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최근 9연승 포함해 23경기에서 20승 올리며 18년 만에 단독 1위 등극물론 엎치락뒤치락하는 치열한 순위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야구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시즌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우승을 차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1982년부터 작년까지 KBO리그의 43년 역사에서 시즌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고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기록한 팀은 2022년의 SSG 랜더스가 유일했다.
2023년 통합 우승팀 LG 트윈스는 올해 개막 7연승을 내달리는 등 한 달 넘도록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요니 치리노스와 손주영,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 임찬규, 송승기로 이어지는 선발진이 워낙 견고했고 타선 역시 빈틈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LG는 에르난데스의 부상과 타선의 침묵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두산 베어스와의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1승2패를 기록하며 개막 후 처음으로 2위로 떨어졌다.
LG가 내려온 선두 자리에 올라선 팀은 다름 아닌 한화 이글스다. 야구팬들이 한화의 선두 등극에 놀라는 이유는 한화가 2008년부터 작년까지 17년 동안 무려 8번의 최하위를 포함에 가을야구에 1번밖에 가지 못한 KBO리그의 대표적인 약체 구단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에도 10개 구단 중 8위에 그쳤던 한화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한화는 올 시즌 모든 팀이 꺼리는 강팀이 될 수 있었을까.
강팀 한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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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9회 초 삼성 공격을 막아내고 10-6으로 승리를 확정 지은 뒤 한화 마무리 투수 김서현과 포수 이재원이 승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17년 간 최하위만 8번을 기록하던 시절 한화를 부르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 중 하나는 바로 '감독들의 무덤'이었다. 실제로 한화는 2009년 김인식 감독이 사임한 후 정식 감독만 6명이 거쳐 갔지만 2018년의 한용덕 감독을 제외하면 한화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감독이 없었다. '명장'으로 불리던 김응용 감독과 김성근 감독은 물론이고 외국인 사령탑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도 한화를 강팀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해 6월 최원호 감독의 후임으로 두산과 NC 다이노스를 이끌었던 김경문 감독이 부임했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 시절 3회, NC 시절 1회 한국시리즈를 경험하는 등 KBO리그 감독 생활 14년 동안 10번이나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던 검증된 감독이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포스트시즌을 경험했음에도 정작 한국시리즈 우승은 한 번도 없었다는 아픈 기억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한화는 작년 김경문 감독이 이끌었던 87경기에서 42승1무44패를 기록했다. 김경문 감독은 무너지던 팀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았지만 한화는 최하위에서 단 2계단을 올라간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김경문 감독은 작년 시즌이 끝나고 구단으로부터 FA 투수 엄상백과 유격수 심우준을 선물 받았고 올 시즌 초반 극심한 타격 부진을 이겨내고 만년 약체 한화를 최근 23경기에서 20승을 따내는 강팀으로 만들었다.
김경문 감독은 뉴욕 양키스의 유망주 1위 출신 외국인 타자 에스테반 플로리얼 대신 174cm의 3년 차 유틸리티 자원 문현빈을 과감하게 3번타자로 기용하고 있다. 그리고 문현빈은 올 시즌 타율 .305 6홈런20타점15득점6도루로 활약하며 김경문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고 있다. 첫 3경기에서 1패 평균자책점6.89로 부진했던 라이언 와이스도 최근 5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와 함께 5연승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 4월 30일 LG전에서는 백업포수 허인서에게 948일 만에 1군 타석에 설 기회를 주는 '낭만야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김경문 감독이 언제나 고집스러운 '믿음의 야구'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시즌 개막 후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20.25로 무너진 주현상 대신 마무리를 과감하게 김서현으로 교체했고 지난 4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견제사를 당한 문현빈을 질책성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결실 맺기 시작한 꾸준한 투자
사실 강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꾸준한 투자와 함께 연고지에서 좋은 유망주들이 배출돼야 한다. KIA가 해태 시절부터 많은 우승을 달성하며 KBO리그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선동열과 이강철(kt 위즈 감독), 이종범(kt 외야수비·주루코치) 등 연고 지역 출신의 레전드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는 1차 지명이 부활한 2014년부터 10년 가까이 좋은 유망주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빈약한 토양 속에서 매년 하위권을 전전하던 한화는 2021년 신인 드래프트부터 전 시즌 하위 3개 팀에게 타 지역 선수를 1차지명으로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문동주를 지명한 한화는 전면 드래프트가 도입된 202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서현, 202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정우주로 이어지는 강속구 유망주 3인방을 차례로 지명했다.
그리고 최근 4년 동안 한화가 지명했던 유망주 3인방은 올 시즌 1군에서 맹활약하며 이들에게 투자했던 15억 원의 계약금이 아깝지 않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시즌 개막 후 4경기에서 승리가 없었던 문동주는 이후 4경기에서 연속 승리를 따냈고 김서현은 21경기에서 1패11세이브1홀드0.46의 '미친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정우주 역시 15경기에서 1승3홀드4.40으로 한화의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다.
2014 시즌을 앞두고 정근우와 이용규(키움 히어로즈) 영입에 137억 원을 투자하고도 그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화는 2020년대 들어 3년 연속 최하위라는 수모를 당한 후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한화는 2023 시즌을 앞두고 채은성을 영입하는데 6년 총액 90억 원을 투자했고 작년 시즌을 앞두고는 FA 안치홍과 4+2년 총액72억, 돌아온 류현진과 8년 총액 170억 원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한화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작년 FA시장에서도 잠수함 선발 엄상백과 유격수 심우준을 영입하는데 128억 원의 거액을 투자하며 '큰 손'을 자처했다. 거듭된 투자에도 실패를 거듭하며 투자가 위축될 법도 했지만 한화는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한화의 과감하면서도 꾸준한 투자는 올 시즌 18년 만의 단독 1위 등극이라는 달콤한 결실을 안겨주고 있다.
'보살 팬'의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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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 팬들이 한화 득점에 환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프로 스포츠는 성적에 따라 팬들의 관심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KBO리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데 팬들의 열정이 뜨겁기로 유명한 롯데 자이언츠는 4년 연속 최하위에 허덕이던 암흑기 시절 부산 사직야구장에 1000명도 채 되지 않는 관중이 들어온 적도 있다. LG 역시 잘 나가다가 시즌 중반 이후 순위가 떨어지며 가을 야구에서 멀어지면 열성 팬들이 경기장 출입구를 막고 '청문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충청 지역의 유일한 프로야구 팀 한화는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행복 야구'를 하고 있다. 한화 팬들은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하고 대패를 당할 때도 성적에 초연한 듯한 자세로 일관하며 야구팬들에게 '보살'로 불리고 있다. 수년 전에는 한화가 경기 후반 득점을 올리고 마치 역전을 한 것처럼 열광하는 한화 팬들의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는데 당시 한화는 10점 차 이상으로 지고 있었다.
야구팬들에게 '보살'로 불리고 있지만 사실 한화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그 어떤 인기 구단에도 뒤지지 않는다. 한화는 작년 1964년에 개장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구 한밭야구장)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 10개 구단 중 2번째로 적은 80만4202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하지만 한화는 작년 71번의 홈경기 중 무려 47번의 매진 경기를 만들면서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66.2%의 매진율을 기록했다.
작년까지 10개 구단 중 가장 오래된 야구장을 사용하던 한화는 올 시즌부터 3월에 개장한 한화생명 볼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화는 올 시즌 새 집에서 24승13패의 호성적으로 단독 선두에 올랐고 팬들은 최근 12경기 연속 매진을 포함해 올 시즌 19번의 홈경기에서 16번의 매진 경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현재로서는 한화생명 볼파크를 다소 작은 규모(1만7000석)로 지은 것이 아쉬울 정도.
한화의 열혈 팬으로 유명한 배우 차태현은 지난 4월 2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화가 우승하면 한화생명 볼파크의 수영장에 주황색 이글스 그림이 있는 팬티를 입고 입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사실 암흑기가 길었던 탓에 한화 팬들은 상승세에도 섣부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9연승을 포함해 최근 23경기에서 20승을 쓸어 담은 올 시즌엔 한화 팬들도 큰 꿈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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