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이 1992년 7월 8일 한국과학재단 회의실에서 과학기술진흥회의를 주재하고 기존 과학기술정책 성과를 중간 점검했다. 〈국가기록원〉
“과학기술은 황금열쇠”…G7프로젝트에 3조7000억 투입
1992년 7월 8일 오전 노태우 대통령은 충남 대덕연구단지 한국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 회의실에서 1992년 제1차 과학기술진흥회의를 주재했다. 노태우 정부 출범 이래 다섯 번째 진흥회의였다.
회의에는 최각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 등 과학기술 관련 국무위원, 3당 정책위의장, 과학기술계·산업계·학계 인사 등 193명이 참석했다.
대통령 외부 행사가 늘 그렇듯이 재단 주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통령 경호실에서 선발대가 하루 전날 이곳으로 내려와 재단 곳곳을 돌며 철저하게 안전 점검을 했다.
'바람 소리도 놓치지 말라'는 경호 수칙에 따라 경호원들은 재단 1층 현관 출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고 출입자를 일일이 검색했다.
오전 10시 20분쯤 노태우 대통령이 정해창 비서실장 등과 함께 과학재단 현관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회의에 앞서 초고집적 반도체와 다목적 소형항공기 등 22점의 첨단 개발 제품 전시장을 둘러보고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10시 30분 회의실에서 과학기술 홍보영화 '철이의 꿈(부제 우리의 과학기술)'을 참석자들과 함께 관람했다. 이 영화는 한국기술진흥재단(현 한국과학창의재단) 지원으로 국립영화제작소가 만든 8분짜리였다.
진흥회의는 최각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김진형 과학기술처 장관이 '과학기술혁신 종합대책' 및 '주요 과학기술혁신시책'을 각각 보고하고 현안 토의, 대통령 말씀 순으로 낮 12시 10분까지 1시간 40분 동안 진행했다.
이날 진흥회의는 기존 방식과 크게 달랐다. 나열식 보고 대신 과학기술혁신종합대책 추진 상황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자리였다. 그만큼 긴장도가 높았다.
청와대 관계자의 배경 설명.
“이날 회의는 현장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청와대가 아닌 연구개발 메카인 대덕연구단지 내 과학기술재단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주재했습니다. 정부 시책을 나열식으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해 1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과학기술혁신 종합대책'을 제대로 추진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 등을 대통령이 확인·점검하는 극히 이례적인 자리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회의에서 “과학기술은 우리 소망을 실현해 줄 '황금열쇠'이며 과학기술인 여러분이 바로 그 황금열쇠를 가진 주인공”이라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과학기술 발전에 더욱 분발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통한 선진국 진입과 통일 달성을 위한 원천이 과학기술 진흥”이라면서 “기술패권주의가 팽배한 국제 현실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미 마련한 '과학기술혁신 종합대책'은 차질 없이 추진하고 그에 대한 성과를 수시로 점검하며, 기술 개발은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선정해서 인력과 재원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들의 사기 진작 대책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기술자의 행정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직급·정원·승진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기좌·기감 등 기술직 명칭을 시대에 맞게 고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최각규 부총리는 '과학기술혁신 종합대책' 보고를 통해 “내년에는 모든 부처에서 긴축예산을 편성해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과학기술 지원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예산을 반영토록 하는 등 과학기술 총예산에 대한 비중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또 “기업의 기술과 인력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 범위를 현행 10%에서 투자를 많이 하면 더 높은 공제율을 적용받을 수 있게 하는 누진제를 실시하기 위해 조세감면규제법 등 관계 법령을 개정하겠다”고 보고했다.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은 '주요 과학기술혁신시책' 보고에서 “G7프로젝트(선도기술개발사업)에 2001년까지 총 3조7000억원을 투입하고, 올 7월부터 고선명 TV 등 최종 선정된 11개 첨단기술 개발에 나선다”면서 “1996년까지 1조원을 조성키로 한 과학기술진흥기금과 관련해 내년에 정부 출연금 등으로 1000억원 이상을 추가 조성, 내년도 조성 규모를 2300억원으로 늘리겠다”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또 “생산기반기술 강화를 위해 919개 기술 과제 가운데 지난해 착수 과제 586개와 올해 신규 과제 267개의 개발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올해 제1차 기계류 및 부품과 소재 국산화 대상 품목 632개 기술을 적극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원 중심 대학의 운영 방안을 올해 중 마련해서 내년에 2개교를 지정하고, 사내 기술대학(원) 졸업자에 대해 국가기술자격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국내 정보기관들의 해외 과학기술 정보 수집 능력을 강화하고 9월 환경기술개발원을 설립하며, 하반기 중 미국과 장관급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서울에서 개최해 반도체장비 컴퓨터 등에 대한 공동연구와 한미과학기술개발재단 설립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회의를 마치고 재단 구내 식당에서 참석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첨단기술 개발에 헌신한 과학기술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날 진흥회의에서 보고한 주요 과학기술 정책은 아래와 같다.
◇정부부문 투자 확대=1996년까지 정부 출연 4800억원, 기초과학 연구기금 전입 1129억원, 기술개발복권사업 2850억원, 통신공사 출연 1000억원 등으로 1조원의 과학기술진흥기금을 조성한다.
◇정부투자기관 기술개발투자 확대=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 등 통신·에너지 부문의 기술개발투자 비중을 1992년 3.3%(4054억원)에서 1993년 3.5%(4759억원)로 확대하고, 원자력 기술과 광대역통신망 개발에 투자한다. 정부 투자기관의 경영평가항목 가운데 연구개발 지표 비중을 상향 조정한다.
◇민간 부문 기술개발투자 유도=올해 중소기업 구조조정자금 등 각종 기술개발금융을 지난해(1991년)보다 28% 증가한 1조5800억원을 지원하고, 민간기업에 대한 기술개발금융을 늘리기 위해 발족한 한국종합기술금융㈜의 기초연구개발과 응용연구개발 등에 대한 지원 규모를 7000억원으로 확대한다. 또 자본금을 현재 15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늘리고, 기술개발채권의 발행 확대와 기술개발복권 발행을 추진한다.
◇기술개발 조세지원= 조세감면규제법을 고쳐 신기술 기업화 사업용 자산에 대한 일시 상각률을 현행 50%에서 90%로 늘리고, 이익을 내지 못할 때 적용받는 기술개발비의 이월공제 기간도 현행 4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 기업 기술과 인력개발비에 대한 투자세액 공제제도를 현행 10% 적용에서 투자를 많이 하면 더 높은 공제율을 적용 받을 수 있도록 누진제로 개선한다.
◇G7프로젝트 추진=우리나라가 2000년까지 과학기술 선진 7개 국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줄 전략사업으로 △고선명 TV △초고집적 반도체 △광대역종합정보통신망 △첨단생산시스템 △차세대자동차기술 등 11개 과제를 확정하고 이달(7월)부터 연구개발을 본격화한다. 2001년까지 소요개발비 3조7000억원 조달을 위해 정부가 1조4700억원, 정부기관이 5900억원, 민간기업이 1조6400억원을 투입한다. 이의 안정적 지원을 위해 예산상의 계속비 제도와 장기계약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산·학·연 및 국제공동연구도 추진한다.
◇연구개발자원 확충= 우수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원 중심대학' 운영 방안을 올해 중에 마련해 1993년 2개교를 지정하고 1995년 광주에 과학기술원을 개교하는 것을 목표로 1993년에 건설공사를 시작한다. 체계적인 과학기술 정보 수집을 위해 1993년 중 미국 워싱턴에 연구소 통합사무소를 설치하고, 국내 정보기관들의 해외 과학기술 정보수집 능력을 강화한다. 산·학·연 협동 연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지식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수립하고, 한국종합기술금융㈜에 '연구개발실용화사업단'을 설치한다.
◇해외 과학기술자원 활용=1993년 200명의 러시아 과학기술자를 국내에 유치하고 첨단기술이전회사를 현지에 설립하는 등 러시아 첨단기술과 인력을 적극 활용하며, 중국과도 동양의학 연구 등 공동연구개발을 추진한다. 한일 산업기술협력재단 설립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지원하며, 미국과는 올 하반기에 장관급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서울에서 개최해 한미 과학기술개발재단 설립을 추진한다.
◇과학기술 혁신 애로사항 개선=기술개발 자금 조달과 기업연구소 부지 사용, 병역특례 연구 요원 확보, 연구개발 기자재와 시약 적기 도입, 연구개발의 기업화와 시장 진출 등 기업·대학·연구소가 겪고 있는 기술 혁신 애로 사항을 개선하는 '특별한 제도적 장치'를 올해 안에 강구해 2000년대 과학기술 7대 선진국 진입 기틀을 마련한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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