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역대 가장 가까워…태양 질량 3400배
22년전 한국 과학기술위성 자료 활용
310광년 거리에 있는 에오스 분자구름을 묘사한 그림. 맨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런 모양과 크기(달의 40배)일 것이라고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다. 럿거스대 제공
한국천문연구원을 포함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한국 최초의 천문관측위성 관측 자료를 이용해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분자구름을 찾아냈다.
분자 구름은 수소와 헬륨을 비롯한 다양한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기체 덩어리로 온도가 차갑고 밀도는 대부분 낮지만 물질이 압축되는 영역도 있어 향후 별과 행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
연구진은 2003년 발사된 한국 과학기술위성 1호의 원자외선분광기(FIMS)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구에서 310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겉보기 기준으로 달의 40배 크기 만한 초승달 모양의 분자구름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천문학’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 분자구름에 에오스(EOS)란 이름을 붙였다. 에오스는 이번 연구 프로젝트의 이름이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이름이다.
분자구름의 위치는 태양을 둘러싸고 있는 뜨거운 국부거품(Local Bubble)의 가장자리다. 국부 거품은 성간 물질의 밀도가 주변보다 낮아 마치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는 기체 공간을 말한다. 1천만~2천만년 전 사이에 발생한 초신성 폭발이 주변 성간 물질을 밀어내 밀도가 낮고 온도가 높은 거품을 형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 태양에서 가장 가깝게 발견된 분자운 EOS의 거리. 태양으로부터 약 310광년 떨어져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별 형성 가능성이 있는 수소 저장소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게 분포해 있는 수소분자는 별 탄생 구역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물질이지만, 원자외선을 제외한 다른 파장에서는 관측이 어렵다. 또 원자외선은 지구 대기에 쉽게 흡수되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수소 분자를 감지하기가 어렵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한국 과학기술위성이 20년 전에 관측한 원자외선 자료가 분자구름을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번 발견은 원자외선을 통해 분자 구름을 찾아낸 최초의 사례다.
현재 천문학자들이 분자구름을 발견하는 데 쓰고 있는 일반적인 방법은 일산화탄소를 찾는 것이다. 일산화탄소는 탄소 원자 하나와 산소 원자 하나가 합쳐진 분자다. 파장이 길어서 지상의 전파천문대에서도 관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분자구름에 일산화탄소 함량이 적을 경우엔 찾기가 어렵다. 이번에 발견한 에오스가 바로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연구진의 일원인 뉴욕대 타비샤 다르마와르데나 연구원(천문학)은 뉴욕타임스에 “이전에는 숨겨져 있던, 별을 형성할 수 있는 수소 저장소를 처음 발견한 것”이라고 이번 연구에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발견한 것과 최근 은퇴한 가이아우주망원경의 성간 먼지 지도를 교차 검증한 결과, 에오스 분자구름이 매우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원자외선분광기 관측 자료를 토대로 만든 수소분자 형광 방출선 전천 지도(왼쪽)와 이번에 발견한 분자구름 에오스를 확대한 부분(오른쪽).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아직까진 별 생성하지 않은 듯…향후 변화 주목
연구진은 수소분자 함량을 토대로 에오스의 질량은 태양의 3400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일산화탄소 함량을 기준으로 계산한 추정치인 태양의 20배보다 훨씬 많다. 논문 제1저자인 럿거스대 뉴브런즈윅 캠퍼스의 블레이크슬리 버크하트 교수는 “일산화탄소에 근거한 추정치는 분자구름의 질량을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분자구름이 클수록 더 무거운 별이 형성되기 때문에 이는 별 형성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분자구름은 600만년 안에 증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타임스는 “에오스 분자구름에 대한 후속 연구에 따르면 이 구름은 과거에 별을 생성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하지만 이 분자구름이 앞으로 별을 대량으로 만들지는 의문부호”라고 전했다.
원자외선분광기가 실린 과학기술위성 1호.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연구에 참여한 천문연 조영수 책임연구원은 “우주에 있는 다양한 물질의 분포나 상호작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파장 관측이 필요한데 그동안 기술상의 한계로 원자외선 관측 시도가 적었다”며 “수소 분자 관측에 기반한 이번 연구가 우리은하의 별 탄생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외선분광기 개발을 주도했던 천문연 선광일 책임연구원은 “20여년 전에 관측한 데이터가 현재 시점에서도 유용하다는 점에서 뿌듯하다”며 “관측 데이터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최근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이용해 역대 가장 멀리 떨어진 수소분자 기체를 발견했다고 사전출판 논문 공유집 아카이브에 게재했다. 버크하트 교수는 “원자외선으로 가장 가깝고 가장 먼 수소분자를 모두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A nearby dark molecular cloud in the Local Bubble revealed via H2 fluorescence. Nat Astron (2025).
https://doi.org/10.1038/s41550-025-02541-7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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