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형 제조업 R&D 투자 몰려
단기에 美·中 따라가기 힘들어
불균형 구조 근본적 해결 시급
사진=연합뉴스
최근 10년간 EU R&D 스코어보드 상위 한국기업 산업별 R&D 투자 추이. KISTEP 제공
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을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선정해 강력한 육성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수차례 외쳤지만 실제 소프트웨어(SW) 분야 연구개발(R&D) 투자 실적은 한없이 초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6·3 대선에서도 주요 후보 저마다 '글로벌 3대 강국 진입', '100조원 투자' 등 AI 관련 목표와 비전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현재까지의 SW 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이들 공약은 득표만을 위한 공허한 외침에 그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R&D 투자가 하드웨어(HW)와 제조업에 편중된 불균형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AI 강국이란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의 EU 산업 연구개발(R&D) 투자 스코어보드를 분석한 '세계 R&D 투자 상위 2000개 기업 현황' 브리프에 따르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한국기업 40곳의 정보통신기술(ICT) SW R&D 투자 비중은 1%에 불과했다. 반면 이들 40개 국내 기업의 ICT 하드웨어 투자 비중은 62.7%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어 자동차 및 부품(11.8%), 기타(10.3%), 산업재(7.9%) 순이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비롯한 수출형 제조업에 R&D 투자가 몰리는 극단적 언밸런스 현상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AI 분야에서 미국을 뒤따르고 있는 중국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미국의 ICT SW R&D 비중은 34.2%로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았고 중국도 17.4%로 상당한 수준이다. 이밖에 일본은 9.8%, 영국은 5.4%로 한국에 비해 SW R&D 비중이 한참 높았다.
산업계와 과학기술계는 한국 R&D가 과거식 '수출 제조업 중심 압축성장'의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데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석한다. 반도체와 가전, 자동차, 철강, 정유·화학, 중공업 등 기존 주력 산업에 집중하면서 장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SW 산업 육성에는 투자 재원을 덜 분배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이 생성형 AI가 등장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했지만 한국은 기존 SW 체력이 약해 단기에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다. 10대 그룹 계열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아마존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 뿐만 아니라 전기차 기업 테슬라까지도 모두 SW로 세계를 제패했다"라며 "현재 한국 IT가 위기에 처한 것은 SW 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이름 아래 모든 산업이 SW 중심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지도 10년이 넘었다. 현재 화두인 AI도 SW 기술이다. HW 위주인 R&D 생태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AI 3대강국이라는 목표는 실현되지 못할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김형철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소장은 "전통적인 HW에 치중된 국내 산업구조 개선과 글로벌 AI 경쟁 대응을 위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SW산업 육성이 필요하다"면서 "SW 역량은 이미 전 산업 분야에 걸쳐 경쟁력의 핵심요소가 됐다. SW기업들뿐 아니라 제조, 자동차, 조선, 로봇, 우주에 이르기까지 R&D 투자로 SW기술 개발·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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