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버 해킹으로 유심(USIM)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한 에스케이(SK)텔레콤이 신규 가입 업무 중단을 시작한 지난 5일 서울 시내의 한 에스케이텔레콤 직영점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에스케이(SK)텔레콤의 정보 유출 사고 뒤 불거진 ‘유심(USIM·가입자 식별 모듈) 대란’의 배경에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이심(eSIM)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통신사들의 장삿속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8일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된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은 불출석 사유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이동통신업계 취재 결과, 국내에 출시된 스마트폰 가운데 이심 서비스를 지원하는 모델은 소수에 그친다. 애플은 중저가 라인(아이폰SE)을 포함해 2018년 이후 출시한 아이폰 모델에 이심을 지원하지만, 삼성전자는 2022년 출시한 갤럭시Z 폴드4·플립4을 시작으로 갤럭시S23·24·25 시리즈 등 플래그십(최고급 사양) 중심으로만 이심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령층이 주로 사용하는 갤럭시A 시리즈 등 중저가 모델에선 대부분 이심을 쓸 수 없다. 

이심은 스마트폰에 물리적인 칩을 꽂아 사용하는 유심과 달리 스마트폰에 내장된(embeded) 가입자 식별 모듈이다. 유심과 기능은 같지만, 큐알(QR)코드 스캔 뒤 통신사 네트워크 접속 정보(프로파일)을 내려받아 사용한다. 

이런 간편성에도 에스케이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는 2022년 9월에서야 이심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통신 3사가 유심 판매 수익이 줄 것을 우려해 이심 도입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심 표준화 국제 규격이 마련된 시점(2016년)을 염두에 두면 국내 도입은 상당히 뒤늦은 셈이다. 2020년 말 기준으로도 69개국에서 이심 서비스를 지원했다. 

이심의 제한적인 도입에는 통신사들의 장삿속이 깔려 있다. 유심 가격은 7700원(에스케이텔레콤 기준)이다. 번호이동이 잦은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특성을 염두에 두면 유심 판매는 통신사들이 놓치기 힘든 수익원이다. 이심 수수료는 2750원에 불과하다. 

실제 지난 2017년 국회 국정감사에선 에스케이텔레콤이 유심을 활용해 폭리를 취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5년간(2013년~2017년 6월) 에스케이텔레콤의 유심 판매 수익이 3300억원을 웃돈다는 추정값을 내놨다. 이에 대해 에스케이텔레콤은 “단순 산술로 계산한 추정치라 사실과 다르다. 폭리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아직 통신 3사의 유심 판매 수익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통신사들은 가입자가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 스스로 통신사를 바꿀 수 있는 이심 활용이 많아지면 기존의 영업 방식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갖고 있다. 영업 대리점들이 가입자 이탈을 막을 방법이 뚜렷이 없다는 것이다. 에스케이텔레콤이 유심 무상 교체를 발표한 이후에도 한동안 이심 교체를 적극적으로 안내하지 않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있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은 지난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심의 적극 활용이 필요해 보인다. (에스케이텔레콤 안내가) 지금은 이심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라고 꼬집었다. 원유재 충남대 교수(컴퓨터융합학부)는 “회사는 (유통망 확보를 위해) 대리점의 수익을 보전해야 하는데 가입자가 매장에서 유심과 함께 사는 부가서비스의 마진이 크다 보니 유심 교체를 더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8일 예정된 국회 과방위 청문회에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국회 과방위는 유영상 에스케이텔레콤 사장과 더불어 최 회장을 이번 정보 유출 사태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한 바 있다. 최 회장은 국회에 낸 불출석 사유서에서 “(출석 요청일에) 아펙(APEC) 통상장관회의를 대비한 암참(AMCHAM·주한미국상공회의소)과의 한-미 통상 관련 행사 참석이 예정돼 있다”며 “(이번 사고로) 국회와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선담은 박종오 기자 su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