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in 뉴스] <1>사탄의 독극물, 혹은 신의 선물 GMO

편집자주 

뉴스는 수많은 질문을 불러옵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증언들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다수 독자에게 생소한 과학 뉴스와 관련 된 경우, 특히 복잡하고 어렵기만 합니다. 유전자를 편집해 생명을 연장하는 시대, 블랙홀의 비밀이 벗겨지고 바이오 에너지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 기대되는 내일. 쉬운 말과 용어로 시사 속 과학 이슈를 풀어냅니다. 첫회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통상 압박 가운데 국내 수입이 거론되고 있는 유전자변형생물체 감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의 식탁은 과연 이 생소한 생명체를 식량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을까요. 혹시 잘못된 오해로 인해 편리하고 경제적인 작물 수확의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11월 카운실 블러프스에 있는 사우스웨스트 아이오와 재생에너지 에탄올 생산 시설을 방문해, GMO 농산물 승인 관련 절차 완화와 수출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압박이 가시화되던 지난 2월 중순.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이 미국 감자 생산업체 심플로트가 개발한 유전자변형생물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이하 GMO)의 일종인 LMO 감자 'SPS-Y9' 품종의 국내 재배 환경영향평가 결과 '적합' 판정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해당 품종의 국내 수입 요청 이후 7년 만에 이뤄진 결정으로, 최종 수입까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섭취 시 인체 안전성'에 대한 평가 한 단계만을 남겨둔 의미심장한 관문의 통과였다. 특히 생식력이 없는 GMO(예를 들어 식용유로 가공된 콩)와 달리, 재배와 자체 번식이 가능한 LMO(Living Modified Organism) 상태(씨를 품고 있어 땅에 심을 경우 같은 품종의 재배가 가능하며 GMO의 일종이다)의 감자 품종 수입은 식약처 승인이 이뤄진다면 첫 사례여서, 수십 년 동안 GMO 작물에 부정적이었던 국내 식품시장은 막대한 파장을 맞게 될 수 있다.

그래픽: 강준구 기자

당초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전쟁 활로를 뚫기 위한 '희생양'으로 LMO 감자 국내 수입 카드를 내주기로 하면서 이러한 농진청의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농진청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마지막 서류 검토가 이뤄졌고 판정을 위한 심의 위원회가 12월 진행될 예정이었다"라며 "하지만 연말이어서 일정이 미뤄졌고 하필이면 통상 압박이 가시화될 때 승인이 이뤄져 오해를 샀다"고 밝혔다. 대미 관계 개선을 위한 예정에 없던 환경평가 승인이었는지, 아니면 정상적인 규제 절차상 나온 결과였는지를 확인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게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유전자변형 작물이 '과연 인체나 재배환경에 미칠 영향이 유해한지 아닌지를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알게 모르게' 먹어온 유전자변형 작물

GMO 생산 기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 겐트대학교의 생물학자 반 몬태규가 식물유전공학의 혁신을 이뤄내면서 싹을 틔웠다. 동물체의 DNA에서 해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때 벌어지는 암종을 연구하던 그는 1960년대 후반 종양을 일으키는 아그로박테리움 투메파시엔스(세균의 일종) 자체가 DNA이며 이를 통해 타종의 유전자 삽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몬태규의 발견으로 세균 작용을 이용해 유전자를 잘라 특정 식물에 넣어 병충해에 강하거나 경제성이 뛰어난 품종개량이 활성화됐다.

21세기에 들어선 옥수수, 콩, 면화, 유채, 감자 나아가 벼에 이르기까지 많은 식용 작물에 유전자변형 기술을 활용한 GMO가 도입됐다. 전 세계에서 재배와 판매가 승인된 GMO 품종은 4,547개, 작물의 종류는 32종(제주대 아열대원예산업연구소 집계)에 달하며 GMO 작물시장의 가치는 2020년 기준 22조 원(코펜하겐 마켓 인사이트 보고서)으로 매년 8.7%가량 증가세를 보일 정도이다. 국내에도 식용유와 전분당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목적으로 제한된 식품용(15%)과 사료용(85%) GMO가 1997년부터 수입(2022년 기준 연간 1,100만여 톤)돼 널리 사용되어 왔다. 사실상 GMO의 성분은 사료로 길러진 동물의 고기를 먹으며, 그리고 식용유 등이 조리 과정에서 사용된 음식을 섭취하면서 오랜 기간 인체에 알게 모르게 쌓여 왔을 터이다. 그렇다면 현재 식약처 최종 승인을 대기 중인 미국 심플로트의 LMO 감자를 비롯한 유전자변형 작물은 온전히 인체에 무해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신지연(오른쪽)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이 지난 3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통상압력으로 인한 GMO감자 수입 승인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분자생물학 연구자들이 GMO 농작물의 인체 안전성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흔히 권하는 책 한 권이 있다. '나는 어떻게 GMO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나'라는 부제가 붙은 마크 라이너스의 '과학의 씨앗(Seeds of Science·2020)'이다. 라이너스는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유전학이 빚어내는 유해성을 들어 세포복제 등을 거세게 반대해온 유명 환경운동가 출신의 저술가로 유럽의 반(反)GMO운동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영국의 복제양 돌리를 제거하려 했을 만큼 극단적이었던 그는 GMO 반대운동을 마감하게 된 계기를 책에서 이렇게 밝혔다. "결국 나로 하여금 담장을 넘게 한 것은 과학계의 정설에 대한 문제였다. 2006년 기후변화의 과학적 증거가 명백하다고 확고히 발표했던 미국과학협회는 2012년 10월 '과학은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생명공학적 분자기술에 의한 작물개선은 안전하다'고 밝혔다.(67페이지)"

GMO 작물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1990년대 초반 광우병 파동이 영국에서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의 심각성이 1993년 확인되고, 이후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광우병 감염소가 확산됨에 따라 라이너스와 같은 환경운동가들에게 GMO 또한 주목을 받으면서다. 더불어 1996년 세계 최초 체세포 복제 동물인 돌리가 몰아온 유전자 및 복제 연구에 대한 반감, 유기농산물과 같은 건강식 열풍과 이를 생산 판매하는 대기업의 지원을 받은 환경단체의 강성화가 GMO 반대 운동의 동력을 키웠다. 1999년 그린피스가 중심이 된 슈퍼마켓 청소운동(매대에 GMO 상품이 보이면 소리 지르기)이 영국 전역으로 확산됐고, 당시 찰스 황태자는 텔레그래프에 "유전자변형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이고 인류의 건강과 환경에 재난을 불러올 것"이라는 격노에 가까운 글을 싣기도 했다. 식량난을 해결할 취지로 설립된 '아프리카 물절약 옥수수(WEMA)'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GMO 옥수수를 먹으면 다음 세대에 성적 결함이 나타나고, 동성애 경향을 보인다'는 공격을 받았을 정도다.

식품 의료 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006년 5월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엉터리 실험, 철회된 논문이 오해 불씨 됐나

GMO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은 비과학적인 토양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유전 공학적인 기술을 적용해 식품을 만들어 먹는 행위는(반대론자들이) 무조건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라 판단했고, 이는 사실상 종교적인 백그라운드에 의존한 반대와 다름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GMO 작물의 안전성에 대한 지나친 우려가 불붙게 된 발화점으로 1998년 영국 스코틀랜드 로웻연구소 아르파드 퍼츠다이 박사의 잘못된 방송 인터뷰를 들었다. 퍼츠다이 박사는 이 인터뷰에서 유전자변형 감자를 먹은 쥐를 관찰한 결과 면역과 장기 결함이 확인됐고, 따라서 이를 사람이 먹을 경우 간과 신장, 뇌, 고환이 축소될 수 있다며 위해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수년 후 실험에 사용된 쥐는 당단백질의 일종인 독성 렉틴을 먹어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결국 GMO의 위해성은 그의 실험에서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2012년 프랑스 캉대학의 세랄리니 교수 연구팀이 학술지 '식품과 화학독성학'에 게재한 논문도 비슷한 사례이다. 이 교수는 세랄리니 연구팀 논문에 대해 "GMO를 먹은 쥐가 암에 걸린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이지만 이들 쥐가 암 연구에 사용되는 특별한 종류(암세포 억제 유전자 결함)로 개량됐다는 게 이후 밝혀지면서 2013년 해당 논문은 철회됐다"라며 "이후 환경단체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저널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재출간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세랄리니 교수 연구팀이 GMO를 먹여 실험한 생쥐들. 이들 쥐는 암에 걸리기 쉬운 특성을 지닌 종류로 개량된 사실이 이후 발견돼 해당 논문은 출판 철회됐다. 이일하 서울대 교수 제공

GMO 식품이 인체 건강에 유해하지 않다는 주장은 실상 과학계의 통설이 된 지 오래이다. 유해하다는 학설을 검증하는 논문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는 게 학자들의 주된 목소리이다. 2016년엔 노벨상 수상자 107명이 공동으로 그린피스 등을 향해 GMO 반대 운동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면서 전 세계 환경운동 단체에 큰 타격을 준 일이 있다. 물리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이 "지금까지 GMO 소비가 인간이나 동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는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다"며 "권위 있는 과학기관의 연구 결과를 인정해 반대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효연 제주대학교 생명공학부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단체로 성명을 낼 정도로 유해하지 않다는 게 확인됐지만 이를 반대하는 단체에선 자신들의 논리 근거를 대지 못한다"라며 "예를 들어 GMO를 먹기 시작한 지 한 세대가 지났고, 이 기간 발생한 문제가 없다고 하면 '100년 뒤에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근거를 내놓을 수 있느냐'는 말로 맞서는 식이다"고 설명했다.

8년간 '미승인 GMO 주키니' 유통 드러나기도

최근의 GMO 반대 운동의 방향도 인체 유해 주장보다는 환경 문제 유발 가능성을 겨냥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2023년 미국산 GMO 주키니 호박이 무려 8년간이나 국내에서 재배되고 유통된 사실이 드러나는 등 GMO 관리상 허점이 자주 드러나고, 이로 인한 국내 농가 피해가 두드러지면서다. GMO를 먹어 마주할 인체 유해성은 확인이 쉽지 않지만, 야생 상태에서 생식성이 있는 LMO의 경우 제멋대로 번식해 국내 생태계를 위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주키니 호박 외에도 국내에서 승인 혹은 미승인 외산 GMO가 확산된 사례가 수차례 있다. 2017년 태백시 유채꽃 축제장에선 GMO유채가 발견됐는데, 이는 몬산토사가 개발한 제초제 저항성 유채로 밝혀졌다. 당국은 곧바로 회수조치에 들어갔으나 현재까지도 확산이 멈췄다는 보고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형 GMO반대 전국행동 집행위원장은 "최근 국내 유통 승인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 미국산 LMO 감자 등을 포함해 GMO 작물 수입과 국내 재배를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인체 위해성보다 환경훼손에 대한 우려"라며 "미국이 사용을 승인한 작물이지만 이는 GMO 작물 개발에 적극적인 미국의 사정일 뿐, 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우리에겐 위험하다"고 말했다.

GMO 식물은 보다 우수한 작물을 얻기 위한 연구의 결과물로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절차가 꼭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심플로트의 LMO 감자도 농진청이 국내 재배의 안전성을 확인해줬다기보다, 만약의 경우 유통 시 낙과로 종자가 확산되더라도 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당국 차원의 판단을 내린 것에 그친다. GMO 작물 전체적으로 확인된 인체 유해성은 없지만, 최종적으로 식약처가 심플로트 LMO 감자의 국내 수입 승인을 내릴지는 불분명하다. 해당 감자의 경우 조리 후 갈변현상을 억제하는 유전자변형이 이뤄져있는데, 이를 개발한 카이어스 로멘스 박사가 2018년 출간한 책 '판도라의 감자(Pandora's Potatoes)'에서 신경독소인 알파 아미노아디페이가 증가하면서 인체에 유해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일종의 자기 고백으로, 그는 'GMO 감자 개발을 후회한다'고까지 밝혔다. 식약처의 안전성심사는 서둘 경우 상반기 중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동일 제조사의 다른 LMO 감자(SPS-E12)는 2019년 식약처 심사를 통과했음에도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수입이 무산된 바 있다. 결국 식탁에 오르는 GMO 작물을 선택하는 최종 관문은 아직은 '과학'이 아닌 '여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양홍주 논설위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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