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몸에 생성된 두가지 항체
19종 치명적 뱀독에 효능

18년간 독사에게 스스로 물리는 실험을 한 미국 트럭정비사 출신 팀 프리드의 몸에 형성된 항체를 이용한 강력한 뱀독 해독제가 개발됐다. 사진 속의 뱀은 물코브라. 센티백스 제공

독사에게 200번이나 물린 남자의 몸에 생긴 항체를 이용한 강력한 해독제가 개발됐다.

한국에선 뱀에 물려 사망하는 사고가 매우 드물지만 아프리카, 중남미, 남아시아 등에서는 심각한 보건 문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 서식하는 600여종의 독사는 해마다 최대 270만명을 공격해 1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40만명을 불구자로 만든다.

이번에 뱀 해독제의 기반이 된 항체는 미국 트럭정비사 출신 팀 프리드(57)한테서 제공받은 것이다. 그는 뱀독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18년 동안 코브라 등 치명적인 뱀 16종의 독을 650회 이상 자신에게 투여했다. 또 직접 뱀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약 200번 자신의 몸에 찔렀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뱀독 실험을 막 시작했을 때엔 코브라 두마리에게 물린 후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으나, 뱀독 해독제 개발에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자가 면역 실험을 계속했다고 한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센티백스와 컬럼비아대 공동연구진이 그의 몸에 생긴 두가지 항체와 기존 해독제인 바레스플라딥을 결합해,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가장 위험한 검은맘바, 킹코브라, 호랑이뱀 등 코브라과 독사 19종의 독소에 대한 해독제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뱀독 사망 사고는 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으며, 중남미와 동남아시아도 고위험 지역이다. safetyfirstaid.co.uk/

연구진은 생쥐 실험 결과 13종의 뱀독에 대해서는 완전한 해독 기능을, 6종에 대해선 부분적 효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는 뱀독 전체에 쓸 수 있는 범용 해독제를 만드는 데 한걸음 다가간 것이다. 프리드는 뉴욕타임스에 “인류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어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뱀 해독제는 말과 다른 동물들에게 뱀독을 주사한 후 생긴 항체를 채취해 만든다. 이는 최대 몇종의 뱀독에 대해서만 효과를 나타낸다.

여러 종의 뱀에 물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던 연구진은 2017년 프리드에 관한 뉴스를 접하고, 그의 동의를 받아 그의 몸에서 혈액을 채취한 뒤 뱀에 있는 10가지 신경독소에 반응하는 두 가지 항체를 분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주택에 나타난 뱀. 연구진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뱀에 물려 동물병원에 온 개들을 대상으로 해독제 효능을 시험할 계획이다. 더 컨버세이션

위험한 실험에 기반…윤리적 문제 제기도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그러나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번 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위험한 실험을 스스로 수행한 사람의 항체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센티백스 최고경영자이자 논문 공동저자인 제디콥 글랜빌은 네이처에 “우리는 그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권하지 않았으며, 이제 그는 그런 일을 다시 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뱀독 치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치료 효과 자체보다 치료 시기가 너무 늦다는 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독사 물림 전문가인 장 필립 치포 연구원(프랑스 국립지속가능개발연구소)는 네이처에 “독사 물림 발생 지역에 해독제를 더 가까이 배치하고 환자들이 더 빨리 병원에 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랜빌 최고경영자는 “휴대하기 편리하고 저렴한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에서 해독제의 효과가 입증됨에 따라 해독제가 실제 환경에서 효능을 시험할 계획이다. 우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뱀에 물려 동물병원에 온 개들에게 새 해독제를 투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연구진은 또 프리드의 혈액에서 추출한 성분을 추가로 조사해 19종의 뱀독 모두를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는 네번째 물질을 찾아낼 계획이다.

프리드는 2018년 11월을 마지막으로 뱀독에 대한 자가 실험을 끝냈다.

*논문 정보

Snake venom protection by a cocktail of varespladib and broadly neutralizing human antibodies.

DOI: 10.1016/j.cell.2025.03.050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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