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폐업한 가게에 폐점 세일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는 공약을 일제히 내세우면서 금융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때 금융권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상생금융에 수조원대 자금을 출연한 바 있다. 정부 재정으로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긴 윤석열 정부 때 상황이 새 정부에서도 반복될지 주목된다.
1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발표한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이 3번 공약에 배치됐다. 정책자금 대출에 대한 채무조정과 탕감 등 종합방안 수립, 12·3 비상계엄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핵심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경영안정자금 지원 확대 등 소상공인 응급 지원 패키지 시행, 대통령 직속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단 등을 공약했다. 이런 공약은 내수 부진 속에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반면 은행권은 고금리 기간 동안 역대급 이익을 거두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정치권이 내놓은 소상공인 공약의 핵심은 ‘자금 지원’이다. 낮은 금리로 정책자금을 빌려주거나 빚이 과도한 경우에는 채무조정·탕감 등으로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국힘 모두 공약의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금융권에선 상당수 재원이 결국 금융업권에서 나오는 것 아니냔 의구심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누가 당선되든 은행에 청구서를 내밀 것”이라며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과도한 요구로 금융업의 본질이 훼손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채무조정이나 탕감이 과도하게 이뤄지거나 지원 대상 가려내기가 허술하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의구심이 나오는 배경엔 앞선 경험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0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은행의 영업행태에 대해 거칠게 비판(은행 종노릇 발언)한 뒤, 은행권은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은행권은 3년간(2025∼2027년) 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을 내놨다. 정치적 압력에 의한 ‘관치 상생’이 어느 정도 관행화된 셈이다.
통상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은 정부 재정이나 정책금융으로 보완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그간 정부는 ‘건전 재정’을 이유로 지원 부담을 민간 은행에 떠넘겨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이런 형태의 상생 지원은 법적 근거 없이 정치권이나 정부 재량으로 수립된다는 점에서도 논란이 됐다. 이재명 후보도 세수 확충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탓에 윤석열 정부 때와 같은 상황이 재현될 공산이 높다.
은행권 입장에선 민주당의 ‘가산금리 공약’도 부담이다. 민주당은 대출 가산금리 산정 때 법적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당하게 전가하는 것을 막아 원리금상환부담을 덜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전배승 엘에스(LS)증권 연구원은 이날 낸 민주당 대선 공약 내용 점검 보고서에서 “(상생금융류의) 일회성 비용 소요보다는 가산금리 억제 등 가격규제 영향이 크게 나타날 전망”이라며 “가산금리에서 예보료와 출연료를 제외할 경우 세전이익이 5∼10% 감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이 같은 금융 공약이 ‘업계 팔 비틀기’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약 재원은 모든 걸 열어놓고 고민 중이다. ‘팔 비틀기’ 에 대해 민주당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