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반사 이익 가져올 수도"
우르줄라 폰 데어 레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4월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과학기술 R&D(연구·개발) 예산이 대거 축소되며 대학을 중심으로 소송전이 시작된 가운데, 세계 각국이 때맞춰 미국 내 과학기술 인재를 끌어오기 위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미국으로의 인재 유출을 우려하는 한국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6일(현지 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내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R&D 삭감에 반대하는 소송전이 시작됐다. MIT(매사추세츠공대) 프린스턴대 등 13개 학교와 미국대학협회가 NSF(미국과학재단)를 상대로 보스턴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연구기관의 시설유지비 등으로 쓰이는 간접비 상한선을 50%에서 15%로 낮추려는 NSF의 최근 조치가 위법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한국연구재단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NSF가 이같은 조치를 내린 배경엔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이 있다. 정부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해 실현될 경우 2026년 NSF의 예산은 2025년 대비 59% 삭감된다. NSF를 통해 연구기관과 개인 연구자에게 지급되던 R&D 지원이 절반 이상 잘려 나가는 것이다.
세부 분야별로 보면 AI(인공지능), 양자기술 등 이른바 '핵심기술'에 대한 지원 규모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기후 위기 대응 기술 등 이른바 '저 우선순위' R&D 예산은 통째로 사라질 위기다.
바이오와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타격이 크다. 미국 우주항공 R&D를 도맡는 NASA(미국 항공우주국) 예산은 올해 대비 24% 삭감된다. 미국국립보건원(NIH) 예산은 40%까지 삭감될 가능성이 있다. 삭감액만 25조원으로, 우리나라 2025년 R&D 총예산안 규모와 맞먹는다.
이같은 미국 연구 환경의 불안정성 속에서 우리나라가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으로 향하던 우수 이공계 석박사 생이 국내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엄미정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학기술인재정책센터장은 "미국이 AI, 양자 등 전략 분야의 투자는 줄이지 않는 만큼 수요가 큰 핵심기술 분야에서의 인적자원 유출은 크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단기적으로는 비자 불안정성 등의 우려로 국내에서 연구 생활을 이어가는 이공계생이 늘고, 일부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유럽연합(EU), 캐나다, 호주 등은 미국에서 방출될 우수 과학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EU는 '유럽을 선택하라'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과학자를 유럽에 유치하는데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약 7800억원을 들이는 게 골자다. 장기 근로계약, 이주금 지원 등을 제시해 이들을 유럽에 안착시키려는 시도다. 벨기에 브뤼셀자유대는 최근 미국 출신 과학자를 상대로 박사후연구원 12개를 개설하고 특별 예산을 배정하기도 했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는 기후변화, 감염병, 천체물리학 분야 미국 과학자의 이주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열었다. 호주와 캐나다 정부도 "미국 정부의 예산 삭감에 영향을 받은 과학자를 유치하겠다"며 연구비, 이주 지원, 비자 절차 간소화 등의 정책을 내놓는 상황이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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