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6-2로 승리한 KIA의 이범호 감독이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KBO리그에서 2년 연속 우승은 갈수록 '불가능한 미션'이 되어가고 있다. KBO 연감에서 마지막 백투백 우승 팀을 찾으려면 2015~2016년 두산 베어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연속 시즌 통합 우승 팀도 2011~2014년 삼성 라이온즈를 끝으로 10년째 모습을 감췄다. 2017년 KIA 타이거즈부터 2023년 LG 트윈스까지 수많은 챔피언 팀이 다음 시즌 우승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하나같이 실패로 끝났다.
연속 우승이 어려운 건 우승 시즌과 같은 총합적 성공을 다음해에 재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FA 등 전력평준화 제도가 존재하는 프로야구 시스템에서 우승 멤버를 다음해까지 유지하기가 어렵다. 우승 멤버를 겨우 지켜낸다 해도 이 선수들이 우승 시즌과 같은 기량과 컨디션을 다음해에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2022년 SSG 랜더스의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이끈 류선규 전 단장은 "거의 대부분 우승팀이 다음 시즌 후유증을 겪는다"고 했다. 류 전 단장은 "우승하려면 가을야구 탈락 팀들이 쉬거나 마무리훈련을 하는 10월 말까지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우승한 다음해엔 부상자도 많이 나오고, 예년보다 컨디션이 떨어지는 선수도 많다. 특히 투수 중에 구위가 그전만 못한 경우가 종종 나온다"고 했다.
때론 몸이 아닌 '마음'이 문제가 된다. 야구에서 우승이란 개성 강한 선수들이 같은 목표 아래 '팀 퍼스트'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자기를 희생하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경기에 몰입해야 가능하다. 이런 집단적 경험을 2년 연속 되풀이하기란 쉽지 않다. 현역 시절 수많은 우승을 경험한 전준호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은 "우승하고 나면 팀 구성원들의 목표의식이 다소 느슨해지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우주의 기운', 즉 '운'도 무시할 수 없다. 매년 시즌을 치르다 보면 유독 운이 많이 따르고 모든 일이 생각대로 풀리는 팀이 있다. 이런 팀은 부상자도 적게 나오고(부상은 상당 부분 '운'의 영역이다), 부상자가 나와도 생각지도 못한 대체 선수가 예상 밖 타이밍에 등장해 영웅이 된다. 작년 우승팀 KIA는 득점권 타율 0.308에 대타 타율이 0.340이나 됐는데, KIA 타자들의 실력과 별개로 통계적으로 같은 팀에 2년 연속 이런 마법이 펼쳐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불가능한 미션 된 연속우승
그래서일까. 시즌 전 모두가 '절대 1강'으로 2년 연속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던 KIA도 시즌 초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막 전 대부분의 전문가와 예측 시스템, 수정 구슬은 KIA의 압도적 우승을 예상했다. 유튜브 채널 '키스톤플레이'가 전문가 5인과 기자 5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선 10명 전원이 KIA를 1위로 지목했다. 지난해 전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가운데, 새 외국인 타자 패트릭 위즈덤 등의 가세가 플러스 알파로 작용할 거란 예상이었다. 이런저런 '우승 후유증'을 감안해도, 이를 상쇄할 만큼 막강한 전력과 두꺼운 선수층을 갖췄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시즌 초반 KIA의 행보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개막전 승리 후 6경기 1승 5패로 부진했고, 이 중엔 '전문가 전원일치 꼴찌 후보' 키움 상대로 홈에서 1승 2패를 기록하는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4월 초엔 일시적으로 최하위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4월 28일 기준 KIA는 13승 15패 승률 0.464(7위)로 5할에도 못 미치는 성적이다.
KIA가 예상보다 부진한 일차적 이유는 부상이다. 작년 MVP 김도영이 개막 첫 경기부터 햄스트링 부상으로 실려 나갔다. 여기에 유격수 박찬호, 2루수 김선빈까지 공수에서 비중이 큰 주전 내야수 3명이 이탈하는 상황은 악마의 장난이래도 도가 지나쳤다. 투수진에서도 부상자가 나왔다. 지난해 좌완 불펜 필승카드로 활약한 곽도규가 초반 부진에 시달리다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고, 수술대에 오르면서 시즌 아웃됐다. 이택근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타선과 불펜에서 가장 WAR이 높은 선수가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전준호 해설위원은 "KIA 투수들의 페이스가 다소 늦게 올라온 감이 있다. 투수들이 100% 컨디션이 아닌 가운데, 시즌 초반 이겨야 할 경기가 뒤집어지는 상황이 나왔다"고 했다. 한 해설위원은 익명으로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시즌 준비가 늦었고, 안일하게 생각한 부분도 있는 것 아닌가 싶다"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류선규 전 단장은 "느슨하다, 준비가 덜 됐다는 말도 있지만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부상이나 페이스가 늦게 올라오는 것도 우승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놨다.
일각에선 팀 분위기나 선수들의 워크에식, 리더십 문제 등 '정신적 우승 후유증'을 겪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그러나 KIA 사정을 잘 아는 야구인은 "하도 말들이 많아서 가까운 선수, 코치들을 통해 알아봤는데, 밖에서 얘기하는 것 같은 내부 문제는 없다. 여전히 코칭스태프와 고참들 중심으로 지난해처럼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전준호 해설위원은 "다른 감독 같으면 초반 부진에 조바심을 낼 수도 있는데 이범호 감독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테랑 최형우는 지난 4월 20일 경기 승리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초반 부진에) 사람들이 난리가 났더라"라며 "물론 1위 LG가 잘하긴 하지만 2위까지는 큰 차이가 안 나지 않나. 그렇게 큰 위기라고는 생각 안 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전국구 인기 구단인 KIA는 원래 조금만 성적이 부진해도 온갖 말이 나오는 팀이다. 부상 선수가 돌아오고 팀 성적이 궤도에 오르면 주위 소음은 자연스레 잦아들 것이다. 아직까지 전문가 대부분은 KIA의 초반 부진을 일시적 이변으로 보는 분위기다. 전준호 위원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전력이 성적으로 나타날 것이고, 6월 정도부턴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택근 위원도 "KIA는 전력 자체가 워낙 막강한 팀이다.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았다. 분명 때가 되면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반등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미 1위 LG와 승차가 크게 벌어진 가운데(4월 28일 기준 6.5경기 차) 여기서 더 밀리면 나중에 따라잡기 어려워질 수 있다. 송민구 위원은 "김도영의 복귀가 얼마나 큰 상승세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라며 "자칫 4월 마지막 날의 순위가 지금보다 내려가 있다면 김도영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침 김도영의 복귀 무대에서 KIA는 LG에 위닝시리즈를 가져왔다. 반등의 계기는 마련한 셈이다. KIA는 지난해 삼성전 12승 4패, LG전 13승 3패로 순위 경쟁팀과 맞대결에서 승차를 벌리고 선두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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