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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기자

얼마 전 만난 취재원과 인공지능(AI) 국가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취재원의 가까운 지인들이 수년 전 한국을 떠난 사연을 듣게 됐다. 대학에서 과학기술, 특히 AI 분야 연구를 하던 지인들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로 진로를 고민하다 미국 등 해외 대학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예산 축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인재들이 바라보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의 많은 이공계 인재들은 '의대 열풍'이라는 거센 흐름 속에서도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으로 진로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학생은 물론 이공계 직장인들까지 다시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분위기 속에서 과학기술 분야를 진로로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그들이 한국 이공계의 미래를 비관하고 일부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AI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기업을 하려면 돈과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둘 중 무엇이 더 어렵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사람”이라고 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AI 시대에도 가장 귀한 자원은 여전히 사람이다.

딥시크가 던진 충격의 배경에도 역시 '사람'이 자리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딥시크의 성공 요인은 자금이 아니라 적절한 엔지니어링 기법과 실험정신이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과감히 실험해 본 젊은 연구자들의 도전에서 출발한 결과라는 것이다.

딥시크의 창립자인 량원펑은 중국 내에서 새로운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AI 기반 헤지펀드로 자금을 마련한 뒤, 세계적 수준의 AI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2023년 딥시크를 창업했다. 1985년생의 량원펑은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기술을 개발하며 “기본적인 기술과 창의성, 열정이 파격적 대우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젊은 인재들에게도 도전정신과 꿈을 일깨워 줄 새로운 롤모델이 필요하다. AI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씨를 지필 수 있는 창업자들을 길러내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는 유례없이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해외 인재들을 국내로 유치하는 방안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최근 미국 내 비자 규제 강화, 연구비 축소 등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유학생들이 많다. 한국인, 나아가 제3국 출신의 유학생들과 이민자들 역시 진로에 고민이 깊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들에게 한국이 새로운 미래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거쳐 이뤄낸 한국의 성공 경험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재를 키우는 문화에 대한 투자는 특정 정권의 몫이 아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문화와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다음 정부를 통해서라도 이어가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진정한 투자는 어려울 것이다.

한 기업 대표는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지만, 기업의 생명주기는 훨씬 더 길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시대를 꿰뚫는 통찰과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약속하길 기대한다.

김명희 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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