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호봉제론 정년 연장 감당 못 해
부모-자녀 일자리 싸움 벌일 판
기업 자율 ‘퇴직후 재고용’ 正道
대선 앞둔 노동 포퓰리즘 기승
청년 취업 확대할 공약 안 보여
文 정규직 전환 같은 꼼수 안 돼
6·3 대선이 34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재명 후보를 압도적으로 선출한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도 단일화 변수 속에서 주요 후보들의 공약이 하나둘씩 가시화한다. 핵심은 역시 경제다. 미국발(發) 관세 전쟁 와중에 지난 1분기 성장률이 -0.2%로 후퇴하는 등 충격이 큰 탓이다.
우려되는 것은 표를 내세운 집단주의다. 특히, 노동계는 임금 감소 없는 주4일 근무제, 법적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며 정치권을 압박한다. 유력한 후보인 이 후보도 먹사니즘이라면서도 이에 동조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감당 못 하는 요구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전제 조건들을 빼놓은 채 현재 60세인 법적 정년을 63세·65세로 늘리면 엄청난 폐해를 부를 게 분명하다.
연령에 비례해 연봉이 올라가는 현행 연공서열형 호봉제에선 정년 연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업의 부담이 너무 크다. 직무와 성과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직무급·성과급 개편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이 후보의 싱크탱크조차 인정하는 정도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선 65세 연장 입법안을 이미 9건이나 발의해 국회에 계류돼 있고, 정년 연장 TF까지 운영 중이다.
사전 준비 없는 일률적 정년 연장 강행은 기업의 고용 여력을 파괴해 청년 채용을 더 어렵게 만들 게 뻔하다. 부모-자녀 세대 간 일자리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경고하는 보고서가 수두룩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작년 12월 법적 정년이 65세로 연장될 경우 60∼64세 근로자 고용 연장에 따른 비용이 연간 30조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돈이면 25∼29세 청년 90만2000명을 채용할 수 있다. 국책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 2016년 법적 정년 연장(60세) 시행 이후 7년간 1000명 이상 사업장의 청년 고용이 11.6%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인 기업의 경우 정년 연장 인원이 1명 늘어나면 정규직 신규 채용이 거의 2명 줄어든다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보고서도 있다. 청년들은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편에 대해 기성세대만 유리하다며 크게 반발한 바 있다. 취업 기회마저 줄면 유례없는 세대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강성 노조를 둔 대기업 정규직에 혜택이 집중돼 중소기업과의 이중구조를 확대할 우려도 크다.
임금 체계 개편은 쉽지 않다. 상당한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적응 기간도 필요하다. 따라서 정년 연장은 법 개정에 의한 의무화가 아니라, 기업 자율에 의한 ‘퇴직 후 재고용(계속고용)’이 정도(正道)다. 60세 정년 후에는 재계약 등을 통해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본이 2004년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하면서도, 기업이 75% 이하의 임금으로 계속고용·정년 연장·정년 폐지 중 선택할 수 있게 기업의 자율에 맡겼던 것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대선이라지만, 노동계의 일방적인 요구를 따르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행보가 우려스럽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조와 제3조 개정) 재추진이 대표적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 면책 등이 문제 돼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막았던 것을 다시 강행하려 한다. ‘노동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상법 개정안 재추진도 마찬가지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작 일자리가 간절한 청년 고용 확대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전체 실업자 중 20대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실정이다. 이 비중은 2023년 20.3%에서 올 3월엔 30.4%로 더 올라갔다. 청년층(15∼29세) 인구는 주는데도, 취업자 감소율이 이를 웃돈다. 공식 실업률은 7.5%(올 3월)지만, 확장 실업률은 17.3%이고, 취업포기자 등까지 합친 체감 수치는 20%를 넘는다. 물론 청년 고용은 세계적으로 난제다. 그만큼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기업의 고용 창출이 어렵다는 뜻이다. AI 시대엔 더 악화할 수도 있다.
그래도 대통령이 되려는 후보라면 청년 고용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막연한 성장, 위험한 포퓰리즘보다 청년 일자리가 먼저다. 공약이 없다면, 최소한 문재인 정부 때처럼 비정규직의 정규화 같은 꼼수를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문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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