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 나선 트럼프, AI 빅딜 선점
일론 머스크(맨 왼쪽) 테슬라최고경영자(CEO)와 젠슨 황(가운데) 엔비디아CEO가 13일 리야드 궁정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만나기 위해 안내를 받고 있다. 이날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미국 대표 빅테크 관계자들이 대거 동행했다. 이들은 걸프만 국가의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계획을 내놨다./AFP 연합뉴스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리사 수 AMD CEO 등 미국 대표 빅테크 관계자들이 대거 동행했다.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만 국가의 거대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AI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현지 AI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가 본격적으로 중동과 관계 개선에 나서며 미국과 중동의 ‘AI 브로맨스’ 시대가 열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중동에 대해 2023년부터 엔비디아·AMD 등의 최첨단 반도체 수출을 제한해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전임 바이든 정부는 중동 국가의 독재적 성향,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 때문에 (기술 협력에) 회의적이었다”고 했다. 실제 바이든 정부는 ‘AI 확산 규칙’을 통해 기업들이 별도 허가를 받지 않을 경우 중동 지역에 연간 최대 1700장의 AI 반도체만 수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 정책의 시행 이틀을 앞둔 지난 13일 전면 폐지를 결정했다. 대신 향후 반도체 수출 때 국가별로 협상을 하겠다는 가능성이 커졌다. 사실상 미국 기업들이 중동의 데이터센터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면서, 중동에서 중국의 입김을 차단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중동 데이터센터 선점 나서는 미국
13일 엔비디아는 사우디 국부펀드가 소유한 AI 기업 휴메인이 추진하는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자사 최신 고성능 AI 칩인 ‘GB300’을 1만8000장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시작으로 엔비디아는 향후 5년 동안 수십만 장의 AI 칩을 사우디에 제공해 500메가와트(M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프로젝트 규모는 총 100억달러(약 14조원)에 달한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금지로 인한 손실을 사우디 계약으로 만회할 수 있게 됐다. 이 소식에 13일 엔비디아의 주가는 전날 대비 5.63% 급등했다.
그래픽=김성규
사우디가 추진하는 500MW급 데이터센터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의 주요 거점 데이터센터(100MW급)의 5배에 달하는 대규모다. 이 같은 초거대 클러스터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AMD도 휴메인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AI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 대표 네트워크·보안 기업인 시스코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기술을 공급한다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오픈AI는 UAE에서 새로운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는 13일 “오픈AI가 UAE에서의 데이터센터 구축을 고려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 기간에 이뤄지는 다양한 투자 활동의 일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 기업들의 이번 투자는 중동에서 중국 최첨단 기술의 확산을 막는 효과도 있다. 중동은 AI를 비롯한 최첨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오일 머니’를 앞세워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 왔다. 지난해 사우디 펀드가 중국의 AI 스타트업 ‘즈푸AI’에 투자했고, 중국은 중동을 거쳐 수입이 금지된 엔비디아 AI 칩을 확보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이날 미 상무부는 “세계 어디서든 화웨이 어센드 AI칩을 사용하면 미국의 수출 통제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중동 국가가 중국산 AI칩을 구매하기 어렵게 만들고, 중국 기업들이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길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AI 생태계 연결 고리도 강화
중동 시장이 열리면서 미 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외의 AI 투자·사업에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13일 사우디 벤처캐피털(VC) 기업인 STV는 구글의 지원을 받아 1억달러 규모의 AI 펀드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이 펀드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AI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들의 인프라 구축·서비스 개발을 지원하게 된다. 구글이 1억달러 중 얼마를 부담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AI 인프라부터 AI 중심의 소프트웨어 시장도 선제적으로 공략하겠다는 큰 그림으로 풀이된다.
미국 기업이 개발한 AI 기술도 중동 국가에 빠르게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2일 사우디에 항공기·선박 등에서 쓸 수 있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제공하겠다고 밝히면서 테슬라의 자율 주행 로보택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 테슬라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트럼프 대통령 및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NYT는 “중동이 러시아·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만큼 (AI 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도 나오지만, 미국이 팔 수 있는 게 있다면 팔아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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