 관점에서는 운명이지만, 국민의 관점에서는 숙명이다. 회사의 부도는 사장에게 운명이지만, 직원에게는 숙명이다. 이처럼 집단에서 권력의 수준에 따라 자유의지 효용성에 차이가 난다.
정치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집단의지로 동기화시키는 방법이다. 두 명만 모이면 정치가 시작된다는 말처럼 정치는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역사의 대부분에서 군주(군주제)나 소수의 지도층(과두정)이 집단의지를 결정하였다. 그럼에도 문명에서 정치의 진화는 개인의 자유의지 효용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로 민주주의가 현대 국가의 기본 이념이 되었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국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리인을 뽑는 것이다.
운명에 영향이 미미하면 선택, 크면 결정의 문제다. 픽사베이
권력에서도 시장에서도 주체가 된 개인
민주주의 정착의 배경에는 경제 측면에서 시장의 확산이 있다. 냉전의 본질은 시장의 통제를 둘러싼 세력 싸움이었다. 자유 진영의 승리로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세계는 자유 시장으로 통합된다. 세계화 이전에는 인구는 군사력과 노동력을 의미했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이 활동하기 시작한 세계화 시대에 인구는 시장의 규모를 의미한다. 냉전 이후 미국이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는 동력은 기축 통화국이다. 이와 더불어 소비자 천국이라 불리는 시장의 역할도 크다. 기업이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망한다. 기업에게는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로 가득한 시장이 가장 중요하다. 자유 시장에서 기업의 자본이 증식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현대 금융 자본주의 중심에 기업이 있지만, 권력은 소비자에게 있다.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환경 변화의 본질은 세계 자본 시장의 변화다. 세계화 시대에는 생태계만 아니라 시장도 포화가 되었다. 이로 인해 소비자가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게 되었다. 경제 권력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넘어가는 환경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소비자를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이다. 자본주의 시장 발달로 인해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이 모두 국민으로 수렴하게 된 것이다. 이제 개인은 보편적 인권에 기반한 참정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주체이자, 시장에서 구매력을 행사하는 소비 권력의 주체다. 이런 환경의 변화로 인해 과거의 이념은 현대에 적용이 불가능하다. 주식과 금융 상품 시장이 발달하면서 개인은 자본가의 역할도 수행한다. 전문 직능 발휘로 월급을 받으면 노동자지만, 주식에 투자하거나 은행에 저축하면 자본가가 되는 것이다.
실존주의 관점에서 이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운명을 기투하는 주체가 되었다. 자유의지를 효율적으로 발휘하는 비결은 선택과 결정의 구분이다. 선택(choice)의 어원은 ‘인지한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 행위다. 이에 반해 결정(decision)은 ‘잘라내다’가 어원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행위다. 점심 식사로 짜장면과 짬뽕 중에 고르는 것은 선택 문제다. 자장면을 선택한 논리적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이 짬뽕을 선택했다고 따지는 것도 부질없다. 하지만 전문 식당을 시작하면서 메뉴로 짜장이냐 짬뽕이냐 고르는 것은 결정 문제다. 여기에는 합당한 논리적 판단의 근거가 필요하다. 재료 원가, 메뉴 판매량, 주방장 실력, 상권 분석 등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미래의 수익과 위험 확률도 계산해서 판단해야 한다. 잘못된 결정은 사장의 운명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운명에 영향이 미미하면 선택, 크면 결정의 문제다. 선택은 인생을 다양하고 풍족하게 만드는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자본주의 진화는 개인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부여해 왔다. 하지만 선택 장애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우리는 선택을 부담스러워 한다. 이는 두뇌가 선택과 결정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뇌에는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각인되어 있다. 선택과 결정 모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이다. 하지만 선택은 운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점심으로 짬뽕을 먹던 삼겹살을 먹던, 디저트로 커피를 마시던 차를 마시던, 수험생의 운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합격하려면 공부할 결정이 필요하다. 공부할 결정을 미룬다고 시험이라는 운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선택과 결정을 구분하지 못하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풀 필요도 없고, 풀리지도 않는 문제를 고민하느라 과부하가 걸린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결정 문제는 무심히 흘려보내게 된다. 아이스크림 맛을 ‘결정’하려면 머리에 쥐가 나고, 미래의 직업을 ‘선택’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선거는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김진수 한겨레 선임기자
가장 이상적인 선거의 조건은?
선거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적인 결정 문제다. 투표는 집단 행위에 자신의 자유의지를 동기화시키는 유일한 기회다. 하지만 선택으로 오해받는 대표적 문제이기도 하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백원이라도 싼 물건을 고르기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한다. 하지만 투표할 후보를 알아보는 시간은 아까워 한다. 문명의 경제 분야 발전의 정점이 금융 자본주의라면, 이념 분야 발전의 정점은 대의 민주주의다. 선거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수렴하는 최선의 제도다. 우리라는 집단의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특권이다. 선거는 시민의 권리이지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선거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선거는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게임 이론에 의해 모두 이기적인 투표를 하면 집단의 이익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단 선거가 게임 모델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상식으로 배우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자유 선거의 원칙은 게임을 성립시키기 위한 조건이다. 여기에 추가로 투명한 정보와 결과의 기억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투명한 정보는 후보에 대한 정확한 정보다. 제대로 된 판단 근거가 없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보와 공약을 검증하고, 정확한 선거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과의 기억은 반복되는 선거가 집단의 이익으로 수렴하기 위한 필요하다. 이는 내가 결정한 후보가 내 자유의지를 배신하면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응징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를 망각하면 선거의 효용성이 낮아진다.
인류가 집단 진화를 시작하는 순간 정치도 시작되었다. 문명 속의 개인은 정치에 무관심할 수는 있지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류 최초의 집단 이념은 공동체 정신이었다. 하지만 농경문화의 시작과 함께 계급이 고착화되며 공동체 정신은 쪼그라든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집단의지에 투영시키는 것은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노예 근성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봉건 군주제가 무너지고 나서도, 집단 이념의 좌충우돌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세계화 시대에는 주인정신이 필요하다. 주인 정신을 가진 시민에게 정치인은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 노예 근성이 남아 있는 시민에게 정치인은 왕이 된다.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개인의 자유의지가 이토록 보장되는 시대는 없었다. 자유의지의 충돌을 혼란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고, 진화의 진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내가 내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은, 내 운명에 대해 타인의 핑계를 댈 수 없다는 무거운 책임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공화국은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천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이라는 형용사다. 모든 시민은 존재 자체로 존엄하다. 문명을 시작한 공동체 정신이 민주주의로 부활한 것이다.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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