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결산]
‘에이징 커브’ 시점에 이례적인 역주행 레이스
우승팀 ‘영림프라임창호’ 박정상 감독 리더십
갈수록 바둑팬들에게 외면당하는 ‘KB리그’
바둑계 내 특단의 대책 필요성 목소리 높아져지난해 12월 12일 개막한 ‘2024~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우승상금 2억5,000만 원)는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제패한 영림프라임창호팀 통합 우승과 더불어 약 5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국내 최대 프로기전인 ‘2024~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우승상금 2억5,000만 원)가 정규시즌과 지난 4일 열렸던 챔피언결정전 최종전까지 모두 승리한 영림프라임창호팀 통합 우승과 더불어 약 5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12월 12일 개막한 ‘2024~25 KB리그’는 개막 직전부터 파격적인 전 경기 ‘초속기 1분 10초’ 대국(★관련기사 본보 [단독] 2024년 10월 14일 자 ‘2024~25 KB바둑리그’ 파격…전 경기 ‘초속기 1분 10초’ 대국) 도입과 그동안 국내 선수로 대체 가능했던 해외 용병의 교체 불가능 규정 적용, 신생팀(한옥마을 전주, 영림프라임창호) 참가 등으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의 바로미터인 ’2024~25 KB리그’ 바둑TV 시청률이 처음으로 0.1%대 미만까지 추락하면서 K바둑계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총 8개(영림프라임창호, 원익, 수려한합천, 마한의 심장 영암, GS칼텍스, 정관장, 울산 고려아연, 한옥마을 전주) 팀이 물고 물리면서 숱한 화제 속에 이어졌던 ‘2024~25 KB리그’를 복기해봤다.
‘2024~25 KB 리그’ 통합 우승을 견인한 영림프라임창호 소속의 강동윤(왼쪽) 9단은 정규시즌에서만 11승 3패(승률 78.6%)로 다승왕에 오른 데 이어 포스트시즌에서도 1승을 추가하면서 이번 KB리그에서 12승 3패(승률 80%)로, 가장 유력한 MVP 후보에 올라 있다. 한국기원 제공
올해 상반기 국내 K바둑계 최대 관전포인트는 베테랑 프로 기사들의 이례적인 ’반상(盤上)’ 반란으로 요약된다. 그동안 두뇌 스포츠인 바둑계에선 최전성기인 20대를 지나 30대에 접어들 경우 체력적인 약점 노출과 함께 고착화됐던 ‘에이징 커브(시간 흐름에 따른 기량 저하)’ 시점이 눈에 띄게 미뤄지면서다.
국내 랭킹 2위(5월 기준)로, 여전히 세계 무대에서도 활약 중인 박정환(32) 9단 이외에도 올해 KB리그에서 이런 기류를 주도한 대표적인 기사는 영림프라임창호 소속의 강동윤(36) 9단이다. 정규시즌에서만 11승 3패(승률 78.6%)로 다승왕에 오른 강 9단은 포스트시즌에서도 1승을 추가, 이번 KB리그에서 12승 3패(승률 80%)로 사실상 MVP까지 유력하다. 사실상 영림프라임창호를 이번 KB리그 통합 챔프로 견인한 강 9단은 앞서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22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2009년)와 ‘제20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2016년) 타이틀을 획득한 바 있다. 강 9단은 이달 기준 국내 랭킹을 12년 만에 3위까지 끌어올리면서 본격적인 역주행 노선에 들어섰다.
올해 KB리그 정규시즌에서 4위를 차지한 후 최종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한 마한의 심장 영암팀 주장인 안성준(34) 9단에도 이목이 쏠렸다. 정규시즌에서 8승 6패(승률 57.1%)로 마무리한 안 9단은 포스트시즌에서 4승 3패를 보태면서 이번 KB리그에선 12승 9패(승률 57.1%)를 기록, 다승 공동 1위에 올랐다. 이는 지난해 KB리그에서 역시 같은 팀 소속 주장으로 7승 9패(승률43.8%)에 그쳤던 성적에 비해선 향상된 성적표다. 안 9단은 국내 랭킹에서도 현재 9위에 랭크됐다.
올해 KB리그에선 원익팀 소속의 이지현(33) 9단의 활약상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올해 KB리그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에서만 10승 6패(승률 62.5%)를 거둔 이 9단은 현재 국내 랭킹에서도 입단 이후 생애 최고인 4위까지 끌어올리면서 ‘에이징 커브’ 시점을 오히려 최전성기로 바꿔 놓고 있다. 지난해 말 ‘제47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준우승에 이어 지난달엔 세계 랭킹 1위인 신진서(25) 9단마저 꺾고 ‘제26기 맥심배 입신 최강전’에서 우승을 차지, 국내 바둑계에선 ‘뜨거운 감자’로 자리매김했다.
4일 ‘2024~25 KB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마한의 심장 영암팀에게 승리, 정규시즌에 이어 통합우승을 차지한 박정상(가운데) 영림프라임창호팀 감독이 우승컵을 들고 소속팀 선수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이번 KB리그에선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을 한꺼번에 거머쥔 신생팀 영림프라임창호의 깜짝 우승 또한 색다른 볼거리였다. 특히 전반기 6라운드에 접어든 시기에 2승 4패로 고전했던 신생팀이 이후 경기에선 8승 1패의 극적인 반전 드라마로 정규시즌 1위에 오른 데 이어 마한의 심장 영암팀과 가진 챔피언결정전(3판 2선승제) 1, 2차전에선 모두 3-0 싹쓸이 완봉승을 수확, KB리그 사상 첫 무패 우승 기록까지 작성했다.
이 중심엔 박정상(38) 감독의 ‘수평 리더십’이 추진 동력으로 자리했단 평가도 나온다. 박 감독은 “현역 선수로 활동하면서 경험했던 타이틀 획득 당시와 감독으로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순간의 기분은 확실하게 다르다”며 “개인 우승보단 팀을 이끌고 우승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2000년 프로에 입단한 박 감독은 2006년엔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19회 후지쯔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까지 차지한 바 있다. 박 감독은 “이번 KB리그 시즌 내내 선수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며 “지금 뒤돌아보면 팀이 부진했던 전반기 힘들었던 시기에 가라앉았던 감독에게 오히려 ‘정신 차리세요’라고 전한 팀원들의 충고성 메시지 덕분에 반등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떠올렸다.
박 감독의 용병술 역시 팀 우승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자리했다. 실제 영림프라임창호팀 소속으로 출전한 중국의 당이페이(30) 9단은 자국 내 빡빡한 대국 일정 속에서도 이번 KB리그에 참여했던 외국 용병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인 6승 1패(승률 85.7%)를 기록했다. 당이페이 9단은 지난 2017년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21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에서 우승한 중국 바둑계의 강타자다. 한국외대에서 중국어학을 전공한 박 감독은 중국 바둑계에도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감독은 “다른 팀과 1대 1 맞대결로 진행되는 KB리그에선 상대전적이나 당일 컨디션 등을 고려해서 출전 선수 명단(오더)을 짜는 게 가장 중요하다 보니 당일 대국 직전에도 오더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당이페이 9단을 포함해 모든 선수들이 철저하게 감독을 믿고 따라주면서 이번 KB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프로기전인 ‘2024~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우승상금 2억5,000만 원)는 개막 전부터 파격적인 전 경기 ‘초속기 1분 10초’ 대국 도입과 그동안 국내 선수로 대체 가능했던 해외 용병의 교체 불가능 규정 적용, 신생팀(한옥마을 전주, 영림프라임창호) 참가 등으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흥행성의 바로미터인 바둑TV 시청률은 역대 최저치인 0.087%까지 추락, 사상 처음으로 0.1%대가 붕괴됐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다만 뚜렷한 하락세로 접어든 KB리그의 흥행성 회복은 이번에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졌다. 이번 ‘2024~25 KB리그’에서 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전 경기 ‘초속기 1분 10초’ 대국은 철저하게 바둑팬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시도였다. 축구와 야구를 포함한 최근 스포츠계의 최대 화두인 경기 시간 단축 흐름에 편승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실효성은 약했다. 기류는 객관적인 통계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바둑TV의 ‘2024~25 KB리그’ 시청률은 역대 최저치인 0.087%까지 추락했다.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0.1%대가 마침내 붕괴된 것. ‘2020~21년’ 0.187%에서 ‘2021~22년’엔 0.163%에 이어 ‘2022~23’년엔 0.102%로 떨어졌던 KB리그 시청률 하락세가 올해에도 지속됐단 얘기다. 결과적으로 KB리그에 대한 일반 바둑팬들의 외면이 갈수록 심화된 모양새다.
바둑계 일부에선 KB리그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가 예년에 비해 늘어나고 있단 측면에서 긍정적 시각도 나오지만, 객관적 지표인 바둑TV 시청률 내림세를 상쇄시키기엔 미미한 형국이다. 국내 바둑계에서 차지하는 ‘KB리그’의 위상을 감안하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단 목소리에 힘이 실린 배경이다. KB리그는 국내 바둑계의 인큐베이터다. 2003년 6개 팀으로 출범한 한국드림리그에 이어 이듬해 한국바둑리그를 거쳐 2006년부터 매년 7~12개 팀이 참가, 평균 5~6개월 동안 운영되면서 K바둑계의 산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둑계 내에선 KB리그에 ‘대수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KB리그’에서만 15년 이상 활약한 한 중견 프로 바둑 기사는 “바둑팬들의 눈높이를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심층적인 분석과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며 “당장 올해 도입됐던 ‘초속기 1분 10초’ 대국 방식만 살펴보더라도 경기에 나선 선수들을 비롯해 방송 해설자들이나 시청자들에게도 숨 가쁜 진행 탓에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바둑계 관계자는 “팀 성적에만 치우친 나머지 1지명 선수들의 맞대결을 피하면서 흥행성을 스스로 떨어뜨린 부분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며 “2025~26 KB리그’에선 개선된 방식의 규정이 적용됐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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