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10명 중 4명은 취업 준비에 AI 활용
자기소개서 작성 넘어 면접 예상 질문도 제공
기업도 AI 활용해 AI 자소서 판별
기술 발전으로 판별 어렵다는 허점도
“글보다는 대면으로 실력 검증 강화돼야”

그래픽=챗GPT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자기소개서 작성에 오픈AI ‘챗GPT’ 도움을 받고 있다. 챗GPT에 지금까지 경험, 공부한 내용 등을 자세히 적은 다음, ‘대외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지원 동기를 작성해줘. 특히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강조해 줘’ 등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하니, 정제된 자기소개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가 채용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지원자들은 자기소개서 작성은 물론이고 면접 예상 질문과 모의 면접까지 AI를 활용해 준비한다. 기업들은 AI가 써준 자기소개서를 AI 탐지기로 걸러내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자소서 작성, 취업스터디, 면접에 AI 활용

5일 업계에 따르면 사람인의 ‘AI 취업 준비 서비스 활용 현황’ 조사 결과 구직자 10명 중 4명이 AI를 취업 준비에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에선 69.9%가 AI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30대 57.2%, 40대 42.1%, 50대 이상 29.2% 순이었다. 취업 준비 시 AI를 활용하는 이유는 시간, 비용 등을 절약할 수 있어서(64.7%·복수응답)가 첫 번째로 꼽혔다. 많은 취업준비생이 효율성을 이유로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단순히 자기소개서 작성에만 AI가 이용되는 건 아니다. 이직을 준비 중인 최모(32)씨는 AI를 활용해 취업스터디를 하고 있다. 챗GPT의 프로젝트 기능을 활용해 전공 지식 이해 정도, 지원하려는 분야 등을 입력해 두면 챗GPT가 이 정보를 배경지식으로 답한다. 특히 금융권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최씨는 챗GPT에 금융 관련 동향을 물어보고 있다. 답변이 쌓이면 지금까지의 답변을 파일로 정리해 공부한다. 이 파일을 챗GPT에 재업로드한 다음 퀴즈를 내달라고 부탁하면 시험을 볼 수도 있다. 최씨는 “직장 생활과 이직 준비를 병행하면 스터디 참여가 어려운데, 챗GPT를 통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면접 준비에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말주변이 없어 매번 면접에서 좌절하던 취업준비생 이모(28)씨는 챗GPT를 통해 면접 기술을 터득하고 있다. 이씨는 프롬프트를 통해 다양한 면접관의 모습을 상정했다. 가령 ‘넌 까다로운 면접관이야. 내 자기소개서에서 인성 부분을 질문할 만한 부분을 날카롭게 짚어줘’와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식이다. AI에게 꼬리 질문을 해달라고 하면 실제 면접관과 비슷한 대화를 진행할 수도 있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챗GPT를 중심으로 AI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채용 기업도 관련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단순히 자기소개서 작성하는 것을 넘어 개인 맞춤형 AI 솔루션을 제공한다. 일부 AI 솔루션은 특정 기업의 자기소개서 문항을 입력하면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리더십 등 강조해야 할 핵심 키워드를 추천한다. 지원자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입력하면 출제 가능성이 큰 면접 질문과 예상 답변까지 제시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 기업도 AI 활용해 대응… “새로운 구직 흐름 인정해야”

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구직자가 AI를 활용해 정교한 글을 만들어내자 기업들도 AI를 앞세워 이를 판별해 내는 것이다. AI가 써낸 자기소개서를 AI가 거르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 채용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미 삼성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은 AI 기반 서류 검증 시스템을 도입했다. SK C&C는 올 하반기부터 지원자의 강점을 AI가 분석해 알려주는 ‘AI 채용 에이전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LG와 포스코 등은 AI 면접을 확대하며 자기소개서보다 지원자의 실제 사고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형을 변화시키고 있다.

AI 자소서에 대한 기업들의 시각은 아직 부정적이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기업 채용 동향 조사’에 따르면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64.1%가 챗GPT로 작성된 자소서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중 42.2%는 ‘감점’, 23.2%는 ‘불합격’ 조처하겠다고 답했다.

문제는 AI 자소서를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 한모(25)씨는 지난해 중견기업 마케팅 직무를 지원하기 전 본인이 직접 쓴 자기소개서를 AI 탐지기에 넣고 돌렸더니 AI 판독 비율이 70%가 넘게 나왔다. 한씨는 “기업 입장에서 AI 판독 과정을 거치는 게 이해는 가지만, 혹시나 AI가 작성한 것처럼 보일까봐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취업에 AI를 활용하는 것이 대세가 된 만큼 이런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자기소개서로 구직자를 시험하는 시대는 지났다. 글로 평가하기보다 오히려 대면 시험을 강화하는 것이 실력 검증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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