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반발, 정치적 부담 측면에서 결정 기한 연장 가능성↑
기한 연장하더라도 美 협상 위해 대선 전 처리 가능성 주목
반출 허용 가능성에 시민단체·업계, 잇달아 반대 성명 발표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동시 사퇴하면서 정부의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결정 기한이 연장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부 내 정책 결정 동력이 급격히 약화된 가운데 결정을 강행하기에는 국민 설득과 정치적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대선 전에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길 바라고 있어 대선 전에 지도 반출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지리정보원(국지원)은 오는 15일 안에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를 구성해 구글이 신청한 축척 1대5000 수치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행법상 결정 기한을 1회(영업일 기준 60일) 연장할 수 있다. 연장 시 최종 기한은 8월8일이다. 열흘가량 남은 상황에서 국무총리, 국방부 등 부처 수장 부재와 정치 일정 등을 고려하면 기한 연장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사실 확인 더 필요해", "산업계, 자율규제 원해"…정부는 여전히 고심 중

美, 관세 협상 조기 성사 압박…국내 업계·시민단체 우려 한목소리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4회 국회(임시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박정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5.04.28. kkssmm99@newsis.com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여전히 관련 업계와 각 부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 입장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우리나라와 같이 안보가 취약한 나라 케이스가 다양해서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기술적으로 구글이 답을 해 줘야 할 것도 있다"고 말했다.

각 부처 입장은 엇갈린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같은 회의에서 "우리나라에도 자율주행 자동차 성능이 개선돼야 한다. (지도 반출에 대한) 산업계 요구가 많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안보 우려를 다룰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를 풀고 그다음 전 세계 80개국 언어로 제공되고 있는 구글 맵에 우리나라도 서비스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며 "위치 기반 서비스와 관련해 조금 더 자율적인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은 지도 반출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유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태열 외교통상부 장관은 "논평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외 반출 시 나타날 국가 안보 우려 해소 전까지는 신중해야 한다'는 게 외교부 입장이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성턴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제공) 2025.04.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관건은 미국 정부의 태도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꾸준히 지적하며 지도 반출을 압박해 왔다.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등 미국 IT업계 단체도 디지털 무역 장벽 해소를 관세 협상 카드로 활용하라고 우리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지도 반출에 동의하는 듯한 발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던 지난달 22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비관세 장벽에 대한 불만에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점이 있다"며 한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수출 제한을 예시로 들었다.

이후 한 전 총리가 지도 반출을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총리실은 해당 외신이 든 예시라며 관련 보도참고자료를 수정·배포했다.

인터뷰 이후 지난달 말부터 기획재정부와 산업부가 미국 정부와 통상 협의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양국 정부가 최근 관세 협상 과정에서 지도 반출도 통상 패키지 협상 사안으로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선 전에 지도 반출을 결정할 수 있다"며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출 가능성이 제기되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가 디지털 주권 침해 우려, 국내 산업 생태계 쇠퇴 우려를 들어 잇달아 지도 반출 성명을 냈다.

경실련은 지난달 29일 성명을 통해 "국가적 리더십 부재와 국정 위기를 틈타 이처럼 구글과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위한 통상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며 "사회적 논의와 합의, 제도·정책적 보완책이 없는 국내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은 결코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구글의 국내 매출 축소 신고와 법인세 회피 의혹을 들며 수조원 들여 제작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반출한다면 세금을 성실히 납부한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소공연은 지난달 30일 "통상적인 지도 기능은 1대 2만5000 축척 지도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고정밀지도 반출 요구는 단순히 구글 맵만이 아닌 자율주행 등 다른 산업에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구글이 유튜브를 통해 전 국민의 볼거리를 장악한 데 이어 지도 사업까지 손을 대 미래 먹거리 산업인 공간정보 산업까지 장악한다면 대한민국은 구글 식민지나 다름없이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도 지난달 24일 국내 택시·대리운전 등 관련 업계 일자리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며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에 우려 입장을 중앙부처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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