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선 주자 앞다퉈 'R&D 예산 증액' 공약
과학기술계 "관료주의적 접근 아닌 진정성 있는 과학기술 정책 공약 필요"
지난 1월 열림 '2025 정부연구개발사업 부처합동 설명회'에서 '선도형 R&D 전환을 위한 정부 R&D 혁신' 발표 현장 /사진=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한달여 앞두고 여야 대선 캠프 모두 'R&D(연구·개발) 예산 대폭 증액'을 대표적인 과학기술 정책 공약으로 내세운 가운데 과학기술계에선 "무조건적인 증액 약속이 아니라,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안과 현장 소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김진수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연총) 회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가 R&D 예산을 증액하고 100만 과학기술인 양성 계획을 세우더라도 R&D 시스템을 근본부터 개선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했다. 연총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소속 연구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조직이다.
앞서 지난달 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올해 총 정부 지출 기준 R&D 예산은 4.4%에 불과하다"며 "과학기술 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같은 날 과학기술대학생 간담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에 대해 "사과한다"며 "연구가 중단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탈락한 안철수 후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을 5%까지 확대하고, 과학기술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R&D 예산 증액' 공약이 부각되는 배경엔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일괄 삭감 사건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R&D다운 R&D로 바꾸겠다"며 2024년 주요 R&D 예산을 약 14% 삭감했다. 이에 따라 수행 도중 예산이 90% 이상 삭감되거나 전면 중단되는 연구들이 나왔다. 연구 인프라를 담당하는 일부 출연연은 일괄적으로 줄어든 예산으로 인해 인프라 유지·보수비 등 고정 지출액을 메우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했다.
일각에선 "R&D 예산 효율화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인정하는 연구자도 있었다. 다만 공통적으로 "과학기술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모든 분야를 일괄 삭감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김 회장은 "R&D 예산 증액이라는 공약은 반갑지만, 근본적으로 과기계에는 PBS 제도 등 수많은 정부를 거치고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재한다"고 했다. PBS 제도는 연구자들이 경쟁을 통해 국가 R&D 과제를 수주하는 제도다. R&D 예산 집행의 투명성 확보와 경쟁을 통한 연구의 질적 향상을 목표로 김영삼 정부 시절 도입했지만, 연구자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오히려 혁신적 연구를 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또 "대선공약은 좋았어도 막상 대통령 당선 후 현장의 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출연연 블라인드 채용'이 대표적이다. 채용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인데, 정작 과학기술계에선 지원자의 전문성과 연구 수월성을 파악할 수 없어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블라인드 채용제는 윤석열 정부 들어 사실상 폐지됐다.
김 회장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연구 현장의 소리는 듣지 않은 채 관료주의적 접근이 계속됐다"며 "현장 연구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 창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야 진정성 있는 과학기술 정책 공약"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과학기술계 국립대 교수는 머니투데이와 전화 인터뷰에서 "과학기술 연구가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며 "R&D 예산 삭감이든 증액이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반전'되지 않는 것이 선진국형 R&D"라고 강조했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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