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in 뉴스] <1> 사탄의 독극물, 혹은 신의 선물 GMO
편집자주
뉴스는 수많은 질문을 불러옵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증언들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다수 독자에게 생소한 과학 뉴스와 관련 된 경우, 특히 복잡하고 어렵기만 합니다. 유전자를 편집해 생명을 연장하는 시대, 블랙홀의 비밀이 벗겨지고 바이오 에너지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 기대되는 내일. 쉬운 말과 용어로 시사 속 과학 이슈를 풀어냅니다. 첫회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통상 압박 가운데 국내 수입이 거론되고 있는 유전자변형생물체 감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의 식탁은 과연 이 생소한 생물체를 식량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을까요. 혹시 잘못된 오해로 인해 편리하고 경제적인 작물 수확의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효연 제주대 생명공학부 교수 인터뷰
이효연 제주대 생명공학부 교수가 지난달 17일 제주대 아라캠퍼스 내 연구실에서 배양 중인 실험 작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효연 제주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2000년 토양 미생물에서 분리해낸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도입한 들잔디(JC21)를 개발, 국내는 물론 세계 학계와 농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 교수는 2007년 연구 단계에 그치지 않고 실용화(상용화)를 위한 재배 승인 절차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 등이 지원한 총 120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됐고 연구 결과물은 미 농무성 책자에 소개됐으며 관련해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 일본의 특허 12개를 받았다. 골프장의 경우 연간 10차례 이상 제초제를 뿌려야 잔디가 관리되지만, 이 교수팀의 GMO 들잔디는 한두 번의 제초제 사용만으로 충분했다. 경제성 제고뿐만 아니라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되는 유전공학의 쾌거였다.
이 교수의 꿈은 그러나 개발 후 무려 25년이 지났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농촌진흥청(작물재배환경위해성), 질병관리청(인체위해성), 국립생태원(자연환경위해성), 국립수산과학원(해양생태위해성) 등 총 4개 기관이 협의를 통해 완료하는 GMO 작물(비식용) 안전성 심사에서 그의 혁신적인 잔디는 2024년 최종적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인체 위해성과 관련해선 의문이 비교적 빨리 해소됐으나, 환경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과학적으로 충분히 국내 환경에 위해성이 없음을 인정할 만한 근거 자료가 부족'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농진청은 2014년부터 최종 부적격 판정까지 총 10차례 보완자료를 이 교수 연구팀에 요청했고, 수산과학원도 물고기 위해 우려 가능성을 묻는 자료를 7번 새로 요구했다.
그래픽: 강준구 기자 자료: 제주대
"국내에서 상용화 승인 요청이 이뤄진 수입 GMO 작물은 170종에 달하지만 우리 연구진이 개발해 상용화에 도달한 케이스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JC21이 그나마 20년 넘게 심사 절차를 밟은 유일한 작물이었으나, 부적합 판정이 나오면서 국내엔 이제 상용화 심사를 기다리는 GMO 작물이 전혀 없는 셈이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구마는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GMO입니다. 누구도 고구마를 놓고 환경이나 인체 유해를 걱정하지 않는데 어째서 다른 작물들에 대해선 이렇게 승인 장벽이 높은지 모르겠어요."
지난달 17일 제주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효연 교수는 "과학을 과학의 눈으로 봐달라"며 여러 정부에 걸쳐 GMO 작물 상용화 승인과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대한 장벽’과 부딪혔다고 말한다. 각종 규제 완화를 약속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통령실에도 자료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승인을 앞두고 늘 부딪힌 그 장벽은 지나칠 정도로 환경 관련 여론에 귀를 기울이며 몸을 낮추는 당국자와 정치인들이었다고 한다. "전문성을 알 수 없는 NGO 단체 구성원들이 승인 심사위원으로 들어옵니다. 이들이 각 기관에서 GMO라고만 하면 무조건 거부를 해요. 비식용 육상식물인 잔디를 물고기가 먹는 경우까지 따집니다. 보완자료를 하나 다시 보내려면 1년이 더 걸려요."
일본은 먹는 작물과 아닌 경우를 분명히 나눠, 인체 유해성에 대해서만 특별히 규제의 벽을 높이고 반대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미국은 GMO 작물을 단순히 '식물해충'으로 추정해 식물보호법으로만 규제할 뿐이다. 규제의 벽이 이들 국가에 비해 유난히 높다보니, 우리 연구자들은 아예 국내 시장에서 GMO 작물을 개발해 상용화시키는 일은 꿈도 꾸지 않게 됐다고 한다.
자료: 제주대
문제는 이 같은 연구 분위기로 인해 우리나라의 유전공학 경쟁력이 떨어지고, 급기야 미래 식량안보가 위협받는 상황도 우려된다는 점이다.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에 따르면 GMO 작물은 기후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와 같은 대역병으로 초래되는 곡물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식량의 무기화에 대처하는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곡물 자급률이 20%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해마다 해외에서 GMO 옥수수와 콩을 1,200만 톤씩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GMO 기술력이 뒤처진다면 자칫 식량 주권이 시장 상황에 따라 휘둘릴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 교수는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힘써 연구한 GMO 기술을 외국에 비싼 값으로 넘기거나 아예 인재가 해외 유출되는 일이 벌어진다"라며 "지금은 우리 기술력을 세계 최고 수준의 80% 정도로 평가하지만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소비자기후행동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호텔 앞에서 'GMO 수입·통관 제도 개혁 및 GMO 완전표시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유기농 유채씨 GMO 혼입 건 및 미승인 LMO 주키니 호박 유통 건 등 허술한 GMO 수입·통관 제도와 GMO 관리 부실에 대한 항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주=양홍주 논설위원 yanghon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