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초등생도 제미나이 사용 허용
국내 청소년 67.9% “AI 써봤다”
“과도한 사용은 인지 발달 저해 우려”

생성형 Ai가 생성한 이미지. 챗GPT 제공

"풀이가 너무 완벽해서 방법을 물었더니 학생이 '챗GPT가 해줬다'고 털어놨습니다. 요즘은 여러운 문제를 어떻게 풀지 고민하기보다 모르면 곧장 인공지능(AI)에게 묻는 아이들이 더 많아지고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30대 교사 A씨는 최근 이같은 일이 많다고 말했다. "서술형 문제의 정답이 고등학교 수준의 방식으로 정확하게 정리돼 있어 직접 풀었는지를 확인했더니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A씨는 "학생들이 챗GPT를 일종의 '답지'처럼 활용하고 있다"며 "챗GPT는 오류도 많고 맥락을 잘못 짚는 경우도 있는데 별다른 의심 없이 그대로 믿어버리는 아이들이 많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하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면서 청소년의 사고 과정에도 AI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모르는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기보다 곧바로 AI에게 정답을 묻고 받아들이는 학습 방식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아직 사고력과 판단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AI를 사용하는 것이 학습 습관은 물론 인지 발달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초등생도 "AI가 숙제 해줘요"= 구글은 최근 만 13세 미만 아동이 사용하는 계정에도 자사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 서비스를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글이 8살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발송한 이메일에는 "곧 자녀도 제미나이 앱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며 이를 활용해 질문을 하거나 숙제를 돕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안내했다.

현재 대부분의 생성형 AI 챗봇은 만 13세 미만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구글 정책 변경으로 패밀리 링크'를 사용하는 어린이 계정도 제미나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패밀리 링크는 부모가 자녀용 지메일 계정을 만들고 유튜브 등 서비스 이용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이번 조치로 사실상 초등학생도 AI 챗봇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구글뿐 아니라 AI 기업 전반이 미성년자들까지 사용자층을 넓혀 시장 선점을 본격화하고 있다. AI 스타트업 앤트로픽도 지난해 10대 청소년들도 자사 AI 기술을 활용한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변경한 바 있다.

실제로 AI 기업들이 하나둘 연령 제한을 완화하면서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13~17세 청소년의 약 26%는 학교 과제에 챗GPT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불과 1년 전인 2023년(13%)에 비해 두 배 증가한 수치다. 또 46%의 고등학생이 다양한 수업에서 AI 도구를 사용하고 있으며, 주로 국어, 사회, 과학 과목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청소년들의 생성형 AI 사용은 이미 확산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전국 중·고등학생 57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7.9%가 생성형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고등학생이 중학생보다, 학업 성적과 경제 수준이 높은 학생일수록 AI 활용 경험이 더 많았다.

◇AI가 익숙한 아이들…사고 능력은↓=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AI 도구의 조기 노출이 청소년의 사고력과 판단력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AI안전연구소장)는 "AI 기업들이 겉으로는 보호장치를 강화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오픈AI의 점유율에 밀리지 않기 위한 마케팅적 결정에 가깝다"며 "연령 제한을 낮추면 이용자층이 넓어지고 결국 수익 대상이 되는 인구가 많아진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는 여전히 오류를 포함한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데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그대로 의존하게 되면 교육적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어린 사용자들이 AI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영국 인터넷 안전 센터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사용한 어린이 가운데 53%는 또래가 AI를 괴롭힘이나 허위 정보 생성에 사용하는 것을 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세프 역시 "AI가 어린이에게 혼란을 주고,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청소년들이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정보가 사실인지 특정 관점에 치우쳐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전반적으로 낮았다"며 "특히 딥페이크와 같은 허위 합성물이 범람하는 시대에는 AI 정보에 대한 비판적 평가 역량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 또한 "지금 세대는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가며 공부하던 기존 세대와는 다르다.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데 익숙해진 만큼, 오히려 그 기반이 되는 사고력과 논리력을 갖춘 인재 층이 줄어들 수 있다"며 "AI는 도구로서는 유익할 수 있지만 뇌 발달이 한창인 시기에 사고를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된다. 편의성과 즉시성이 사고력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교육이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신호"라고 강조했다.

유진아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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