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청년 부채, 단기 처방 아닌 '구조적 수술'과 '새 출발의 사다리'가 필요하다
[한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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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 남소연 |
"솔직히 다들 카드 돌려막기 한 번쯤은 해봤잖아요, 안 그런가요?"
얼마 전 만난 한 청년의 자조 섞인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빚'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 문제가 아닌, 그야말로 '생존의 언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학자금으로 시작해 주거비, 생활비까지 빚으로 돌려막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청년 부채는 개인의 실패가 아닙니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자산 불평등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우리 사회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이 구조에 정면으로 칼을 대지 않고서는 청년의 내일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이준석 후보가 꺼내 든 '청년 잠시멈춤 대출' 공약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청년이 짊어진 주택담보대출의 원금 상환을 일정 기간 멈추고, 이자만 내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고려한 듯 보이고, 어떤 청년들에게는 한숨 돌릴 시간을 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책이 고통의 '결과'에만 소극적으로 반응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공약의 핵심은 결국 '시간 벌기'일 뿐, 곪아 터진 '문제 해결'은 아닙니다. 우리가 직면한 것은 시간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근본부터 잘못된 '구조'의 문제입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서울에서 3억 원짜리 신축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30대 청년 A씨. 전세보증금 2억 원을 안고 1억 원을 대출받았습니다. 문제는 이 1억 원 대출의 금리가 연 6.5%에 달하는 변동금리라는 점입니다. A씨는 매달 이자만 50만 원 넘게 내고 있습니다. 만약 A씨의 대출이 '잠시멈춤'으로 3년간 이자만 낸다면, 당장은 원금 상환 부담을 덜 수 있겠지요. 하지만 3년 뒤를 생각해 보십시오. 갚아야 할 원금 1억 원은 그대로입니다. 아니, 그동안 내지 못한 원금 때문에 총 금융비용은 오히려 더 늘어나 있습니다. 결국, 갚기 힘들었던 빚이 '더욱' 갚기 어려운 빚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대응을 반복해야 합니까? 이제는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판 뒤집기'를 고민해야 합니다.
정책이 진정 청년의 편에 서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구조적 수술'이 시급합니다.
첫째, '시간 끌기'가 아니라 '부채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단순한 이자 유예나 상환 연기로는 답이 없습니다. 현재 고금리 구조에서 청년들은 가장 비싼 금융 비용을 치르고 있는 계층입니다. 이들이 떠안은 고금리 변동 대출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장기 고정 저금리 상품으로 대환하거나 채무 재조정을 통해 상환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청년 금융 안정망 구축'의 실질적인 첫걸음입니다.
둘째, '주거'가 '빚'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청년 부채의 상당 부분은 주거비에서 비롯됩니다. 전세자금, 월세보증금, 여기에 생활비까지 더해지며 '사는 곳'이 곧 '빚더미에 앉는 곳'이 됩니다. 정부는 청년 주거를 더 이상 투기나 자산 증식의 수단이 아닌, 기본적인 '삶의 권리'로 보장해야 합니다. 불안정한 단기 전세대출 지원 대신, 질 좋은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대하고, 청년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회주택, 청년 맞춤형 리츠(REITs) 공급 등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셋째, '빚 관리'를 넘어 '자산 형성'으로 정책의 물길을 터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청년 정책은 이미 발생한 빚을 어떻게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이는 청년들이 자립할 기반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고, 금융시장에서는 가장 낮은 신용도를 가진 청년들은 저축은커녕 생활비조차 빠듯합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모든 청년에게 최소한의 자립 기반을 제공하는 '기초자산제'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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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후보의 페이스북 캡처 |
ⓒ 이준석 페이스북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입니다. 청년 부채는 '청년들이 금융을 몰라서' 혹은 '씀씀이가 헤퍼서' 생긴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정책이 이러한 낡은 시각에 머무른다면, 이는 문제의 책임을 힘없는 개인에게 떠넘기는 비겁한 행태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정치권의 청년 담론을 통해 이러한 접근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책임한지 똑똑히 목격해왔습니다.
진정한 정책은 두 가지를 동시에 담아야 합니다. 하나는, 당장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덜어주는 '현실적인 응급처치'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고통이 미래 세대에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구조적인 개혁'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공약도 청년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못한 채 잠시의 정치적 구호로만 남을 것입니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시혜적인 '정책적 배려'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있으며,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분명한 '신뢰의 신호'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선택해야 합니다. 청년을 단순히 '지원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짊어지고 나갈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대우할 것인가. 청년의 빚은 한 개인의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미래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외면하고 방치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성적표이자, 구조적 폭력의 총합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왜곡된 구조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정면으로 해체하여 바로 세울 용기입니다. '잠시멈춤'이라는 안일한 처방이 아니라, 청년들이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새로운 출발을 꿈꿀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의 사다리'를 놓는 진짜 정책을 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금융과 미래에도 실립니다. 필자는 모두가 정의롭고 공정한 금융시스템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금융과 미래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위한 지속가능한 경제관 훈육법과 청년 금융을 아우르며, 다원적 경제관과 사람 중심의 경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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